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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나이팅게일의 웃음’ 꿈꾸는 수술실 간호사의 ‘오프 더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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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왜 내 맹장은 터지질 않을까?' 일어나서는 안 될 몹쓸 상상을 하곤 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당시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을 동시에 보살필 수 있는 간호사를 꿈꿨지만 반대로 내 몸은 병들어 갔고,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말로만 듣던 '태움', 같은 말로 '직장 내 따돌림', '직장 내 갑질'이었다. 엄격한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돼온 폭력은 누군가의 영혼을 한 줌의 재로 만들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혼자서 꾹 참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내 잘못된 반응이었다. 그건 개인이 참아낼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바뀌어야 할 문제였다. 결국 스스로 목소리 내기 시작했다.

급박했던 수술, 머릿속은 백지장 몸은 일시 정지
"성별의 차이만 있을 뿐 태움은 똑같다"

임주현 간호사연대 대표가 15일 오후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주현 간호사연대 대표가 15일 오후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는 임주현(30) 간호사연대 대표를 15일 오후 6시 일산 마두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퇴근 후에 만난 임 대표는 피곤한 얼굴로 "퇴근한 지가 얼마 안 돼서 멍해요"라고 말하며 졸린 눈을 비볐다.

그는 신규 간호사 시절을 떠올렸다. "제가 야행성인데, 신규 때는 아침 7시까지 출근하려고 밤에 수면제 먹고 잤어요. 아침에는 잠 깨기 위해 핫 식스를 아침에 또 먹고... 아침에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울 뿐이죠."

차가운 조명 아래 적막이 흐르던 수술실. 가만히 서서 수술에 집중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환자의 몸 속 혈관이 갑자기 터져 피가 솟구쳐 올랐다. 예민해진 의료진들은 손은 빨라졌고,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그 순간 머릿 속에 하얗게 됐고 온몸이 그대로 일시 정지됐다.

교과서에서는 수술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의료용 장갑을 끼고 가운을 입는 정도뿐이었다. 결국 1~3달 안에 다 실전으로 익혀야 했다. 화를 내는 선배들에게는 한 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수술실 안에서 선배의 행동을 보고 눈치껏, 알음 알음 몸으로 익혀나가야 했다.

'남자 간호사들도 태움을 당하나요?' 질문에 6년차 수술실 간호사 임주현씨는 "성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태움은 똑같아요. 똑같은 실수를 해도, '얘는 남자라서 그렇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행위가 부각돼 보이기도 해요"라고 답했다. 거기서 부터 구체적인 태움의 이야기는 '오프 더 레코드(기사에 쓸 수 없었다)'.

그가 수술실을 떠날 수 없었던 건 간호사로서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이 또래의 환자가 전이된 암 때문에 장기를 드러낼 때, 소아암 환자들이 엄마 품에 안겨서 울어 마취약으로 재워서 수술실로 들어갈 때 마음이 아려왔다. 그는 늘 수술실에서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환자들이 회복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란다.

"어렵고 길었던 수술이 딱 끝났을 때 이 수술실에 있는 의료진 스텝이 힘을 모아 '아 오늘 한명 살렸다'라는 마음이 들어요. 그 많은 수술 기구를 끌고 나가면서 의료진 스텝에게 '고생많았다'고 말했을 때 보람을 느끼고 뿌듯해지거든요"

'간호사 수'와 '환자의 생존률'과의 관계
"간호사가 환자 휠체어 끌고 같이 산책나갈 수 있을까요?"

간호사연대가 서울 광화문역에서 집회하는 모습
간호사연대가 서울 광화문역에서 집회하는 모습ⓒ간호사연대 제공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술실에서는 늘 긴장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긴 수술의 경우엔 6시간 넘게 서 있는다. 수술이 길어지면 밤을 새고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간호사들은 수술이 많은 날에는 물 한잔도 못 먹을 정도로 뛰어다닌다. 장시간 가만히 서서 일하는 탓에 하지정맥류가 제일 흔한 질병이고, 화장실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고생한다.

동료들은 하나 둘씩 병원을 떠나간다. 일이 많아서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등지는 신규 간호사들이 37%, 4년 공부해서 10명 중 4명은 병원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병동은 중간연차가 없고 관리직 몇명 외에는 전부 신규 간호사로 가득찬 병동도 있다고 해요. 업무 능력이 완성되지 않은 능력으로는 응급상황의 대처수준이 너무 낮아요"

"대형병원에서도 CPR(심페소생술)이 터지면 근무하고 있던 간호사들이 다 달라붙어서 도와줘야 해요. 그동안 옆에 있는 중환자들은 방치가 되고 있는 거죠. 응급 상황이 여러개 터졌을 때 커버할 인력이 없으니까 동시에 3명이 심정지가 터지면 2명은 살고 1명은 죽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심정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도 인력이 충분하고 능숙도가 높은 간호사들이 있었다면 살릴 수 있어요. 중환자만 안걸리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도 얼마든지 응급상황에 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간호사의 숫자가 환자의 생존률과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A 병원은 간호사 1명이 10명을 보고 B병원은 간호사 1명이 20명을 봐요. 응급상황이 터졌을 때 B병원을 갔으면 죽었고, A병원을 갔으면 사는 거죠."

그는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간호사가 환자 휠체어를 끌고 산책 나가는 거 있잖아요. 우리 나라는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어 "그게 미국은 가능한 게, 미국의 경우 간호사 1명이 평균적으로 보는 환자가 5.3명을 봐요. 우리나라는 절대로 안 돼요. 우리나라는 2016년을 기준으로 병원이 43.6명, 상급·종합병원이 16.3명인 것을 보면 OECD 회원국 중 인구대비 병상수 2위라는 타이틀에 비해 너무 과도하게 환자를 담당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나이팅게일이 광화문광장에 모인 이유
"더는 울지 않겠다"

간호사연대가 3일 오후 6시 광화문 역에서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모습
간호사연대가 3일 오후 6시 광화문 역에서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모습ⓒ간호사연대 제공

한림대 성심병원의 장기자랑 논란,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병원 내 갑질 문화,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더이상 희생하며 침묵하지 않겠다는 뜻을 모아 간호사연대가 결성됐다. 그는 간호사연대 단체를 결성한 이유에 대해 "이런 활동을 조금씩 장기적으로 간호사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해보자, 협회가 못한 일을 우리가 속시원하게 이해득실이 얽히지 않는 우리가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였다"라고 말했다. 간호사연대는 조만간 비영리단체로 승인 받아서 본격적으로 회원을 받을 계획이다.

임주현씨는 첫 집회 신고를 하고 거리로 나왔다. 그는 간호사연대 대표로서 얼굴을 공개했다. 5시간에 12~13명의 예비간호사들과 간호사들이 모였다. 이런 움직임은 점점 커져나갔다. 지난 3일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과 국화 꽃을 든 간호사들이 '태움'과 '업무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던 신규간호사의 죽음을 추모했다.

간호사들은 신규간호사의 죽음에 "나도 너였다"고 고백했다.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임주현씨는 신규간호사의 고통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사람이 몰리게 되면 앞이 안 보이거든요. 그만둬도 된다는 선택지조차 안보여요. 출근 하면서 어떻게 간호를 할까 이런 마음이 아니라, 오늘은 안 혼나야지, 이런 걸로 책을 잡히지 말아야지 이 생각밖에 안 나는 거예요. 그러면 실수가 안 날수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좋은 병원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면 공부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 뵐 낯이 없다고 생각하는 간호사들도 있는데, 돈을 덜 벌면 어때요. 일단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한 거니까. 자기 자신이 행복한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만이 무조건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병원이 아니어도 간호사를 할 수 있고,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임주현씨는 인터뷰 내내 간호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일 할 수 있도록 그는 선배인 자신부터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저는 후배들이 저를 보고 웃을 때가 기분이 좋더라고요. 같이 으샤으샤 하면서 일하고 싶어요. 제가 불편하고 어려웠던 것을 후배들에게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끝으로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저는 앞에서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 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잡아끄는 사람이 아니라, 네가 이렇게 할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내가 뒤에 있으니까 날 믿고 해. 이런 식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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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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