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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조용필’
12일 열린 2018 조용필&위대한 탄생 5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Thanks To You’ 서울 공연에서 환하게 웃는 가수 조용필.
12일 열린 2018 조용필&위대한 탄생 5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Thanks To You’ 서울 공연에서 환하게 웃는 가수 조용필.ⓒ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조용필’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콘서트 날(12일)엔 비가 왔다. 공연을 한 시간 쯤 앞두고 도착한 잠실운동장 역에는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중년의 물결. 손을 잡고 온 부부와 때때로 엄마 손을 잡고 온 딸(아들은 보지 못했다!)과 친구들과 뭉쳐서 온 아줌마·아저씨 팬들의 표정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밝았다.

하지만 기자는 혼자 다니는 법. ‘이 비를 계속 맞으면 결국 추워지고 말거야’, ‘왜 후배들이 하게 그냥 두지 오지랍 넓게 나서 가지고 내가 쓴다고 했을까’ 이런 식으로 투덜거리면서 나는 잔디 운동장 한 가운데에 앉았다. 그리고 10시 좀 넘어서까지 세 시간 넘게 꼼짝도 하지 않고 공연을 봤다. 비가 와서 조금만 움직여도 비옷 사이로 고인 빗물이 흘러들 판이었으니, 그리고 주변에 앉은 기자들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 4만5천 명의 팬들과 달리 아무런 흥겨움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조용필은 이날 25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고, 몇몇 히트곡을 ‘맛보기’로 들려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는데, 이 모든 노래는 하나같이 내가 아는 노래였다. 음악에 거의 관심이 없고, 열 살 이후로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산 적이 없는 데도 말이다.

중간 쯤일까. 그가 ‘허공’을 부르자 관객들이 다같이 따라불렀다. 문득 눈물이 흘러나왔다. 1년 전 쯤 세상을 뜬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그 가사를 적어달라고 해서 들고다니며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돌이켜 보면 그의 노래에는 ‘조용필’이 아닌 얼굴들이 있다. ‘바람의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던 잘생긴 친구는 지금 다른 나라에 산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났다(Q)”던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었던 ‘너’와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더니 결국 ‘너’와 함께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고,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창밖의 여자)”며 폼을 잡던 사촌 형은 그새 세상을 떴다. ‘미지의 세계’를 찾으러 간 건축쟁이는 이제 집은 더 이상 안 짓고 남이 지어준 집에 산다. “21세기가 간절히 자신을 원했다(킬리만자로의 표범)”고 우기던 한 선배는 21세기가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누군가의 부름은 받지 못했다.

단테의 애인이었다던 ‘슬픈 베아트리체’를 끝으로 공연이 끝나갈 때까지 이런 얼굴들은 끊임없이 나를 스쳐갔다. 그리고 이어진 앵콜곡 - 이건 아마 미리 정해져 있었을 게 분명한데 - ‘꿈’과 ‘친구여’에서 그 얼굴은 나로 바뀌었다. 국민학교 6학년 쯤일 것이다. 봄을 맞아 학교에서 30분쯤 걸어 허름한 사찰로 간 소풍에서 ‘친구여’를 부르던 나의 모습이 부감으로 떠올랐다. 어린 아이가 “하늘에서 잠자는” 꿈이나 “구름 따라 흐르는” 추억을 뭘 알았겠나, 그저 다른 노래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니 조숙한 티를 내고 싶었겠지. 나는 쑥스러워져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조용필의 음악적 성취가 무엇인지, 이 날의 공연이 얼마나 잘 꾸며진 것인지에 대해 나는 뭐라고 보탤 재주를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그럭저럭 늙어가는 중년이 되어 비오는 공연장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을 떠올릴 뿐이다. 내가 의식하지도 애쓰지도 않았는데 그런 풍경의 뒤에서 원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흘러나오는 노래가 나에겐 조용필의 노래였다. 아마 ‘우리’도 그랬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나마 감사를 드린다. ‘고마워요, 조용필.’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조용필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조용필ⓒ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이정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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