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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 저지른 ‘회장님’들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판사들의 심리

편집자주

‘독립된 권력은 곧 성역’이라고 누군가가 압축적으로 말했을 때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법 권력은 법적·제도적 무제약의 날개를 달고서 암묵적인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중략)

이번 기획은 ‘과연 사법부가 성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사법부의 지배 또는 법관의 지배 실태를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최근의 판결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실제로 ‘법’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성역화’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논의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1. ‘삼성과 이재용을 살려라’ 사법부 임무가 완수됐다
2. 판사들에게 노동자 ‘권리’보다 중요한 건 사기업의 ‘이익’이다
3. 판사들이 정치권력의 ‘폭주’를 합리화시켜주는 방법
4.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을 범죄로 완성하는 판사들의 편협함
5. ‘각하의 명예는 내가 지킨다’, 대한민국 판사들의 자발적 충성
6. 판사들은 MB정부의 ‘강정마을·4대강 파괴’에 어떻게 협조했나
7. 2천원 훔친 노숙자는 감옥 가는데 수백억 떼먹은 ‘회장님’은 왜 집에 가나요?

판사들이 기본적으로 재벌 및 대기업 범죄에 관대하다는 것은 그동안의 판결 흐름을 수치화해서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가 지난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화이트칼라 경제범죄와 일반 생계형 범죄에 대한 판사들의 양형을 비교 분석한 자료는 기업범죄의 전형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사건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일반 생계형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는 것을 ‘통계’로 확인시켜주고 있다.(참고 기사:2천원 훔친 노숙자는 감옥 가는데 수백억 떼먹은 ‘회장님’은 왜 집에 가나요?)

쉽게 말해 ‘회장님’들은 수백억의 회삿돈을 떼먹어도 몇천원~몇백만원을 절도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풀려난다는 말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제공:뉴시스

규모와 과정 등을 따져봤을 때 일반적으로 기업범죄는 생계형 범죄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죄질이 무겁다. 법적 형평성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비춰보더라도 당연히 더 엄중한 처벌이 가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판사들의 판결은 기업범죄에 더 관대한 것일까?

판사들의 판단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다. 단독 판사들은 물론이고, 합의부 판사들의 회의 과정은 기록조차 되지 않는다. 판사들을 일일이 불러다 놓고 도대체 그런 판결을 하는 ‘심리’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재벌·기업인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릴 때 내세우는 ‘양형이유’를 토대로 판단 과정에 미치는 요인들을 살펴봤다.

형법에 규정된 양형조건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판사들의 ‘곡예’

법원은 통상 어떤 판결을 내릴 때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 규정에 근거해 피고인의 형량을 정한다. 형법 규정의 양형 조건은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이다.

이 조건은 대개 재벌·기업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창조’된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사법연감을 토대로 분석한 판례에서 이들 양형 조건은 ▲사회공헌 혹은 경제발전 기여 ▲범죄전력 ▲피고인의 나이와 건강 ▲전문경영인의 항변 ▲개인적 이득이 없음 ▲시대적 관행 혹은 특수상황 ▲피해액 변제 ▲재한 및 경영권·직위 상실 ▲피해자나 이해관계자들의 처벌불원 의사 표시 등으로 나타난다.

이 중 판사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양형사유는 ‘피해액 변제’다. 조사 대상 피고인 239명 중 63.2%에 달하는 151명에 대한 판결에서 이 양형사유가 언급됐다. 그 다음이 ‘개인적 이득 없음’(56.5%), ‘범죄전력 없음’(49.8%) 순이었다.

특히 집행유예가 선고된 판결만 놓고 보면 지배주주 일가가 연루된 사건 29건 중 집행유예 선고 사유로 ‘피해액 변제’를 적시한 판결은 무려 28건에 달했다.

여기서 우리는 판사들이 경제범죄의 불순한 동기나 사회에 미친 악영향보다는 해당 범죄로 발생한 피해가 복구됐는지, 범죄 이익이 환수되는지 등을 더욱 비중 있게 고려한다는 점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판사들의 이러한 인식은 재벌·기업인들이 엄청난 규모의 경제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에 피해액을 변제하기만 하면 집행유예로 풀어줄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일종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당연히 재벌·기업인들로선 ‘기소되지 않으면 당연히 돈을 떼먹을 수 있고, 운이 나빠서 걸리면 고스란히 그 돈을 내놓으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손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판사들로부터 보장받게 된다. 판결 본연의 기능인 ‘범죄 억제력’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수백억을 횡령한 재벌·기업인들은 당연히 범죄로 얻은 이익을 다시 반환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생계형 범죄자들은 범죄로 얻은 이익을 반환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고인의 근본적 여건인 ‘경제적 상황’을 토대로 이러한 양형사유를 제시하는 건 다분히 ‘차별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는 또 다른 양형사유는 ‘범죄 목적 및 결과’에 대한 부분이다.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범죄에서 판사들은 별다른 근거 없이 ‘개인적으로 취득한 이익이 없다’는 감형 사유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수백억대 뇌물공여 사건 1심 재판부가 제시한 감형 사유를 보자.

“승계작업은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지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삼성그룹과 각 계열사의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고 인정된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피고인들의 뇌물 및 횡령 범행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완화시키는 요소다.”

석방되면서 미소를 띠는 이재용 부회장.
석방되면서 미소를 띠는 이재용 부회장.ⓒ임화영 기자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게 되면 계열사들의 이익이 곧 이 부회장의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것은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당시 판사는 오로지 감형을 목적으로 그 현실을 애써 묵인했다.

한신공영 김태형 회장의 분식회계 및 대출사기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분식결산에 근거해 피해 금융기관들로부터 편취한 금원 등을 회사의 기존 채무 변제 자금이나 회사 운영자금 등의 용도로 ‘회사를 위해’ 사용했으므로, 회사 공금으로 조성한 비자금도 대부분 공사 수주를 위해 발주처에 되돌려주기 위한 부의자금 등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서 피고인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개인적 이익을 취득한 바가 없다”고 감형 사유를 제시했다.

재판부가 계열사 출자를 위한 금융기관 차입금의 이자를 변제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 등 총수일가를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 제시한 양형 사유 역시 유사한 논리다.

회사의 물적·인적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의미하는 ‘지배권’은 그 자체로 지배주주 일가의 중요한 경제적 이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당수 판사들은 재벌·기업인 범죄의 결과물인 ‘개인적 이익’을 명백히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협소하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 그 해석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배주주일가가 경제범죄를 통해 누리고 있는 실제적 이익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의제함으로써 형사처벌의 예방적 효과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장들의 범죄경력마저 각별히 예우해주는 판사들

주요 양형사유 중 하나인 ‘범죄전력’에 대해서도 판사들은 재벌·기업인 범죄에 한해서는 상당히 편향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범죄 경력’이다. 이 판단 기준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재벌·기업인 범죄 사건에서 판사들이 피고인들의 ‘범죄전력’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04년 안병균 나산그룹 사장의 수천억원대 계열사 자금 횡령 및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사건에서 재판부는 안 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30년 전에 사기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건축법위반죄 등으로 벌금을 몇차례 선고받은 것 외에는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다”고 ‘범죄전력’의 범위를 축소시켜버렸다.

극단적으로 2002년 박정삼 백송종합건설 회장의 수백억대 배임·횡령 사건에서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이유로 “강제추행죄와 도박죄 벌금형 전과 외에 범죄전력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판사들이 재벌·기업인들을 풀어주고자 ‘범죄전력’의 범위를 해석할 때 ‘동종전과 없음’ 또는 ‘벌금형 전과 외에 없음’ 등의 방식으로 그 기준을 자의적으로 완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개별 사건의 양형에 있어 구체적 타당성을 구하기 위한 재량권 행사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무상 ‘집행유예’ 선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인 ‘범죄전력’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재량권을 남용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강경훈 기자

자본권력 정치권력에 빌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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