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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18년 한국 포크의 또 다른 성취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김해원

싱어송라이터 김해원이 첫 번째 솔로 음반을 내놓았다. 2014년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함께 발표한 음반 [비밀]로 주목 받은 지 3년 반 만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그는 김사월x김해원 활동을 하면서, ‘피의 연대기’를 비롯한 영화 음악 작업을 하고,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 했다. 사실 그가 이미 오래 전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솔로 음반 작업은 늦은 편이다.

지난 10여년의 활동을 담은 첫 솔로 음반의 타이틀은 ‘바다와 나의 변화’. 총 11곡의 노래가 담긴 이 음반에는 그동안 김해원이 구사해온 낮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의 노래들이 섬세하게 담겼다. 김해원은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투명하게 노래하는 일반적인 포크 음악과는 다른 어법을 사용해왔는데, 이번 음반에는 그동안 간간히 선보여온 자신의 어법을 더 꾹꾹 눌러 담았다. 음악의 밀도는 높아졌고, 그 안에서 최소한으로만 사용한 악기와 소리들은 음악의 내밀함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김해원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와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김해원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고백한 ‘바다와 나의 변화’

성찰과 통찰을 담기도 하는 포크 음악과는 달리 김해원의 노래에는 밑줄을 그을만한 인식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김해원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의 속 깊은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고백하면서 이 음반을 김해원 자신의 자화상으로 만들어냈다. 음반의 첫 곡 ‘Hungry Boy’에서부터 김해원은 영혼과 육체 모두 비어 갈구하는 내면을 드러낸다. 두 번째 곡 ‘헝클어진 머리’에서도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끝나가고” 있다고 고백하고, “헝클어진 머리와 헝클어진 기억이 넘치고 있”다고 토로한다. ‘내 사랑’에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고개를 들어요/손을 흔들어요/그래야 보여요”라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 음반에 수록되기도 했던 ‘불길’은 내 전부를 잃어버린 이의 노래이고, ‘Television’은 말 줄임표 같은 이야기가 침묵 속에 생략되어 있다. 새벽에 더 강하게 밀려드는 쓸쓸함을 담은 ‘새벽녘’과 “내 깃털은 너무 빠져버려서 너와 함께 멀리 갈 수 없구나”라고 노래하는 ‘종달새’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경쾌하거나 신나는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김해원이 쓴 노랫말은 혼돈과 갈등, 패배와 좌절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음반을 통해 김해원이 자신의 고뇌를 드러냈고, 이 음반이 김해원의 속내를 담은 진실한 음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김해원이 노출한 노랫말의 정서가 실제 김해원의 마음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실 흔하게 노래가 되지는 않을 뿐,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김해원의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에는 즐겁고 기쁘기보다 맥 빠지고 지치고 힘겨운 날들이 더 많다. 그러므로 김해원 음반의 가치는 노랫말로 드러낸 내면의 우울한 풍경들이 얼마나 진실한지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뮤지션인 김해원이 그 노랫말을 음악의 소리로 구현해내면서 만들어낸 사운드의 풍경이 실제 그가 느꼈을 감정에 충만하리만큼 육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느꼈을 우울함과 절망의 처연함까지 되살려낼만큼 생생하다는데 있다. 그 결과 이 음반을 듣는 이들은 김해원이라는 한 인간의 고백만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정서를 경험한 다른 이들, 무엇보다 자신이 목도했던 자신 안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 감정이 일어나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감당해야 했던 지난 시간 혹은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더욱 또렷해진다. 김해원의 노래를 통해 어떤 절망이나 막막함, 간절함이 얼마나 격렬하고 복잡한 감정인지를 되새기면서 우리는 재현하는 감정의 생생함만을 되새기는데서 그치지 않게 된다. 이 음반을 들으면 그 복잡한 감정의 주인공이 자신이며, 이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음악이 그 탁월한 소리 언어의 능력으로 그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해원이 해낸 일이 바로 그것이다. 김해원은 음악으로 마음을 보여주고 인간을 보여주었다.

결국 위로가 되는 가볍고 깊고 나른하고 쓸쓸한 소리의 어울림

김해원은 딱히 많은 악기를 동원하지 않고, 화려한 편곡을 감행하지도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목소리와 기타 정도만을 사용할 뿐이다.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도 혼잣말 하듯 낮게 읊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노래에서 소리쳐 외치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보컬의 빈틈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울림으로 채워진다. 그 희미한 울림은 맥 빠지고 지친 이의 마음 속에서 낙담한 자신과 겨우겨우 자신을 지키는 의지 사이의 힘겨운 흔들림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연주들은 그 흔들림이 마음 속에서 예고 없이 이어가는 무수한 파장을 소리로 재현해낸다.

가령 ‘헝클어진 머리’의 앙상한 기타 스트로크에 더해지는 사운드, ‘오 내 사랑’에 가득한 공간감은 멜로디와 리듬이 만들어내지 못한 소리의 풍경을 창출하며 노래의 무게와 깊이를 더한다. 청각예술이고 소리예술인 음악만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서 김해원의 감각과 능력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황량하거나 부유하는 상태는 목소리의 울림과 다수의 수록곡이 활용하는 공간감, 그리고 노래의 지층에서 몽롱함을 더하는 연주와 소리들로 생생해진다. 툭툭 그 상황을 던져놓고 보여줄 뿐, 어떤 해결책을 주거나 조언을 주지 않는 음악은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더 몰입하게 된다.

짧은 노래 이후 긴 연주를 더하는 ‘Television’이 따라가는 것은 상황이며, 풍경이다. 김해원은 자신도 다 예상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황과 풍경을 최대한 재현하고, 음악을 듣는 이들은 그 안에 자신을 끼워넣으며 김해원의 노래를 각자 자신의 음악으로 재탄생시킨다. 누구에게나 있었을 잠 못 드는 시간을 꿈결같이 담아낸 ‘새벽녘’을 비롯한 다른 노래들 역시 그렇게 스며들어 듣는 이들의 노래가 된다. 결국 김해원의 노래는 위로가 된다. 고통어린 고백이 이어지다가 비로소 스스로 안식과 평화를 찾아가는 후반부의 ‘바다와 나의 변화’와 ‘오늘’에 이르는 음반의 마무리는 그래서 더 편안하다. 위로가 되면서 빠져들게 하는 가볍고 깊고 나른하고 쓸쓸한 소리의 어울림. 2018년 한국 포크가 벌써 도달한 또 하나의 성취.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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