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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피와 씨앗’이 던진 질문
연극 '피와 씨앗'_맨 오른쪽 이기현(아이작 역), 오른쪽 두 번째 우미화(소피아 역)
연극 '피와 씨앗'_맨 오른쪽 이기현(아이작 역), 오른쪽 두 번째 우미화(소피아 역)ⓒ두산아트센터 제공

철로 위에 노동자 5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을 향해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기차가 달려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5명은 꼼짝없이 목숨을 잃고 만다.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레일변환기로 방향을 틀어서 트롤리가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방향엔 한 사람이 서 있다. 한 사람을 희생하게 하는 대신 다섯 사람을 살릴 것인가. 만약 내가 방향전환기 앞에 서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영국 윤리 철학자 필리파 푸트는 ‘트롤리 딜레마’를 통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국의 도덕 철학자 주디스 톰슨은 트롤리 딜레마에 추가적인 제안을 하게 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기차가 5명의 노동자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 무거운 물체를 아래에 떨어뜨리면 열차를 멈춰 노동자들을 살릴 수 있다. 마침 육교 위에 트롤리를 멈출 수 있을 무게의 뚱뚱한 사람이 서 있다면 당신은 그를 희생시켜 5명의 노동자를 살릴 것인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뚱뚱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경우의 수를 넣어보자. 노동자들과 다른 편 레일에 서 있는 사람이 흉악범이라면, 혹은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범죄자라면 우리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혹은 노동자 5명이 아니라 초등학생 100명이라면 레일변환기 버튼을 눌러 트롤리 기차가 1명이 서 있는 곳으로 돌진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그 1명이 나의 연인이라면 혹은 나의 가족이라면 선택은 또 달라지지 않을까.

필리파 푸트의 트롤리 딜레마는 ‘당연히 한명을 포기하고 다수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생각이 기본적으로 ‘맞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경우의 수를 조금만 늘려가다 보면 우리가 윤리적으로 당연히 ‘맞다’고 여기는 것들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지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윤리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윤리적인 행동이 되는가’라는 물음들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롭 드러먼드가 쓴 ‘피와 씨앗’이다. 롭 드러먼드 역시 작가노트를 통해서 트롤리 딜레마를 언급하고 해당 딜레마에서 파생되는 모순들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와 씨앗’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 묻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적인 윤리에 대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신경 쓰는 목숨과 그렇지 않은 목숨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이 윤리인가? 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름에 대해 결정하는가?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정당화될 수도 있는가?” (두산아트센터 롭 드러먼드 작가노트 중)

사실 ‘피와 씨앗’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기차와 5명의 노동자 사례보다 더 예민하고 치열한 문제를 담고 있다. 가족 간의 장기기증이 그것이다. 극중 인물들의 가족관계가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관계에서 동떨어져 있는 만큼 이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의 간극은 더욱 크다. 그래서 작품은 트롤리 모순보다 더 치명적인 모순을 제시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더 치열한 고민을 하도록 이끈다. 관객은 극중 인물 어느 누구도 지지 혹은 비난할 수 없게 되며 ‘윤리’ 그 자체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윤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는지 예민하게 감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성공적이다.

세상이 자본화 될수록 윤리의 의미가 변질된다. 그간 ‘맞다’고 여겨왔던 윤리에 오류는 없었는지 윤리의 의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요즘이다. 그러한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진 인간의 삶은 좀 더 건강하고 보호받을 수 있다.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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