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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우리를 도피하게 하고, 쉬게 하고, 세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음악

레퍼런스라는 단어가 있다. Reference. 참고라는 뜻의 이 단어를 주변 대중음악계 사람들이 자주 쓴다. 음악을 만들거나 배울 때 어떤 음악을 참고했는지, 어떤 음악과 사운드를 모델로 삼았는지 이야기 나누면서 레퍼런스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기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음악, 자신이 추구하는 장르의 거장이 만든 음악은 모두 레퍼런스다. 세상의 어떤 음악도 부모 없는 자식처럼 유아독존하고 새롭기는 불가능한 일. 한 곡의 음악에는 누군가의 흔적 같은 레퍼런스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음악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누군가의 음악에 묻은 다른 이의 흔적을 발견해 아는 체 하기도 한다. 다른 이의 흔적이 묻어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의 흔적이 묻어있다는 사실만으로 흠결이 될 수는 없다. 부러 누군가의 흔적을 입힌다고 금세 좋은 작품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1972의 엘범 ‘따듯한 바람’
1972의 엘범 ‘따듯한 바람’ⓒ애프터눈 레코드

스타일이 살아 움직이는 ‘레퍼런스’

최근 첫 정규 음반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1972의 음악에도 레퍼런스가 느껴진다. 어떤날, 윤상, 재주소년의 음악이 떠오르는 이유는 1972의 음악이 포크이면서 일렉트로닉을 적극적으로 가미하고, 재즈의 어법을 활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낮고 작게 소곤대는 보컬, 내밀하고 세련된 미니멀 사운드. 곡마다 배어있는 매끈한 공간감. 그리고 노랫말을 통해 드러내는 일관된 평화로움은 어떤날, 윤상, 재주소년을 비롯한 몇몇 뮤지션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스타일을 레퍼런스 삼고 싶다 해서 해당 스타일의 미적 정점을 자신의 음악으로 고스란히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스타일을 옮긴다 해도 곡을 옮길 수는 없다. 자신의 언어로 노랫말과 곡을 잘 써야만 비로소 스타일이 살아 움직인다. 스타일만 있는 음악은 마네킹처럼 생동감이 없다.

싱어송라이터 1972는 첫 음반 ‘따듯한 바람’에 담은 11곡의 일렉트로닉 포크 곡 안에 레퍼런스가 느껴지는 편안하고 세련되며 아름다운 질감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곡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음반을 듣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음반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영롱한 사운드는 듣는 이에게 잔잔하고 편안한 안식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한다. 옅은 안개가 깔려 있는 듯 몽롱한 무드를 만들어내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투명한 포크 사운드가 인공적인 사운드와 자연스러운 사운드라는 상반된 질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손상시키지 않고 녹아들면서 음악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바로 이 점이 1972의 창작력을 보여주는 지점이며, 이 음반이 구현해낸 아름다움의 핵심이다.

어찌 보면 포크의 어법과 사운드는 오로지 어쿠스틱 악기에만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1972는 포크의 투명한 질감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곱고 영롱한 파장을 더해 보완하고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보편적인 포크와 차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울림을 이끌어냈다. 그가 곡에서 사용하는 사운드는 대개의 포크가 그러하듯 여리고 섬세하다. 그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할 때도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한 포크의 사운드를 손상시키지 않고 그 사운드의 배면에서 은근하게 퍼지게 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포크의 자연스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신디사이저 연주와 일렉트로닉 비트로 무드를 더해 서정적인 질감을 만들어내면서 포크 음악이 만들어냈던 고운 질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소박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고 영롱한 정서로 나아가는 1972의 ‘따뜻한 바람’

첫 곡 ‘cloud of bliss’에서 사용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기타의 울림이 창출하는 담백함에 미묘하고 촉촉한 공간감을 더함으로써 포크 음악이 만들어내는 서정성을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충만하게 잇고 확장했다. 1972는 곡에 따라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포크 음악의 무게 중심을 적절하게 바꿔가면서 담는다. ‘마음’과 ‘따듯한 바람’은 포크 음악에 더 가까운 곡이지만 이 두 곡의 배면에 흐르는 건반 연주와 반짝이는 뿅뿅거림, 멀티 트랙의 공간감은 일렉트로닉 포크가 아니라면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낮은 보컬의 데시벨을 뛰어넘지 않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편안하다.

그리고 ‘벽’에서는 일렉트로닉의 어법에 무게감을 실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의 파장을 더 생생하게 복원한다. 곡의 길이가 길지 않고, 곡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하고 짧은 곡의 한계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풍부한 파장으로 상쇄된다. 이처럼 효과적인 사운드 메이킹은 ‘섬의 창문’, ‘fallin’ my star’처럼 소박한 포크 곡들에서도 이어진다. 보컬과 기타, 피아노, 드럼의 간결한 연주에 여운을 더하는 프로그래밍 사운드는 최소한의 연주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72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이처럼 의도적으로 비우면서, 의도적인 비움마저 처음부터 그러했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게 한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1972만의 것이 아니지만 1972는 이 또한 능숙하다. 트럼펫을 활용해 재즈의 여운이 느껴지게 하는 ‘날씨’와 ‘푸른 바다를 달리다’는 최소한의 재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1972의 감각이 빛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면에 내건 ‘달빛에 입술’에서도 음악의 톤과 사운드는 내밀하고 소박하다.

그리고 이 같은 감각을 살아있게 만드는 힘은 1972의 곡들이 품고 있는 멜로디의 완성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1972는 자신이 가사로 표현한 상황과 정서를 사운드로 구현할 뿐만 아니라 여린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내는 멜로디로 친숙하면서도 아릿하게 드러낸다. 멜로디, 리듬, 사운드 등으로 감정과 생각을 밀도 높게 재현해야 비로소 공감하게 되는 음악에서 1972의 음반에 담긴 곡들은 어느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소박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고 영롱한 정서를 향해 나아간다. 삶은 기본적으로 고통에 가깝고, 세상은 늘 어지러운데 1972의 음악은 그 와중에 드물게 만나는 평화와 안식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덕분에 우리는 음악으로 도피할 수 있고, 음악 속에서 쉴 수 있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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