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날마다 완성되는 예술가의 자화상
송영주의 첫 솔로 라이브 앨범 'Late Fall'
송영주의 첫 솔로 라이브 앨범 'Late Fall'ⓒ블루룸뮤직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계속 예술가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오지 않았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그저 우연일 뿐. 그럼에도 일단 세상에 온 다음 우리는 스스로 삶을 멈추거나 멈춰지기 전까지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간다는 말은 스스로 노동해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말이고, 타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이고,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다른 이들이 인정할만큼 실력을 쌓아야 한다. 작품으로든, 교육으로든, 사업으로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예술가로 존재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정받기는 어렵다.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해 대학 정규교육을 받고 열심히 작품을 만든다 해도 좋은 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능이 부족해서이건 노력이 부족해서이건 안 되는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해도 재능이 계속 유지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이들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놀랍도록 빼어난 재능을 계속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아티스트는 드물다. 예술가들이 기를 쓰고 연습을 하는 이유는 그나마 있는 재능이라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끝내 자신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음을, 더 이상 젊은 예술가들처럼 발칙하거나 에너지 넘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오랜 경륜을 가진 예술가들은 대신 원숙함과 숙련성이 빛나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 관습적이고 생동감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고 창작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결국 창작은 오늘의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고,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유행이나 인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으나 결국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결과물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세상의 반응을 감당하는 일이다. 외롭지 않을 수 없고, 고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새 음반 [Late Fall]을 앞에 두고 말이 길었다. 2005년 첫 음반 [Turning Point]를 발표하며 데뷔한 송영주는 그동안 6장의 정규 음반과 10주년 기념음반, 크리스마스 음반을 비롯 10장의 음반을 발표한 대표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재즈뿐만 아니라 김동률을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의 세션으로도 활동하고, 대학 강의를 맡고 있는 송영주는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분주하다. 지난 4월 26일 발표한 새 음반 [Late Fall]은 송영주의 정규 음반이면서 첫 번째 라이브 음반이다. 재즈 뮤지션들의 음반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지만 라이브 음반은 드문 상황에서 송영주의 라이브 음반은 피아노 한 대로만 채운 솔로 피아노 공연 실황을 담았다. 지난 해 12월 22일 대학로 JCC 아트센터에서 진행한 솔로 피아노 공연을 기록한 이번 음반 수록곡은 총 9곡. 모두 자신의 창작곡이다. 첫 번째 곡 ‘Prelude’는 1집 [Turning Point] 수록곡이고, ‘Late Fall’와 ‘Uncharted Road’는 6집 [Between] 수록곡이다. ‘Seven Years’는 5집 [Tale Of A City]에 담겼고, ‘Love Never Fails’는 4집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Reminiscence’는 유일한 신곡이다. ‘Snowfall’은 5집 수록곡이고, ‘Song In My Heart’는 기존 발표곡이다.

송영주의 라이브 실황
송영주의 라이브 실황ⓒ송영주 제공

자신의 창작곡을 두루 아울러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한 공연 실황 음반에서 도드라지는 점은 송영주가 쌓아온 한결 같은 서정성이다. 송영주는 비밥에 가까운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서정적인 멜로디를 기반으로 음의 시(詩)를 쓰는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재즈 연주자들과 연주하고, 즉흥연주를 하면서 리듬감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송영주는 재즈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서사를 구축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보여주고 싶은 시공간과 이야기가 송영주의 피아니시즘으로 구현될 때 송영주의 피아노는 느리거나 빠르거나 한결 같이 따뜻하고 다정하며 깔끔하고 풍요로웠다. 클래식에서 출발한 송영주의 이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며, 송영주의 음악에 기대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송영주가 처음으로 내놓은 솔로 피아노 라이브 음반에서는 바로 자신의 음악이 지닌, 혹은 음악 속에 존재하며 자신의 피아노로 구현하는 서정성을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대부분 이미 발표한 곡임에도 베이스, 드럼을 비롯한 악기를 제외하고 송영주의 피아노만을 남겨두었을 때 송영주의 음악은 명료해진다. 이미 만들어 놓은 곡의 세련된 멜로디는 그 자체로 충실한 서사를 완성했는데, 송영주의 피아노만으로 연주하는 순간 애잔하거나 간절하거나 담담한 정서는 더욱 아련하게 깊어진다. 여기에 송영주는 피아노 한 대만으로 연주하는 즉흥연주를 더해 원곡의 정서를 우아하게 변주하고 확장한다. 얼마든지 더 화려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음에도 원곡의 정서가 설정해놓은 경계를 넘실거릴 뿐 넘어서지 않는 즉흥연주의 중용은 차분하면서 동시에 자유롭게 밀려가고 밀려온다. 자유롭게 밀려가는 즉흥연주를 통해 서정성이 증폭되는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가 무심한 듯 은근해지는 순간까지 응시하게 되는 음반은 잔잔한 톤 덕분에 소품집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곁에 두고 듣게 된다. 무엇보다 송영주 음악의 뿌리 같은 원형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반이다.

송영주의 첫 솔로 라이브 앨범 'Late Fall' 표지
송영주의 첫 솔로 라이브 앨범 'Late Fall' 표지ⓒ블루룸뮤직

어쩌면 누군가는 느슨하다거나 심심하다고 말할 수 있고, 트렌디한 음반에 밀려 크게 주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오래도록 송영주를 들어온 이라면 다시 송영주의 음악 세계에 침잠하게 되는 음반이다. 여전히 송영주가 애쓰는 덕분이다. 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표하는 일이 음악가의 일이라지만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고 쌓이고 단련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감동도 없다. 오늘 송영주는 머물러 있거나 후퇴하지 않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세계 안에서 꾸준히 깊어지고 있다. 예술가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그렇게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송영주의 음악이 계속 완성되고 있으니 송영주에게 눈을 뗄 수 없다. 한 사람의 음악가에게 무엇을 더 바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