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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뿌리 민청학련 사건의 모든 것 ‘민청학련’
책 ‘민청학련’
책 ‘민청학련’ⓒ기타

1974년 7월 9일 서울 용산구 육군본부 건너편 비상군법회의 법정에선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이철, 유인태, 여정남, 김병곤, 나병식, 김영일, 이현배 등에게 줄줄이 사형이 선고됐고, 유근일 등 일곱명에겐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최후진술에 나선 이들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이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활동하다가 죽는 것은 좋으나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은 씌우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김병곤은 “검찰관님,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사형을 내려주겠다니 영광입니다”라고 밝혔다. 정문화는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이 법정에 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고. 정윤광은 “개인적 사정으로 힘껏 뛰지 못해서 이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형을 구형하며 청년들의 입을 틀어막으려했지만 청년들은 오히려 사형 구형이 영광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 1심 재판 모습은 유신시대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영구집권까지 노렸던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우리 사회 적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1972년부터 7년 동안 한국 사회를 장악했던 유신체제는 박정희 정권이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장기 집권의 철옹성을 쌓음으로써 스스로 최소한의 역사적 정통성마저 저버리고 극단적인 권위주의체제로 돌입한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였기 때문이다.

민청학련 항쟁은 4.19 이후에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반독재 투쟁이었다. 민청학련 항쟁이 있었기에 그 뒤로도 수많은 반유신 투쟁과 부마민중항쟁이 이어져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또한 민청학련 항쟁 참가자들은 그 후 그대로 한국의 민주화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 등의 주역이 됨으로써 민주화 및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이들이 19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 항쟁을 추동한 힘이며, 이 역량이 2017년의 촛불항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해온 민청학련을 재조명하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민청학련 항쟁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의의까지 모든 것을 정리한 책 ‘민청학련’이다.

1974년 4월 3일, 유신정권 당국이 발표한 민청학련사건 명단
1974년 4월 3일, 유신정권 당국이 발표한 민청학련사건 명단ⓒ기타

이 책은 1972년 유신 선포부터 1975년 박정희 정권이 관련자들을 석방하기까지 850일의 기록이 담겨 있는 르포르타주이며, 민청학련이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갖는 위치를 재조명하고 그에 걸맞은 제 위치를 찾기 위한 시도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등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이른바 ‘10월 유신’이다. 특별성명의 요지는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헌법과 정치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제정된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연임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선출 방식 또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의 대의원들이 시행하는 간접선거로 규정했다. 유신헌법은 형식적인 국민투표를 거쳐 그해 12월에 선포되었고, 이로써 박정희 대통령은 영구 집권의 길을 열어젖혔다.

대학생들은 이에 대한 산발적인 저항을 이어가다가 1973년 가을부터 전국 각 대학이 연합한 대규모의 저항을 계획했다. 여기에 군사정권을 비판해오던 지식인 및 양심적 종교인들도 합세했다. 이들은 1974년 4월 3일을 디데이로 정하고 그동안 축적한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성명서를 내면서 전국 청년학생들의 연합체라는 뜻에서 자신들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이른바 ‘민청학련’이라 불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미리 정보를 입수해서 대대적으로 관련자들을 검거했으며, 이들에게 용공 혐의를 씌워 처벌하려 했다. 정부는 민청학련 이름으로 검거된 732명을 포함한 1,024명을 수사하여 253명을 군사법정에 송치했으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이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등의 비상식적인 형량을 선고했다. 이에 재야를 중심으로 구명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고, 외신도 이를 보도하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굴복하여 1975년 2월 대부분의 관련자를 형집행정지로 석방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단순히 사실관계를 시간 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인물, 여러 지역의 일들을 다층적으로 속도감 있게 소설 형식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을 항쟁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직접 항쟁 주체들의 입으로 44년 만에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민청학련 항쟁 참가자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청학련의 정신을 계승 및 기념하는 활동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정작 민청학련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소홀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2014년부터 이를 알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200여 명 회원들을 인터뷰하고, 구술 자료를 모아 민청학련 항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책은 민청학련계승사업회의 이러한 4년 동안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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