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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압박공세에 ‘북미정상회담 취소’ 경고한 북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자료사진

북한이 16일 자국에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하려고 한다면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간 물밑접촉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던 도중 미국의 대북 압박이 계속되자 참다 못해 결국 발끈한 모습이다.

특히 협상을 이끌고 있는 존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는 점에서 대화의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인 기회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김계관, 볼튼 향해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하려는 게 아닌 불순한 의도 가져"

북한은 이날 새벽 한미연합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문제 삼으며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우리 측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예정돼 있던 남북고위급회담은 무산됐다. 이번 회담은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의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던 만큼 우리로서도 뼈 아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보도를 통해 맥스선더 훈련을 "무분별한 북침 전쟁 소동"이라고 언급하며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를 겨냥하여 벌어지고 있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맥스선더 훈련에는 스텔스 전투기 F-22와 핵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 B-52가 참가할 예정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 훈련들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많은 동맹국과 하는 것이고, 수십 년간 해온 일들"이라며 "김정은은 우리가 합동훈련을 계속하는 것이 미국에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는 데 대해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이 그동안 언급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의 범위를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하면서 사실상 미국을 향한 메시지를 낸 셈이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자료사진.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자료사진.ⓒ뉴시스/AP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북미정상회담까지 재고할 수밖에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인 3명을 석방한데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조치에 들어갔음에도 미국이 대북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특히 김계관 제1부상이 볼튼 보좌관을 지목해 비판한 점이 주목된다. 김 제1부상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를 역임할 당시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협상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 및 10·3 합의를 끌어낸 전형적인 대미 협상가로 꼽힌다. 그 시기는 미국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기였는데, 당시 볼튼 보좌관은 네오콘의 이론가로 불리며 대북 강경 입장을 주도하며 김 제1부상과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김 제1부상이 볼튼 보좌관이 '북미 대화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며 또다시 불신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김 제1부장의 담화에는 그동안 볼튼 보좌관이 '리비아식 핵포기' 모델과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강조하고,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 테네시주의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거나, 비핵화 대상이 아니었던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동시에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한 데 대한 불만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 제1부상은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지적했다.

존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뉴시스/AP

"북한, 미국에 '우리를 얕잡아 보지 말라' 경고한 것"

이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승전국이 패전국에 요구하는 굴욕 수준'으로 받아들여 앞으로 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북미 대화가) 분명히 쉽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지만 태영호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북한이 생각보다 세게 나온 것 같다"며 "가만히 있다가는 무릎 꿇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를 얕잡아 보지 말라', '바보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미국은 더 이상 전승국처럼 행세할 것이 아니라, 호혜적인 결단들을 내림으로써 북미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자신들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신호는 보내면서, 정작 상대로 하여금 자신들을 믿게 할 신호는 내놓지 않고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야 협상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음을 미국이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북한이 어렵게 만들어진 북미정상회담 자체를 깨려고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계관 제1부상이 담화에서 미국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대통령 안보외교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이날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포럼 강연에서 "상황을 낙관한다"며 "외교사에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실패해도 성공으로 포장하거나, 실패할 거면 아예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tbs라디오에 출연해 "(상황이) 좋은 건 아닌데 북미정상회담에는 영향을 안 미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미국 역시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은 북한의 조치에 유의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이어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미정상회담 성사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며 "우리는 계속 그 길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은 그 이상의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와중에 이날 오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긴급 회동을 갖고 논란이 된 전략폭격기 B-52의 맥스선더 훈련 불참을 결정했다고 알려진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로 읽힌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북미간 '중재자'를 자처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준비가 양국간에 잘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북미간의 마찰이 겉으로 표출되면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현재 상황은 오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히 더 드릴 말씀이 없고, 진전된 상황도 없다"며 "다만 지금의 상황은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진통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는 "북한이 보내온 전통문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하루종일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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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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