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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헌법 이야기] ① 독일헌법은 어떻게 한국 독재자의 수단이 되었나

김만권 박사의 '헌법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최근 개헌논의에는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할 국민이 배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민중의소리는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의 ‘헌법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단편적인 주장을 넘어 헌법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김만권 박사는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뉴스쿨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연세대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호모저스티스』,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등이 있으며 참여연대에서 운영하는 정치철학 팟캐스트 [철학사이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첫 번째 기고문은 한 번에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 분량이 A4용지 6장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엄청난 스크롤 압박을 느끼는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기고문이 예상외의 반향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민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헌법과 헌정질서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중의소리」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만들어질 헌법과 그 관련 사안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헌법 짓기를 박사 논문으로 쓰기는 했지만, 정치학 전공자라 법학 전공자나 다른 관련 전공자들이 보기에 부족한 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여러분께 많이 묻고 배우고 공부하겠습니다. 많은 도움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발의안에 고스란히 남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지난 3월 말,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을 소개했습니다. 헌법 제128조 1항 “헌법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에 근거해 대통령이 헌법개정을 발의한 것입니다.

이 발의안에 담긴 개정된 헌법전문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구절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더불어 현행 헌법 제4조에 명기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역시 그 표현 그대로 남았습니다. 오래 지속하였던 기본질서 논쟁,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라는 선택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로 기본질서가 재확정된 것입니다. 논쟁에서 승패가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관련해 이야기해 볼 중요한 사안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헌정사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곳은 제8호 유신헌법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왜, 가장 독재적이었던 유신정권을 정당화하는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삽입된 것일까?” 유신헌법이 만들어지기 전,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표현을 헌법에 이미 쓰고 있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당시는 서독)입니다. 이 개념은 유신정권을 위해 봉사했던 헌법학자들이 이 독일 헌법에서 베껴온 것입니다.

독일 헌법은 ‘기본법’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기본법은 1949년에 서독에서 만들어졌고, 1990년 동독이 이 기본법을 수용하여 통일 독일의 헌법이 되었습니다(서독은 기본법을 설계할 때 헌법이라는 말을 일부러 쓰지 않았습니다. 통일된 국가가 새 헌법을 채택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본법 설계자의 의도와는 달리 통일 독일은 새 헌법을 만드는 대신 기본법을 동독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유신헌법 설계자들은 이 표현을 왜 독일 기본법에서 빌려 삽입했던 것일까요? 그것도 헌법전문에요. 눈앞에 서 있는 독재자를, 헌법을 통해서라도 견제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독일 기본법을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세 번 등장합니다. 10조(서신, 우편, 전신의 비밀에 관한 조항) 2항, 11조(이동의 자유) 2항에서 이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로, 21조 2항에서 정당해산의 근거로 명시돼 있습니다.

기본법 전문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이 표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의 기본법은 왜 이를 헌법 조항에 명시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나치의 유산 때문이었습니다. 기본권의 제한과 정당 해산에 있어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기본권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하고 정당 활동을 안전하게 보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독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던 겁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한 것으로) 침해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한 것으로) 침해할 수 없다ⓒnaver cafe mykimkoeln

독일에서 가져온 자유의 방패, 한국에선 독재의 칼로 썼다

그런데 유신헌법에는 개인의 기본권 보호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속적부심제도조차 없었습니다. 구속적부심제는 인신의 보호에 있어 핵심적인 장치로 피의자 구속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유신헌법은 이전 헌법에 존재하던 관련 조항을 폐지해버렸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종신제의 길을 열었던 가장 반 자유민주적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넣었습니다. 속내를 모르고 겉만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헌법학자 장은주(교수. 한국헌법학회)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이해가 갑니다.

“유신헌법의 기틀을 잡았던 이들이 유신을 합리화하면서 엉뚱한 방식으로 독일 헌법을 끌어왔다.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방어적(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이 개념을 헌법에 끼워 넣은 것이다.”

쉽게 말해, 유신정권의 적들을 찾아내기 위해 이 개념을 헌법 전문에 넣어 악용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독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쓰인 개념을, 그 것을 베낀 나라가 반대로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썼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개념은 군사정권의 시대를 지난 뒤에도 살아남아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합진보당’ 해산이유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민주적’이란 말은 ‘자유민주주의’란 뜻일까, ‘자유롭고 민주적’이란 뜻일까?

이처럼 우리 헌법에 담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게 되면 숨겨진 사실 하나를 더 알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입니다. 대한민국 기본질서 논쟁을 보면,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 규정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똑같이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 헌법이 베낀 ‘자유적 기본질서’의 독일어 표현은 Freiheitlich-demokratische Grundordnung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독일정부가 이 표현을 영문으로 이렇게 옮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the free democratic basic order.” 우리말로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옮겨 놓은 겁니다.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상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롭고 민주적이다’는 표현이 서로 상이한 의미란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자유민주주의가 하나의 이념/정체를 뜻하는 것이라면, ‘자유롭고 민주적이다’는 말은 정치적 삶의 조건에 대한 묘사에 가깝습니다. 사회민주주의라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조건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가 없다고는 말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언론 자유도’ 등 수많은 관련 지표는 이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그 어느 국가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임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기본질서 논란의 핵심은 (앞선 기고문에서 밝혔듯이) ‘자유민주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법학에서는 관습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로 구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개념을 베낀 독일의 기본법에 담긴 의미는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표현을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로 파악하면 독일헌법은 그 자체로 내적 모순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독일기본법 20조 1항이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연방 국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이 ‘자유민주주의’라면, ‘민주적이고 사회적인’(demokratischer und sozialer)이라는 말은 ‘사회민주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겁니다. 심지어 28조 1항은 “각 주의 헌법질서는 기본법상의 공화주의적 · 민주적 · 사회적 법치국가의 원칙에 부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핵심규정에 ‘자유’라는 표현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적극 찬성하는 세력이 피하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의미가 담긴) ‘사회적’이라는 표현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봐도 애초에 독일이 의도했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헌법에 내재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정작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은 우리 헌법의 영문번역이 더 잘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헌법 영문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라고 옮겨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기본질서 논쟁, ‘자유민주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는 우리 역사에서 왜곡된 개념이 빚어낸, 정말 소모적인 논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닌 자들이 적들을 찾아내기 위해 이용한 이 개념으로 인해 파생된 이 오도된 논쟁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

앞서 언급했듯 대통령이 제안한 개정안 전문과 제4조엔 여전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은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 이상 사회민주주의와 맞서는 이념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평등보다 자유가 더 중요한 기본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삶의 조건으로써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포함되는 핵심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기본법에서 구체화된 인권 존중, 특히 삶과 자유로운 계발에 대한 개인 권리의 존중, 인민주권, 권력분립, 정부 책임, 행정 적법성, 사법부 독립, 다당제 그리고 헌법에 조응하는 교육 및 비판 활동의 권리를 지닌 모든 정당들의 기회균등.” 이 주옥같은 모든 요소들이 새롭게 도래할 우리 헌법에 담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을 쓰는데 많은 조언을 주신 영산대 장은주 교수님, 건국대 한상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칼럼은 “② 자발적 동원의 시민저항/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다”입니다.

독일헌법 영문 링크 https://www.bundesregierung.de/Content/EN/StatischeSeiten/breg/basic-law-content-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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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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