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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격변의 시대, 새로운 인물의 등장
아르바이트를 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황승원씨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나서면서 이 학교에 반값등록금이 도입됐다. 총학생회장이던 김종민씨가 발언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황승원씨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나서면서 이 학교에 반값등록금이 도입됐다. 총학생회장이던 김종민씨가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김종민. 중앙고 학생회장,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30대 청년. 경력을 언뜻 보면 출세 길이 보장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처럼 보이지만 '민중 옆에'가 실제 삶이었던 사람. 김씨의 이름 석자에는 심미선, 신효순, 황승원, 김건우, 이민호라는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가 "억울한 죽음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며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던 사람들이다.

심미선·신효순은 지난 2002년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당시 15살 여중생이다. 주한미군 법정에서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는 장면을 보고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분노한 김씨는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들었다. 사회 변화 활동에 관심 갖는 시작이었다. 당시 김씨 등 청소년들은 "동생들의 한을 풀자"며 대책위를 구성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황승원은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11년 경기 지역 이마트 지하창고에서 터보냉동기 점검 작업을 하다 질식사를 한 당시 23살의 청년이다. 그는 등록금 대출금 1000만 원을 갚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다 냉매가스에 질식돼 목숨을 잃었다. 부모의 사업 실패 때문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식당과 공장에서 일하던 부모에게 돈 몇 푼이라도 손에 쥐어주기 위해 애를 쓰는 심성 고운 학생이었다. 그를 매일 괴롭히던 고민은 2500원 학식과 1500원 라면밥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시립대 총학생회장이던 김씨는 사고 직후부터 장례식장에 머물며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 기업에 맞섰고, 45일 만에 사과를 이끌어 냈다. 재학생들이 나서면서 시립대는 반값등록금을 도입했다.

김건우와 이민호는 대학에 가지 않고 사회 초년생으로 일을 하거나 현장실습을 하다 산업재해로 숨졌다. 김건우는 '구의역 김군'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144만 원 월급 중 100만 원을 적금하며 미래를 꿈꿨던 청년 비정규직이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은 뒤 인력 부족으로 혼자서 점검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죽음이 계기가 돼 적어도 서울 지하철만큼은 '위험 업무의 외주화'가 사라졌고, 동료들은 모두 정규직이 됐다. 이민호는 현장실습을 하던 업체에서 머리 위로 내려오는 공장의 적재기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회사는 그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사고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내용으로 된 산재신청서를 작성하고, 부모의 사인을 받으면서 가슴에 못을 박았다. 김씨는 언제나처럼 김건우와 이민호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에 머물며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사과를 받을 때까지 함께 했다.

하나하나 우리 사회의 모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죽음이었고, 김씨는 해결에 관여했다. 지난 2004년에는 18세 선거권 낮추기 공동연대 대표를 역임하며 19세로 투표 연령을 인하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선거권 인하 과정에서 김씨가 애를 썼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스스로 내세우지 않을 뿐이지, 실력으로 우리 사회 변화에 기여한 일이 많다.

김씨가 속한 청년전태일 등 청년노동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가 속한 청년전태일 등 청년노동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민중의소리

2014년 군대에 다녀온 김씨는 '청년 전태일'이라는 노동단체를 만들었다. 청년 전태일은 전태일처럼 청년 노동자의 눈으로 노동을 바라보고, 개선을 모색하는 단체다. 이 단체에는 김씨와 비슷한 심정의 노동자 1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 단체가 주목받는 것은 청년 노동운동의 새로운 실험 모델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어려움 중 하나가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인데, 청년들이 위기 속에서 새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주목을 받는다. 김씨는 이 단체 대표를 역임하며 회원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운동, 최저임금 인상 운동, 청년들의 노조 결성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그런 김씨가 또 일을 벌였다고 한다. 지방 선거에서 시립대가 있는 동대문구 3선거구에 시의원 후보로 첫 출마를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차례대로 예정된 격변의 시대, 미투 운동이 낡은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고 기득권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혁명의 시대다. 그러나 정치권만큼은 국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더디다. 일부는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조성된 개헌 기회마저도 당리당략을 앞세워 발목 잡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진보층과 젊은 세대를 대변해 보다 급진적으로 시대변화를 주도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민주당 왼쪽이 사분오열돼 각자도생하는 상황에서, 새 세력의 등장은 쉽지 않다.

당장 변화를 주도할 세력이 없다면 새로운 인물에게 입문의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사회를 바꿔 온 젊은 세대들이 전면에 나서서 역량을 축적하는 것도 때로는 한 방법이다. 분단과 비정규직의 모순 한복판에서 좌고우면하지 않았던 김씨의 등장이 반갑다. 김씨와 같은 인물들이 정당을 가리지 않고 대거 당선되는 지방선거를 기대한다.

정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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