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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섬 같은 사람들을 각자의 섬으로 이끄는 음악 초대장
강이채
강이채ⓒ프라이빗 커브

강이채는 항상 경계를 넘나든다. 베이시스트 권오경과 함께 이채언 루트로 활동을 시작한 2015년부터 그녀의 음악은 자신의 경계를 탈주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들고, 대중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음악은 자신의 역할에서도 자유로웠다. 2016년 솔로로 독립해 활동할 때도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자나 보컬리스트 중 한 곳에 매이지 않았다. 2017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마더바이브, 선우정아와 함께 한국 전통음악을 변주하기도 했을 만큼 강이채의 탈주는 진행 중이다.

3월 27일 내놓은 강이채의 EP [Hitch] 역시 그 탈주의 기록이자 산물이다. 히치하이킹의 줄임말을 음반의 타이틀로 삼은 강이채의 음악 5곡은 음악이 흐르는 동안 유랑과 탈주로 인도한다. 음반의 타이틀이 [Hitch]이고, 동명의 곡 ‘Hitch’가 첫 곡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그곳까지만 날 태워줄래요/거꾸로 달려오는 도로 위/춤추는 바람에 입을 맞추고/잠시 머무는 꽃향기에 라디오를 크게 틀고”로 이어지는 노랫말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히치하이킹을 대리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강이채는 이 곡을 소리로 구현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꾸준히 추구해온 크로스오버한 어법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메어 있는 현실을 박차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이의 자유로움과 기대감, 환상을 증폭시킨다. 이국적인 보컬 솔로로 시작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은 곧장 일렉트릭 드럼 비트와 따뜻한 바이올린 연주에 피아노 연주를 교차시켜 속도감과 낭만성을 동시에 표출한다. 신스 팝에 가까운 곡이지만 바이올린과 보컬 솔로를 활용한 곡은 한 장르의 문법에 갇히지 않고 크로스오버한 질감을 증폭시킨다. 그 결과 이 곡의 사운드는 가사에서 말하듯 어제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오늘을 그리워하고 싶지 않은 자유로움의 열망을 적확하게 표출한다. 팝의 친숙함과 다채로운 스타일을 조합해 보편적인 자유의 열망에 다른 아우라를 부여하며 이것이 강이채의 음악임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강이채는 자신의 어법을 확장시켜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 다른 소리들로 자신이 표현하려 하는 정서를 더 강화하고 자유롭게 띄워 올린다.

경쾌한 어쿠스틱 팝 스타일의 곡 ‘Foolish’도 기타 아르페지오와 보컬에 공간감을 불어넣으며 진행하다가 바이올린과 까혼 연주를 넣어 속도감을 얻고 더 간절한 열망으로 훌쩍 나아간다. 어리석은 자신을 직시하고 벗어나려는 마음은 어쿠스틱 팝의 어법에 매이지 않는 사이키델릭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보컬의 앙상블로 더 강렬해진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변화의 의지를 음악의 변화로 연결해내는 곡은 강이채의 음악이 변화무쌍함에 강점이 있음을 충분히 확인시킨다.

강이채의 EP 'Hitch' 음반 표지
강이채의 EP 'Hitch' 음반 표지ⓒ프라이빗 커브

어쿠스틱 팝 스타일의 타이틀곡 ‘안녕’도 현재와 과거가 서로 넘나들면서 대화를 나눈다. 유려한 바이올린 연주를 겹친 곡은 음악적인 변화를 절제해 듣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려는 또 다른 넘나듦의 의지가 엿보인다. 보컬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연주만을 동반한 ‘Morning Morning Sun’는 바이올린 연주와 보컬에 특화된 강이채의 스타일을 선명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가사로 다 말할 수 없는 충만한 감정을 소리의 울림으로 확장해가는 구성과 연출이 돋보인다. 한국적 정서에 머무르지 않는 강이채의 사운드는 음악의 국경을 허물어 노래 속 아침 햇살을 더 깊고 넓게 밀고 나간다. 이로써 도달하는 사운드의 정서는 월드뮤직에 가까운 코스모폴리탄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완전히 새롭지 않고, 강이채가 비록 그 정서마저도 탈주해 더 전복적인 시공간으로 나아가지는 않지만 마지막 곡 ‘둘’에서 다시 선보이는 사운드는 과거와 현재 사이로 흩어져버린 추억과 상념의 무한함을 넘나들며 표현하는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어쩌면 삶 자체가 경계 사이에서 서성이고 탈주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고, 현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누구도 상상만큼 과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끔 게으름으로써, 혹은 상상함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는 현실에서 강이채의 음악은 음악을 통해 대신 탈주하게 하고, 숱한 경계로 이동하게 한다. 지금이거나 지금이 아니거나 이 곳이거나 이 곳이 아니어도 좋을 음악 어법으로 창출한 소리의 공간은 음악이 흐르는 동안만큼의 자유를 선사하고, 짧은 흔들림의 시간은 듣는 이들을 자신들의 무의식으로 인도한다. 강이채의 음악이 흐를 때 우리는 결국 그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어디론가로 흘러간다. 섬 같은 사람들을 이끌어 머물게 하는 각자의 섬. 그 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는 자신만 안다. 다만 강이채는 오늘도 그 섬으로 비밀스런 음악 초대장을 띄울 뿐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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