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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헌법 이야기 ②] 자발적 동원의 시민저항, 혁명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할까? 

대통령 발의안, 전문에 시민저항/혁명의 정신을 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재판관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읽었던 한 구절입니다. 이후 이어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구성된 새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으로 촛불혁명을 내세웠습니다. 게다가 그 혁명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헌법까지 약속했습니다.

이 놀라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더 놀라운 일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스스럼없이 ‘촛불혁명의 정신’이란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고 시민들 역시 혁명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겨 넣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에도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 대통령은 “새 헌법 전문은 4·19민주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항쟁,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 정신을 새겨야 하고 임시정부의 법통도 더해져야 한다”며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발언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자발적 동원을 통한 국민들의 집단적 저항과 혁명의 정신을, 대한민국 정체의 토대로 삼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습니다. 촛불 이후의 분위기로 보면 이런 제안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의지는 3월 말 내놓은 발의안 전문에 이렇게 담겼습니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화운동, 부마항쟁과 5·18민주화 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

지난해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지난해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헌법 전문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지난 2월 27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연 개헌토론회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기조 발제에 나선 최장집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분단모순에 비롯되는 이념적 양극화를 지적하며, 민주화 운동을 헌법 전문에 기록하는 일이 진보 보수 간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분단이 만든 모순이 우리 사회의 갈등의 핵심적인 축인 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기에 이런 주장은 언뜻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최장집 교수는 여기에 설득력을 위해서였는지 “프랑스 헌법의 경우, 1789년의 인권선언을 담지만,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 어리둥절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1789년 인권선언은 하나의 문서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프랑스대혁명 과정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인권선언이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권선언의 포함은 그 자체로서 자발적 동원의 역사가 만들어낸 정신 아래 구축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도 헌법전문에 이 선언을 포함함으로써 (왕의 머리를 단두대에서 잘라버린) 프랑스가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합니다. 더군다나 1791년 만들어진 프랑스 헌법의 전문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혁명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국민의회는 자신이 승인하고 선포했던 원리들에 따라 프랑스 헌법이 수립되기를 원하는 바, 자유와 권리들의 평등을 해치는 제도들을 최종적으로 폐지한다. --- 귀족의 신분, 대귀족제(pairie), 세습적 차별, 신분의 차별, 봉건제, 세습재판권, 작위와 이로부터 파생하는 명칭과 특권, 기사단, 귀족의 증거를 요구하거나 출생의 차별을 전제하는 법인체(corporations)나 훈장, 공무원이 직무의 행사에서 갖는 것 이외의 다른 우월권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관직 매매나 공직의 세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국민의 어떠한 부분이나 어떠한 개인에게도 특권이나 모든 프랑스인의 일반법에 대한 어떠한 예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동업조합이나 직종 및 기예의 법인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법은 종교적 서원이나 자연법 또는 헌법에 어긋나는 어떤 다른 맹세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구시대 기득권적 요소를 모두 다 갈아 엎어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문에선 보수도, 진보도 없으며, 오로지 기존의 억압적 기득권을 거부하는 내용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1791년 만들어진 프랑스 헌법 전문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면, 우리 자발적 동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도 보수와 진보의 틀 안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동원의 역사를 헌법전문에 기록하는 일이 보수와 진보의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최장집 교수의 언급을 대하며,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3·1 운동이, 4·19가, 5·18이, 그리고 6·10항쟁이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었던가? 그 모든 싸움은 억압적인 식민지배세력과 부패한 기득권, 억압적인 군사정권과의 싸움이 아니었던가? 정말로 보수는 식민지배를 지지하고, 부패한 기득권을 옹호하고, 억압적인 군사정권에 열광하는 세력인가? 만약 보수가 그런 세력이라면 이 땅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부도덕한 세력이며, 이런 세력과의 공존 때문에 헌법에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것을 주저해야 하는가? 만약 누군가가 “식민지배를 지지하고, 부패한 기득권을 옹호하고, 억압적인 군사정권에 열광”한다면, 이들은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수구 기득권 세력일 것이고, 헌법은 당연히 이런 세력과의 단절을 명백하게 선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이었던 3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폭죽을 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이었던 3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폭죽을 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동원의 역사가 담긴 전문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약화할 것이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와의 불필요한 갈등을 걱정하는 최장집 교수의 기조 발제문을 읽어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최장집 교수는 발제문에 이렇게 씁니다.

“한국의 진보파들이 상념하는 민주주의는 고대의 민주주의를 현대에 그대로 옮겨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촛불시위 이후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가능한 한 넓게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하기를 시도하고, 그렇게 될수록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이해하는 듯하다. 어떤 논자들은 직접민주주의에 대응하여 대의제 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듣는다. “간접”이라는 말은 대의제라는 말보다 훨씬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개헌토론회:헌법전문과 민주이념,” 국회 자료집 15쪽)

여기에서 최장집 교수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분단모순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대규모 동원이 헌법 전문에 제시될 때 대의제 민주주의가 처하게 될 위상의 문제입니다. 대표자들이 중심 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지배적일 될까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지배’라는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절차주의라고 강조합니다.

“민주주의란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절차적 최소요건을 갖추고 그 틀에서 작동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그것은 규범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24쪽)

민주주의에서 절차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을 사안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규범의 영역에서 멀어져 문제해결을 절차 내에서만 해야 한다면, 정치는 거의 십중팔구 엘리트들의 소유물이 되고 맙니다. 평소 ‘정당’이 정치의 축이어야만 한다고 믿어온 최장집 교수의 신념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자발적 동원의 역사가 강조될수록 우리 역사에서 초라한 위상과 역할을 지녀온 정당정치의 위상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어떤 측면에서는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역시 정당정치가 혐오의 온상이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직접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대표자들에 대한 혐오가 된다면, 그것만큼 반정치적인 일도 없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설득이라 할 때, 혐오하는 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우리는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할 것이고, 그런 행동은 자연스럽게 반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란 때로 절차 밖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시민저항과 혁명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역시 이런 저항과 혁명을 통해 절차로는 더 이상 다룰 수 없는 부패한 권력을 벌하고, 새롭게 정체를 만드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는 이의 입장에선 이런 시민저항과 혁명의 역사적 기록이 헌법 전문에 담긴다면, 헌법과 늘 함께 있어야 할 대표자들에게 엄중한 경고와 교훈이 되리라는 생각 역시 듭니다.

이런 시민저항과 혁명은 대표자들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부패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발적 동원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우리 국민들이 부패한 대표자들을 절대 좌시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이 기억하게 하여 더욱 책임 있게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불어 국민 역시 자신들이 주권자임을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김만권의 헌법 이야기 다음 편은 “③헌법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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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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