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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1970년대 생들에게 보내는 자화상처럼 깊어진 노래들
나원주 4집 ‘I Am’ 커버 이미지
나원주 4집 ‘I Am’ 커버 이미지ⓒ젬컬처스

싱어송라이터 나원주의 새 음반이 나왔다. 8년만의 새 음반이다. 나원주는 1997년 정지찬과 함께 듀엣 자화상을 결성해서 2장의 정규음반을 내놓았다. 그후 2003년 첫 솔로 음반을 내놓은 나원주는 2010년까지 3장의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업 작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나원주는 팝에 특화한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기반으로 어쿠스틱하며 고급스럽고 서정적인 팝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는 김동률, 더 클래식, 정재형, 조규찬 등과 함께 클래시컬한 어법을 활용한 팝의 세계를 정초했다. 팝 음악은 창작자가 느끼는 감정을 깊게 사색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그 감정에 깃든 무드를 증폭시켜 그 감정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머무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감정이 현실과 얼마나 같고 진실한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감정은 어차피 주관적인 것. 일시적인 감정의 폭풍일지라도 격랑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파고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역할이 팝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원하는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어법은 듣는 이가 호출하는 감정이 헛되고 부질없지 않고, 진실하고 소중하다고 느끼게 한다. 개인의 감정에 무게와 깊이를 불어넣어주는 셈이다.

나원주 4집 ‘I Am’
나원주 4집 ‘I Am’ⓒ젬컬처스

보편적인 이야기에 좋은 멜로디를 결합해 차별화시킨 나완주의 새 앨범

8년만에 발표한 새 음반 ‘I Am’에서도 나원주는 자신의 음악 속 감정에 무게와 깊이를 불어넣는다. 음반의 타이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하는 이번 음반의 수록곡들은 나원주 자신만의 사적인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고백하지는 않는다. 팝 음악답게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적 이야기를 꺼내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나원주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하고 자신이 써낸 좋은 멜로디를 결합시킴으로써 자신의 노래를 차별화시킨다.

타이틀 곡 ‘마중’에서 나원주는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복기한다. 성급하게 끝나버린 이별은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 채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아직 나의 날 속에서 살고 있”는 너를 다시 마주한다. 그러나 그는 섣불리 과거의 아쉬움을 채우려 하지 않고, 고여 있는 사랑과 멈춰버린 시간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훼손되거나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나원주는 이렇게 감정을 터트리지만 자신을 제어하는 담담하고 성숙한 마음을 클래시컬한 연주와 고른 호흡에 깃든 노래로 들려준다. 혼신의 힘을 다해 터트리거나 폭발시키지 않고, 한 소절씩 끊어서 부르듯 주춤거리는 보컬은 애틋함을 증폭시키며 노래의 여운을 배가시킨다. 좋은 멜로디와 차별적인 보컬은 이렇게 함으로써 대동소이할 수 있는 팝 음악들 사이에서 깊이와 품격을 획득한다.

이어지는 곡 ‘오늘 같아선’에서도 나원주는 피아노 연주와 현악기 연주를 섞어 지나간 사랑의 그리움을 꺼내면서, 결국 “다시 그 때로 난 갈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담담한 노래의 톤은 그리운 마음을 수도 없이 꺼내보고 단념하고 인정한 이의 톤이다. 여전히 아련하지만 “너를 사랑했던 맘도 하지 못한 말도 이 길 이 눈처럼 쌓여가고 있음을” 아는 이는 추억을 추억으로 둘 줄 아는 성인이다.

첫 곡부터 끝까지 멜로디는 유려하고, 노래와 편곡은 섬세한 앨범

담담하지만 애절한 사랑 노래처럼 들리는 ‘엄마’도 어른의 노래다. 그런데 그 어른은 엄마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 아이의 마음과 멀지 않아, 시간이 흘렀어도 “그때 그 어린 아이”로 살아가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악기는 소박하고, 멜로디는 선명해서 슬픔은 곡진하다. 음반의 타이틀 쪽으로 가장 가까이 다가간 곡은 이 음반을 나원주 자신의 음반이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반면 봄 숲의 환상적이고 마술 같은 순간을 포착한 ‘봄숲’은 보사노바 리듬과 어쿠스틱한 악기의 확장과 결합으로 맑은 경쾌함에 이른다. 과하지 않게 조율한 악기들의 효과적인 개입과 적절하게 화려한 연주는 세련되고 우아하다. 리듬과 정서는 다르지만 음반의 톤에서 일탈하지 않는 곡은 일순 활기를 불어넣고 사라진다.

다시 만남과 헤어짐의 서사로 돌아온 ‘그때도 그대라면’은 헤어지는 순간의 안타까움을 현악기의 매끄러움과 함께 담았다. 음반에 수록된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정서를 분출하지만 현악기와 피아노를 주로 사용하는 곡은 어떤 극한을 넘어서지 않고 절제하며, 멜로디는 자연스럽다. 한편 사랑하는 남녀의 서로 다른 꿈을 노래한 ‘異夢’(이몽)은 꿈을 매개로 엇갈리는 마음을 드러낸다. 슬로우 템포의 곡은 나원주와 뽐므의 보컬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간결한 편곡과 좋은 멜로디로 곡의 서사를 완결하고 일관된 분위기를 지켜나간다. 헤어졌지만 여전한 마음을 노래하는 ‘봄 같은 겨울’은 피아노 반주와 보컬만으로 연주하면서 생생한 질감을 살려 간절한 감정을 전달한다.

나원주 4집 ‘I Am’
나원주 4집 ‘I Am’ⓒ젬컬처스

첫 곡부터 끝까지 멜로디는 유려하고, 노래와 편곡은 섬세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오래 되새긴 나원주의 시간은 흔하고 흔한 표현과는 다른 진심과 성찰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음반은 자신 앞에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20년전부터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살아왔을 1970년대 생들에게 보내는 동년배 뮤지션의 자화상처럼 깊어진 노래들. 어떤 노래는 세월 속에서 함께 자라고 천천히 도착해 말한다. 그럼에도 삶은 헛되지 않고, 우리는 애쓰고 있으니 모두 소중하다고.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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