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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18 엄마가 세월호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세월호 참사 후 4번째 봄이 다가옵니다. ‘눈물의 팽목항’, ‘광장의 노란 리본 물결’, ‘물 위로 올라온 찢겨진 선체’··· 지난 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은 ‘분노’와 ‘눈물’, ‘기다림’, ‘약속’과 ‘다짐’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조각을 모아 ‘세월호 4년, 다시 봄’이란 이야기로 묶어봅니다.

[① |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의 증언]
[② | 팽목항을 지키는 사람들]
[③ | 유족에게 보내는 편지]
[④ | 세월호, 진실을 세우다]
[⑤ | 안산의 봄]
[⑥ | ‘4.16세대’의 약속]

“자식 잃은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제. 내가 그 마음 잘 아네.”

여든을 앞둔 노모(老母)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호 아이들을 보고 우리 막내가 생각났다”는 노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김길자(79)씨는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광주상고에 다니던 문재학(당시 16세)군이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평범한 어머니를 ‘투사(鬪士)’로 만들었다. 38년이 지난 지금도 김씨는 거리에서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 문재학 군을 잃은 김길자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 문재학 군을 잃은 김길자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 가족들에게 닥친 고통의 시간을 고스란히 겪은 노모에게 ‘세월호 유족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씨는 “내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 해줄 말이 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둔 지난 6일 광주 북구 중흥동 자택에서 ‘5.18 유가족’ 김길자 씨를 만났다.

“도청서 심부름 하겠다”던 고1 아들의 죽음,
구명조끼 벗어주며 친구 곁을 지킨 학생들,
거리로 나온 5.18·세월호 엄마들의 눈물

김길자 씨의 막내아들은 1980년 6월 초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은 교련복 차림의 재학 군은 광주 망월동 묘지에 가매장된 채 발견됐다. 2주 전 “도청에서 심부름해야 한다”는 재학 군의 통화가 가족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계엄군이 오니 집에 가자’고 하니깐 ‘국민학교 동창인 (양)창근이랑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거야. ‘도청에서 심부름 좀 하고 간다’고. 그때 재학이를 집에 못 데려온 게 평생의 한이여. 설마 쪼매만한 애들까지 죽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제.”

김씨는 “세월호에서 서로 구명조끼를 벗어주던 단원고 학생들을 보고 심부름해야 한다며 도청을 지킨 막내 재학이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우리 재학이 또래 아이들 일이라 더 마음이 찢어졌제.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면서 남 생각하던 아이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당께.”

아들의 죽음을 목도(目睹)한 김씨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총칼을 앞세운 전두환 정권에 맞서 ‘5.18 진상규명’과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제. 애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폭도로 몰렸잖아. 미친놈처럼 전두환 가는 데마다 따라댕겼네. 경찰이 문 앞을 지키고 있어도 담 넘어 시위하러 가고 그랬어. 한번은 국정원에 잡혀 있을 때 ‘유가족만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렸다’면서 욕을 하는거여. 그때 알았제. 유가족이라서 (나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겁 없이 싸우러 다녔던거여.”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김길자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김길자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김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경찰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렸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세월호 가족들이 거리에서 농성하던 모습을 보면 수십년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지난 38년 동안 노모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은 현재 ‘세월호 진상규명’ 위해 싸우는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자식 위해 끝까지 포기하면 안 돼”

김길자 씨는 지난 2015년 ‘5.18 전야제’ 당시 광주를 찾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처음 만났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만난 김씨와 세월호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노란리본을 들고 세월호 가족들이 오는데 눈물이 나더랑께. 엄마들끼리 뭔가 짠한 마음을 느낀 것 같애. 자식 잃은 고통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은께. 그때가 (세월호 참사) 1년 정도 됐으니까 그 엄마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여. 5.18 엄마들이 ’힘내라’고 말하는데 많이 울더라고.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여 준 기억이 나네.”

5.18 유가족 김길자 씨가 5.18 전야제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료사진)
5.18 유가족 김길자 씨가 5.18 전야제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료사진)ⓒ길바닥저널리스트 박훈규

5.18 엄마는 세월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38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견딘 노모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속 상처가 느껴졌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하잖아. 지금 생각하면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게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애. (세월호 엄마들도) 포기하고 싶고, 주변에서 백날 뭐라 해도 그만두면 안 돼. 엄마 아니면 누구도 자식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으니께. 세월호 엄마들한테 꼭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전해줘. 그래야 힘내서 끝까지 싸울 수 있은께.”

김씨는 서랍장 한켠에 수북이 쌓인 ‘5.18 자료’들을 가리키며 “38년이 지났지만,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야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노모는 “정권도 바뀌었느니 5.18과 세월호의 진실이 하루빨리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아들의 영정사진을 쓰다듬었다.

▶ [세월호 4년, 다시 봄 ①] 세월호 생존자가 말하는 ‘박근혜의 거짓말’
▶ [세월호 4년, 다시 봄 ②] “아들 사망 신고도 못했어요” 4년간 팽목항을 지킨 아버지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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