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기고] 죽어서도 가난을 증명해야 했던 증평 모녀

지난 6일 증평 모녀 사망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모녀의 집 우편함에는 체납독촉고지서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집안에는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후 정부는 더 이상 생활고를 비관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증평 모녀의 죽음은 제도정비 4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사회의 복지제도가 여전히 가난을 방치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발굴해도 지원할 수 있는 복지가 없다

모녀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 증평군과 복지부는 모녀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위기가정을 더 철저히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구멍 난 복지제도로 인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발표되는 구태의연한 내용이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에도 사각지대 일제조사를 진행했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발굴하지 못해서 지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발굴해도 지원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도 복지부는 겨울철 복지사각지대 집중발굴기간을 운영하여 넉 달 동안 59만8000명의 위기가구를 발굴, 35만7000여명에게 복지제도를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복지제도를 지원받은 이들 중 33만 여명은 민간지원에 그쳤다. 공공에서 보장하는 복지제도를 지원받은 인원은 4만2000여명으로 발굴된 인원 중 7%에 불과했다.

복지제도는 가난한 현재상황에 개입할 수 있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복지제도는 누구를 가난하다고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 선정기준을 비현실적으로 정하고 있다. 증평군 같은 농어촌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에게 인정되는 기본재산액은 주거용 재산을 포함해서 2,900만원,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에도 5400만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자기소유 자동차가 있다면 자동차 가액 100%가 매 달 수입으로 잡히게 되어있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경우 재산기준이 조금 높게 책정되어 있지만 증평군 같은 농어촌의 경우 7,250만원으로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더 처절하게 가난해져야만 복지제도에 진입할 수 있다. 생활이 위태로운 상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복지제도는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둔, 알아서 죽으라고 등 떠미는 잔인한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빈곤과 복지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증평 모녀의 죽음을 추모하고 빈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통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빈곤과 복지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증평 모녀의 죽음을 추모하고 빈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통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대책을 촉구했다.ⓒ김슬찬 인턴기자

가난에 ‘진짜’, ‘가짜’는 없다

증평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모녀가 살고 있던 아파트의 전세가, 소유하고 있던 차량의 연식과 모델명, 체납한 공과금과 보험료, 통장잔액 등 심지어 과거 재산내역까지, 사망자의 개인 정보가 과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후 정씨(母)가 잘나가는 학원 강사시절 외제차를 소유했었고 몇 년 전까지 대학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했었다는 등 모녀의 과거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도자료에는 모녀죽음의 원인이 ‘생활고를 비관한 것’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자료가 배포된 이후 죽음의 원인을 ‘생활고 비관’이 아니라 ‘신변 비관’으로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기사들이 보도됐다. 증평군이 모녀 죽음 앞에 취한 태도는 경솔했다. 어떤 취지였던 간에 필요 없는 논란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어중간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제도를 신청해도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모녀와 같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 이들을 위축시킬 위험도 있었다. 사업이 망하고 빚이 쌓이기 시작했다. 함께 살던 배우자가 자살하고 어린 아이와 단 둘이 남았다. 소득은 중단되고 재산은 압류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변 비관’과 ‘생활고 비관’을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을까. 빚이 쌓이고 소득이 중단된 상태에서 잡을 한줌의 지푸라기도 없었던 증평 모녀의 상황은 사회적 위험이 분명했다. 다양해지는 빈곤의 얼굴을 반영하지 못하는 선정기준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자 과제이지 가난을 판가름하는 기준선이 아니다. 더불어 증평 모녀의 상황은 우연히 불운이 겹쳐 온 것도 아니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 한 번의 실패는 한 계단이 아니라 다시 오를 수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가난을 피해 죽음을 택하는 사회를 멈추기 위해

증평모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와 같은 복지제도를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죽음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지만 희망적이지 않다. 현재의 복지제도는 권리가 아니라 낙인적이고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왜 가족으로부터 부양받을 수 없는지’, ‘부채를 어디에 사용했는지’, ‘왜 일을 할 수 없는지’,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 신청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모욕 때문에 신청자체를 하지 않거나 도중에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물론 모녀의 경우 신청했더라도 본인소유로 된 압류차량 등으로 인해 탈락했을 것이다. 어쩌면 복지제도 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며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증평 모녀와 같은 죽음은 위기가구 조사·발굴과 같은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멈출 수 없다. 복지제도를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현실적인 선정기준의 개선과 함께 관리·감시가 아니라 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될 때 가난을 피해 죽음을 택하는 사회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