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여든 앞둔 5.18어머니가 1980년 광주 지킨 고1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오는 18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 되는 날입니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수많은 광주시민이 군인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던 1980년 광주의 5월. 이들의 유족들은 아직도 아픔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길자(79)씨도 당시 광주상고에 다니던 고1 아들 문재학(당시 16세)군을 잃은 유가족입니다.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기 위해 거리에서 싸웠고, 지금까지 5.18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5.18이 사람들에게 잊히는 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들과 아들의 죽음이 민주주의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5.18에 세상을 등진 자식을 그리워하는 노모가 보내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 문재학 군을 잃은 김길자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 문재학 군을 잃은 김길자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민중의소리

보고 싶은 내 아들 재학이에게

재학아,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너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였는데, 엄마는 이제 팔순을 바라본 할머니가 되었단다. 엄마는 네가 생각날 때마다 천국에서 잘 지내리라 생각하고 혼자 위안을 하곤 한다.

하필이면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 우리가 사업에 실패하고 남의 집에서 살았었지.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먹고 싶은 것 먹이지 못하고, 입고 싶은 것 입히지 못할 때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니. 그렇게 너를 보냈으니 지금도 그 짠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구나.

이름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우리 아들 재학아, 불러도 불러도 이제는 볼 수가 없어 노래를 부른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지 어느덧 38년이 흘렀구나, 누가 그러더라.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고,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김치찌개를 유난히 좋아했던 우리 아들, 그래서 김치찌개를 만들 때마다 많이도 울었단다.

석양이 질 때 옥상에 올라가 노을을 바라보면서 돌아오지 않은 너를 애타게 부르며 울던 기억이 나는구나. 동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다들 실성했다고 했단다.

도청 지키겠다던 고1 아들이 망월동에 묻혔다
여든 노모의 약속 “5월 광주 잊히지 않도록 노력할게”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김길자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김길자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그때 너를 데리러 도청에 갔을 때, 나만 살자고 돌아가기 싫다며 선배들과 같이 도청을 지키고 싶다는 너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구나. 그날 5월 27일 새벽 총소리가 빗발쳤을 때 엄마의 가슴이 찢어지고 또 찢어졌단다. 우리 재학이가 저기 있는데··· 그리고 총소리가 멈췄고, 한동안 너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단다.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망월동에 묻힌 너를 찾을 수 있었지. 그때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단다. 왜 그때 너를 더 강하게 붙잡고 집에 데려오지 못했는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전두환 정권이 너를 폭도라고 했을 때 엄마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단다. 폭도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엄마는 아주 큰 용기를 냈다. 며칠씩 굶어도 쓰러지지 않았고, 경찰에 끌려가고 두들겨 맞고 박이 터져도 포기하지 않았단다. 그랬더니 폭도 누명이 벗겨지더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재학아. 37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 기억 속에는 잊혀 가고 있지만, 엄마는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을 수가 없구나. 그러나 지금은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우리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단다. 누가 죽음이 무섭지 않겠냐. 하지만 17세 나이에 훌륭한 결단을 한 우리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너의 훌륭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때 일어났던 그 무서웠던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게.

사랑한다. 우리 아들 재학아

관련기사

김길자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