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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의 명예는 내가 지킨다’, 대한민국 판사들의 자발적 충성

편집자주

‘독립된 권력은 곧 성역’이라고 누군가가 압축적으로 말했을 때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법 권력은 법적·제도적 무제약의 날개를 달고서 암묵적인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중략)

이번 기획은 ‘과연 사법부가 성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사법부의 지배 또는 법관의 지배 실태를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최근의 판결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실제로 ‘법’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성역화’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논의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1. 판사는 어떻게 재벌과 자본을 충실하게 변호하는가?
2. 판사들이 정치권력의 ‘폭주’를 합리화시켜주는 방법
3.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을 범죄로 완성하는 판사들의 편협함

권위주의적 성격이 짙고,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권력일수록 저항 세력들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강도가 심하다.

▲정당, 노동조합 등 특정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권력 주도로 제기된 소송 ▲집권세력의 실정 또는 불법 행위와 관련한 소송 ▲반대세력의 저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법 사안에 대한 과도한 처벌 ▲일반 시민이나 반대진영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국가권력으로부터 제기된 소송 ▲정부 일방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다투는 각종 행정소송 등 정치권력의 사법 통제 유형은 여러 가지다.

이번에 다룰 것은 이들 유형 중 일반 시민이나 반대진영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국가권력으로부터 제기된 소송에 관한 부분이다.

부도덕한 정치권력은 저항세력의 비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일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 일에는 당연히 사법 절차가 동원된다. 그래야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 절차 자체가 억지스럽게 진행되므로, 당연히 그 결과는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명예훼손’, 같은 사실 다른 판결

2015년 12월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재판을 맡은 서로 다른 법원의 판결을 뜯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만났다는 의혹을 소개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판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박 전 대통령 풍자·비판 전단지를 배포한 ‘둥글이’ 박성수씨(시민운동가)에 대한 판결이었다.

둥글이 박성수씨.
둥글이 박성수씨.ⓒ둥글이 박성수씨 제공

두 사람의 ‘범죄사실’과 이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거의 동일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낮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소재를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소문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소문 중 대표적인 예는 OO일보 칼럼이다. 그 주요 내용은 정윤회씨와 모처에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윤회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 박근혜와 정모씨는 어떤 관계인가, 세월호 당시 사라진 7시간을 왜 못 밝히는가.”

위는 가토 전 지국장이 쓴 기사 내용이고, 아래는 박씨가 전단지에 쓴 내용이다. 이 둘 모두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범죄사실’의 핵심 내용이다.

검찰은 두 ‘범죄사실’에 대해 “대통령 비방을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공연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드러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공통된 견해를 밝혔다.

각각의 사건을 맡은 두 법원은 이 두 개의 ‘범죄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인’으로서의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했을 수 있으나, 국가기관인 대통령은 인격권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단도 같았다. 여기까진 법원이 꽤 합리적인 판단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고 결과는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이동근 부장판사)는 가토 전 지국장에 ‘무죄’, 대구지법 제2형사단독(김태규 부장판사)는 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유무죄 판단을 달리 한 두 판사가 내세운 각각의 근거는 ‘비방의 목적’ 여부였다.

가토 전 지국장 재판에서 이동근 판사는 “피고인이 소문 내용이 허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기사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정치 상황의 중심 대상은 세월호 침몰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어떤 남성과 남녀관계라는 소문이 있는 대한민국의 일반적 여성 ‘개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박씨의 재판에서 김태규 판사는 “여성 대통령을 조롱하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함으로써 그를 비방하고자 하는 목적만이 드러날 뿐”이라고 판단했다.

두 판사의 엇갈린 판단 부분만 슬쩍 바꿔보면 어떨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즉 ‘비방의 목적’에 대한 판단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검찰과 사법부가 말하는 ‘명예훼손’이라는 것의 피해 정도와 범위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가토 전 지국장에게 더 중대한 처분이 내려지는 것이 상식적이다. 수백만의 독자를 거느린 주류 신문사 보도가 갖는 권위와 기껏해야 몇 만장에 불과한 비판 전단지가 갖는 무게감의 차이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물론 가토 전 지국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매우 기초적인 합리성마저 결여된 판사의 판단을 지적하고자 하는 말이다.

판사가 무식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정봉주 입을 다물게 하라’는 특명을 충실히 받들다

이어서 소개할 두 판결에서도 동일한 사안에 대한 판사들의 엇갈린 판단이 눈에 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법원에서 내려진 정봉주 전 의원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단과 김현미 전 의원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 무죄 판단을 살펴보자.

정봉주 전 의원.
정봉주 전 의원.ⓒ정의철 기자

이 두 사건은 각각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 ‘이명박 후보가 다스 및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각각 BBK와 다스를 주요 소재로 의혹을 제기했다는 점이 다르지만 두 발언 모두 당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발언한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 언론보도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자가 다스와 도곡동 땅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은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제기돼 이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 있었다. 검찰 수사결과에서 이 후보자가 다스의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발표가 있기는 했으나 그 이후에도 국민 상당수가 수사결과를 불신했고, 의혹도 더욱 증폭됐다는 점, 이명박 후보자의 재산 헌납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매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그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줄곧 제기됐던 차명재산 의혹을 다시 한 번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피고인에게 허위사실 공표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2008년 12월 17일 서울고법 제11형사부 김현미 사건 판결문)

“이명박 후보자가 BBK 사건의 주가조작 및 횡령 등 범죄에 연루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그 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이러한 의혹의 주요 근거는 김경준의 일방적 주장과 그가 제시한 여러 서류들이었던 점, 이와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이 후보자는 그러한 의혹이 근거 없다고 누차 해명하면서 상당한 소명을 해왔던 점, 피고인이 적시한 구체적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그가 공표하는 사실이 허위일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므로 적어도 피고인에게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된다.”(2008년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 정봉주 사건 판결문)

이는 두 사건 판결문의 핵심 내용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산케이, 둥글이 판결문과 마찬가지로 주어와 목적어(BBK, 다스, 도곡동 땅, 김경준 등)만 바꿔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나아가 정봉주 사건 1,2심 재판부는 의혹 제기자가 검찰 등 사정기관의 ‘수사’에 준하는 상당한 수준의 증거수집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황당한 전제를 깔아버렸다. ‘BBK에 관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자 측 입장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발언했다’, ‘김경준을 만나 의혹의 진정성, 김경준이 제시한 서류와 그동안 제시된 BBK 관련 서류가 진정하게 작성됐는지 확인을 하고 발언했어야 한다’는 식이다.

매우 놀라운 발상이다. 검찰 수준의 정보력이 없으면 의혹을 제기해선 안 되고, 기어코 의혹을 제기하고 싶으면 관련 수사 결과를 갖고 해야 하며,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검찰보다 더 많이 수사해서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는 명백한 근거를 대서 의혹을 제기하라는 이야기다.

김현미 전 의원은 2009년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다스 및 도곡동 땅 의혹과 관련해서는 무죄, 김윤옥씨 명품시계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는 유죄)을 받았고, 정봉주 전 의원은 2012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지만, 정봉주 사건의 상고심 결과는 한참 뒤에 나왔다. 당시 대법원장은 양승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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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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