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 은종복, “책방 ‘풀무질’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음

“여기 주인은 책을 사러 오는 분들입니다. 저는 여기 일꾼일 뿐입니다”

서울 성균관대 앞에서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경영하는 은종복씨. 올해로 쉰셋 25년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풀무질’은 분명 그의 개인사업체다. 그러나 그는 사장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

“사장이라고 하면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까 사장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풀무질’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곳이에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책방의 주인은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이죠. 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깨어있는 지성인이 될 수 있도록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일꾼이고 심부름꾼일 뿐이죠.”

'풀무질' 책방 안에서 책을 들고 포즈 취하는 은종복 씨
'풀무질' 책방 안에서 책을 들고 포즈 취하는 은종복 씨ⓒ민중의소리

종복 씨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던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글도 쓰고 다른 학생들과 집회도 나갔다. 그가 스물여덟살 되던 199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 다른 졸업생들처럼 노동운동을 하러 현장으로 가거나 당시 붐이 일었던 환경 운동을 하러 지방으로 내려갈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매출감소로 경영이 어려워진 ‘풀무질’을 인수했다.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한몫했다.

“원래 운영하시던 분이 개인적인 이유와 경영난 등으로 하실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제가 책방에 찾아갔는데 저보다 먼저 맡겠다고 온 사람들이 셋이나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일을 가장 잘할 것 같다며 저를 뽑아줬어요.”

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 붕괴의 여파로 사회과학 서적 판매량도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고는 하나 매달 책을 팔아서 200만원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과 달리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어서 동네 책방들이 대형서점과 경쟁도 가능했다.

전태일 평전 판매가 북괴를 이롭게 한다?

1997년 4월 15일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잡혀갔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가 날짜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잡혀간 이유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의 책방에서 팔린 월간 ‘말’이나 ‘전태일 평전’이 이적 표현물이라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책방에 있던 사회과학 서적들을 압수하는 한편, 수색영장도 없이 집에 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책을 주셔야 아드님이 빨리 나올 수 있다’고 속이고 집에 있던 책들까지 털어갔다.

“그때 압수된 책들 중에 ‘서울로 간 평강공주’ 라는 시집이 있었어요. 근데 경찰들이 ‘서울로 간 평양공주’ 로 책 제목을 바꿔서 보고를 올렸더군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이 책들은 일반 서점에서도 팔리는거다’라고 항변하니 수사관이 ‘서점들은 돈을 벌려고 팔지만 너희는 북괴를 이롭게 하려고 학생들을 의식화 시키려는거 아니냐’고 했어요. 수사관들 수준이 참 천박 하더라고요.”

“박종철 열사가 있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 검사한테 불려갔어요. 그때 제 담당검사가 지금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에요. 조사 도중에 가족이랑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을 했어요. 반면에 상관이랑 통화를 할 때는 자세가 180도 바뀌었어요. 갑자기 옷매무새를 고치고 일어서서 말을 하고 통화가 끝날 때는 90도 머리 숙여서 인사까지 하더군요. 영화 ‘1987’에서 윗사람과 통화하며 머리를 조아리던 경찰간부하고 똑같았어요.”

남영동 대공분실과 서울구치소에서 한달을 보내고 나서야 무혐의로 풀려났다. 나중에 책을 돌려달라고 반환 청구를 했는데 사건이 종결돼서 폐기됐다며 돌려받지 못했다.

‘풀무질’은 한때 성대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대학 학생들이나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책방이었다. 다른 대학 학생들도 많이 찾았고 한 교수는 고대 앞 책방으로 갔다가 책방주인으로부터 ‘풀무질’이 더 낫다고 추천받고 오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월간지 ‘녹색평론’ 한해 판매량이 교보문고 전체 매장 판매량보다 훨씬 많은 3000권에 달하기도 했다.

'풀무질' 책방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은종복 씨
'풀무질' 책방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은종복 씨ⓒ풀무질 제공

“예전엔 참 재밌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한번은 개강 전 2월쯤 한 학생이 막일을 해서 20만원을 벌었는데 이 돈으로 여행을 갈까 고민했는데 ‘풀무질’에 맡기고 싶다고 했어요. 그 학생이 말하길 ‘오래된 미래’ 책을 돈 없어서 못사는 사람들에게 나눠달라고 하더군요.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책이 예상보다 더 많이 팔렸어요.”(웃음)

시간이 지나자 인문사회과학 분야 책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고 관련 책방들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풀무질’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월세가 싼 지하로 옮겨야 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개정돼 막 등장한 대형 인터넷 서점들의 가격 할인공세가 시작된 것도 원인이었다. 요즘도 은씨의 책방은 매달 적자다. 적자를 면해보려고 학생들이 많이 찾는 토익 등 각종 수험서들도 팔지만 그래도 적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매출 올려주려고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학교 구내서점을 놔두고 책방으로 오는 성대 학생들도 있다. 여기에 ‘풀무질’이 경영난에 시달리는 게 안타까워서 가끔 돈을 대주시는 어머니와 일을 도와주는 둘째 형님 그리고 자기 일도 제쳐놓고 오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가장 열심히 도와주는 것은 성대 학생들이다. 책 옮기는 일도 돕고 간판이나 계단조명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따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또한 SNS에서 책방 알리는 홍보도 꾸준히 하고 있다.

‘풀무질’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정말 고마운 학생들이 많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책방으로 안 와도 되는데 굳이 여기서 책을 사야 한다며 와주는 학생도 있었고 ‘풀무질’을 살려보는 걸 졸업논문 주제로 잡았다는 학생도 있었어요.”

더 나아가 은씨에게 책방 내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모임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그는 책방 내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서 모임이 열릴 수 있도록 했다. 동네 주민들, 학생들이 매주 독립영화 보는 모임, 글쓰기 모임, 책읽기 모임이 참석하고 있고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책방을 찾았던 날에도 책방 한구석에서 글쓰기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에 종복 씨가 직접 쓴 ‘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은종복의 25년 분투기’가 나왔다. 책 장사로 먹고살기에 힘든 세상에서 사반세기 동안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이야기인 동시에 앞으로도 ‘풀무질’을 운영하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책방만 없었다면 그는 자기 소망대로 농사지으러 시골로 내려갔겠지만 ‘풀무질’이 있어서 꿈을 뒤로 미뤘다.

“좋은 책만 깔아놨다고 잘 팔리던 시대는 지났어요. 다들 저보고 바보짓 하고 있다는 말도 합니다. ‘풀무질’은 없어져서는 안 되는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차도 마시고 토론도 하고 음악도 듣고 밥도 먹을 수 있는 복합공간이 될 때 책방으로 사람들이 오겠죠.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풀무질’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김한수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