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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시대를 뛰어넘는 달콤한 청춘 음악에 취할 시간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일렉트릭 뮤즈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리게 하는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지 않으면 감정과 공기를 전달할 수 없다. 음악/예술언어는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존재한다. 가령 낭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봄날의 꽃, 해사한 빛, 눈부신 청춘, 들뜬 마음 같은 상황을 음악/예술언어로 묘사하고 옮겨 담아야 한다.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가 전해지게 해야 한다.

4월 13일 두 번째 정규음반 ‘Where We Were Together’을 내놓은 부산의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의 음악에는 일렁이는 파도 같은 낭만의 싱그러움이 그득하다. 세이수미의 2집에 담긴 곡은 11곡. 이 음반을 들으면 한국 인디 신, 혹은 밴드 신에서 꾸준히 이어진 모던 록과 인디 팝의 흐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화려한 연주력과 강력한 사운드를 뿜기보다는 달콤한 멜로디와 설레는 경쾌함으로 소년소녀들을 사로잡았던 밴드들과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공간들이 스쳐간다. 해마다 피어나는 한국 인디 신의 꽃송이들 가운데 가장 달콤했던 인디 팝의 향기를 마시며 많은 이들이 나이 들었다. 하지만 멋지게만 보였던 뮤지션들도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내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춘은 끝나지 않는다. 지나간 추억으로 청춘은 살아있고, 누군가는 바로 지금 청춘이다. 그리고 오직 일렉트로닉과 힙합만으로 청춘을 노래할 이유는 없다.

세이수미 정규 2집 ‘Where We Were Together’
세이수미 정규 2집 ‘Where We Were Together’ⓒ일렉트릭 뮤즈

가볍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음악에 무게를 실어준 세이수미 2집

세이수미는 인디 팝과 슈게이징, 서프록 스타일을 뒤섞어 청춘을 복기한다. 낭만과 치기와 혼란이 뒤섞였던 시간을 되살린다. 이미 오래된 스타일을 구사하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에는 자연스럽게 시간의 무게가 쌓이고, 현재보다는 과거 쪽으로 기운다. 그렇지만 멜로디는 달콤하고 리듬은 경쾌하다. 보컬은 부드럽고 일렉트릭 기타의 징글쟁글한 울림은 다정하다. 그런데 이들의 선율 안에는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드러난다. 음반의 첫 번째 곡 ‘Let It Begin’에서부터 세이수미는 그 언젠가 시끄러운 바에 머무르며 술에 취한 채 춤을 추고,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가 함께였던 순간들을 불러온다. 그 순간 어둡고 들뜨고 요동쳤던 마음, 그러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낭만적이었던, 혹은 이제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 시간과 공간을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끌어낸다. 단순한 리듬의 노래임에도 기타를 앞세운 연주와 보컬에 깃든 공간감은 단지 술 때문에 취하지 않았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특히 음악의 뒷면에서 흘러가는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이들이 슈게이징 사운드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가볍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음악에 무게를 실어준다.

세이수미 정규 2집 ‘Where We Were Together’
세이수미 정규 2집 ‘Where We Were Together’ⓒ일렉트릭 뮤즈

음반 전반부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경쾌한 리듬으로 명료한 멜로디를 노래하면서 낭만이라고 총칭할 수 있는 마음을 그린다.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But I Like You’에서도 멜로디는 예쁘고, 곡의 구조는 예상 가능한 흐름을 따라간다. 친근한 멜로디와 리듬을 반복하고, 화사한 기타 스트로크에 아기자기한 기타 아르페지오를 넣어 섬세함을 만들어내는 음악은 달콤하다. 그러나 세이수미가 준비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비트와 톤을 바꿔 변화를 주고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세이수미는 낭만 안에서 요동쳤던 마음의 파동을 충분히 담아낸다. 좀 더 빠른 백비트를 타는 타이틀곡 ‘Old Town’에서도 오래된 동네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 무감해진 마음, 공허한 마음까지 놓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청춘과 낭만의 뒷면에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 무지와 체념이 있었다. 항상 활기가 넘쳐 보이고 신나보인다 해도 세상은 미처 다 알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오직 넘치도록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 그래서 애써 태연한 척, 잘해낼 수 있는 척 가장했지만 잠시도 막막함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봄꽃처럼 금세 져서 숱한 오늘들은 순식간에 추억이 되어버렸다. ‘Old Town’은 음악 속 속도감과 경쾌함으로 짐짓 혼란을 감추는 청춘을 잘 담아냈다. 예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무게감을 더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너와 나의 것’도 경쾌한 보사노바의 리듬감과 영롱한 사운드를 결합시켜 “밝고 맑은 것들이 우릴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다시 들리게 한다.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일렉트릭 뮤즈

다른 리듬과 멜로디와 사운드로 유사한 정서를 재현한 ‘Where We Were Together’

이미 많은 이들이 해냈던 스타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리듬과 멜로디와 사운드로 유사한 정서를 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세이수미의 2집이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재현의 충실성과 밀도, 그리고 차이 때문이다. 동일한 스타일을 구사하더라도 다른 주체, 다른 언어, 다른 지역, 다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결국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마련인데, 이 음반은 여러 차이에도 동일한 정서를 느끼게 하고 그 이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동일한 장르의 방법론과 사운드, 창작자의 태도 뿐만 아니라 어떤 시대와 체제에도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는 삶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유사함을 만들면서 이 음반을 보편적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음반이 청춘과 낭만의 기록으로 밀도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세이수미가 청춘과 낭만의 유사함과 보편성을 음악으로 충분히 표현해 생동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음반에서 가장 매끄러운 곡인 ‘Funny And Cake’을 비롯한 어떤 곡이든 듣는 동안 충만한 에너지에 빠져들게 된다. 음악은 그 공명과 공감이 전부이며 모든 것이다.

음반은 펑크와 개러지의 역동성이 느껴지는 ‘I Just Wanna Dance’와 ‘B Lover’에서부터 훨씬 록킹한 사운드를 뿜으면서 변화를 주는데, 전반부의 팝 스타일과 대비되면서 세이수미의 폭넓은 감수성과 능숙한 창작력, 그리고 개성을 확인시킨다. 드림팝의 몽롱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어떤 꿈’은 다른 스타일에도 음반의 전반부와 다르지 않은 정서를 유지하면서 음반을 더 풍성하게 한다. 팝의 달콤함과 록의 강렬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에 대하여’와 사운드를 폭발시키는 ‘Come To The End’도 마찬가지이다. 세이수미의 음악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미 어떤 장르이든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만큼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 기반 플랫폼들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교감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국내외 네트워크도 쌓이고 있다. 다만 세이수미의 음악이 국내에서 얼마나 연결되고 확장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록 음악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토대가 고르게 굳건하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 이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발랄하고 때로 과감한 음악이 현재의 청춘과 낭만으로 어떻게 침투하고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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