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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헌법 이야기 ③] 소수자의 권리도 헌법에 명시돼야 한다

헌법이 할 수 있는 일, ‘분배’하고 ‘인정’하라

‘아마티아 센’이라는 인도출신의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 분이 좀 대단합니다. 경제학자인데 하버드대학 법대 교수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하고 긍정하게 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경제학에서는 비주류라 할 수 있는 ‘빈곤과 기근’에 관한 연구로 이 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 대단한 인물이죠. 그런데 이분의 빈곤과 기근에 대한 연구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분이 세계의 역사를 다 뒤져보니, 기근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곳에 두 가지 공통된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하나가 (경쟁이 있는) ‘민주적인 선거’이고, 다른 하는 놀랍게도 ‘언론의 자유’라는 거죠. 다시 말해 민주적인 선거가 있고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에선 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헌법이 할 수 있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복지를 향상시킨다고?

‘카스 선스타인’이라는 법학자가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자문 역할을 맡았던, 이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당대의 천재 중 하나라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선스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티아 센의 이 놀라운 발견을 고려해보자.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려는 좋은 헌법이라면 민주적 선거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다.” 경쟁적 선거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좋은 헌법이 바로 빈곤을 제거하고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것이죠.

이렇게 ‘센’과 ‘선스타인’이라는 대단한 분들의 이름을 빌려온 이유는, 제가 ‘복지를 위한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경쟁이 있는 민주적 선거와 언론의 자유이고, 이런 이유로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이 그다지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누군가는 ‘도대체 선거와 언론이 기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맞는 말입니다. 경쟁하는 선거가 있다는 사실은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기근을 방치한 정부를 유권자들이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자유로운 언론이 보장된다면 당연히 기근을 방치한 정부는 가혹한 비판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광주MBC노조의 파업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자들이 언론자유를 외치고 있다.
광주MBC노조의 파업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자들이 언론자유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런 주장 앞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기근 때문에 걱정하는 건 아니잖아!‘우리가 진짜 걱정하는 건 빈부격차 같은 문제인데 말이야.’ 그런데 이런 주장에도 답할 수 있는 증거자료들이 있습니다. 2017년 ‘국경 없는 기자회’가 내 놓은 언론의 자유 지수를 한번 살펴볼까요?

1위 노르웨이
2위 스웨덴
3위 핀란드

이처럼 북유럽의 복지국가 셋이 언론의 자유지수 1, 2,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복지’와 ‘언론의 자유.’ 양자 간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나요? 언론의 자유지수 10위 내에는 덴마크, 네델란드, 스위스, 벨기에, 아이스란드와 같은 복지국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복지 사이에 소위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 국민의 복지를 생각하는 좋은 헌법이라면 선거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길 주저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죠.

헌법이 ‘다수결의 약점’을 보완한다고?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복지를 향상시킬 것이다는 말에는, ‘기본권을 강화하는 일이 적극적 사회분배에 도움이 된다’는 좀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많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자는 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벌어집니다. 우린 이런 것들을 두고 ‘분배갈등’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는데 기본권의 강화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이런 분배갈등에 더해 기본권 강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갈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 자신이 위치한 지위나 소유한 가치들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지위와 가치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인정갈등’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 중요한 삶의 측면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타자로부터의 존중’이 개인이 사회적 삶을 영위할 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본재’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 다문화 운동 모두 다 이런 ‘사회/타자로부터의 존중’이란 사회적 기본재가 결핍될 때 생겨납니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런데 이런 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 다문화 운동은 ‘다수결’이 지배하는 민주주의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실현 불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여성문제를 두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숨겨진 사실 하나를 더 봐야 합니다. 여성들이 남성중심적 문화에서 성장하며 남성중심적 지식을 수용하고 그 지식 자체에 스스로 복종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종교는 여성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들을 남성들의 부속품처럼 취급합니다. 심지어 여자는 남자들의 갈비뼈 하나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족쇄로 작용합니다. 누구나 이런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다면 여성운동은 필요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처럼 사회에서 다수결이 작동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때가 있습니다. 남성중심적 헤게모니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성평등 문제가 ‘여자반, 남자반이잖아!’는 논리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문제도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데, 성소수자의 권리가 ‘다수결’이란 원칙으로 보호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전제로 성립한 체제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가진 가치나 이념이 사회의 근본을 즉각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것을 유지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런 권리들이 다수결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인정을 요구하는 권리들은 헌법의 기본권에 포함되어 보호되거나,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사법권의 해석을 통해 보호됩니다.

이런 이유로 헌법은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권 조항에 대한 수정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기본법 제79조는 “제1조와 제20조에 규정된 기본원칙에 저촉되는 수정은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렇게 규정함으로써 ‘인간존엄성’을 규정한 제1조, ‘기본적 제도의 원칙들과 헌정질서의 방어’를 규정한 제20조를 기준이 되는 원칙으로 삼아 사실상 수정이 불가한 조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럼 독일기본법 제1조는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걸까요?

제1조 ①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② 그러므로 독일 국민은 이 불가침ㆍ불가양의 인권을 세계의 모든 인류공동체,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 인정한다.
③ 다음에 열거하는 기본권은 직접 적용되는 법으로서 입법권ㆍ행정권ㆍ사법권을 구속한다.

그리고는 3항을 따라 입법권ㆍ행정권ㆍ사법권을 구속하는 기본권을 16조까지 열거하고 있습니다. 다수결로도 수정이 가해질 수 없는 1조 내의 3항으로 인해, 열거된 기본권이 강력하게 보호받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누구는 어떻게 민주주의의 다수결보다 헌법의 기본권 규정이 더 강력한 힘을 갖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수결이 전체구성원의 다수파의 뜻이라면, 헌법의 기본권은 구성원전체의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의 의지의 총합을 넘어서는 일반의지고,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함께 정체를 만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키기로 약속한 계약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헌법이 다수결이란 원칙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수자들의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명백한 규정은 소수자들에게 자신들이 속해 있는 정체에 대한 신뢰를 줄 뿐만 아니라, 달리 생각하는 다수자들에겐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성평등복지국가 개헌 촉구 기자회견에서 '성평등헌법'이 적힌 공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10차 개헌에 성평등-복지국가의 가치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자신들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성평등복지국가 개헌 촉구 기자회견에서 '성평등헌법'이 적힌 공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10차 개헌에 성평등-복지국가의 가치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자신들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슬찬 인턴기자

인간의 존엄은 자신이 믿는 종교나 신념만으로 보호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종교는 이성애외의 다른 성정체성을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병적 문제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민주주의는 다른 가치를 선택한 사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사회/타자로부터의 존중’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헌법을 존중하는 정체에 살고 있다면, 다양성을 보호하는 헌법은 가치가 다른 이들이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짓는 데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점, 여러분도 수긍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 내에서 극단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이번 대통령 발의안에 포함되지 않은 건,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헌법은 한번 수정되고 나면 다시 수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오랜 시간 소수자들은 아주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제도가 수용되려면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바뀐 제도가 사람들의 통념을 바꾸어놓은 사례들도 수 없이 많습니다. 소수자 권리의 헌법적 수용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지향하고 허용하는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이 소수자들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 (발의안 40조 1항; 현행 헌법 37조 1항)는 조항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 곱씹어보면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무시되어 온 게 현실이 아닐까요?

새로운 헌법의 발의안과 수정안들을 보며 힘 빠져 있을 소수자 여러분께 큰 위로는 되지 않겠지만, 여러분의 등을 이렇게 어루만져 봅니다. 토닥토닥.

다음은 헌법이 할 수 있는 일,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하라’입니다.

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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