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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34년차 뮤지션 안치환은 오늘도 노래한다

안치환이 노래한다. 34년째다. 대학 노래패에서 시작해 노래모임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쳐 솔로로 활동하는 동안 34년이 지나갔다. 대통령이 여섯 번 바뀌었고, 11장의 정규 음반이 쌓였다. ‘솔아 푸르른 솔아’, ‘소금인형’, ‘내가 만일’, ‘자유’, ‘수풀을 헤치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히트곡은 안치환을 친근하고 뜨거운 뮤지션으로 각인시켰다. 그는 1980년대의 신념과 열정을 상징하는 뮤지션이자, 우리 사회의 공공선을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그런데 그가 만든 노래는 훨씬 많다. 안치환은 11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광장에서 함께 불러 좋은 노래만 만들지 않았다. 안치환은 싱어송라이터이자 록커로 록과 팝과 포크를 넘나들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질곡과 모순을 응시하고 고발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과 순정한 마음을 노래했다. 특히 그의 노래는 메시지만큼 깊고 짙어 좋아하지 않기 어려웠다. 그의 노래가 시대를 대변했기 때문에 사랑한 이들이 많았으나, 그의 음반에는 더 사랑받아야 할 노래들이 그득했다. 건강하고 진지한 시선을 그만큼 보편적이고 호소력 있게 담아낸 뮤지션은 드물다. 그는 몇 곡의 히트곡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뮤지션이다.

다들 뮤지션 안치환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안치환의 음악은 아직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 그는 3년 전 11번째 음반 [50]을 내놓았고, 틈틈이 싱글을 발표했다. 11집을 발표하고 3년이 흐른 2018년 5월, 안치환은 다시 정규 음반을 내놓았다. 정규 12집 [53]이다. 뮤지션이 음반을 내는 일은 생업이지만, 그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 노래하던 이들 중 새 음반을 내는 뮤지션은 드물고 드물다. 이제는 행사장을 돌며 히트곡만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안치환은 여전히 새로운 곡들로 정규음반을 낸다. 그의 음반이 늘어가는 동안 안치환의 음악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치환 12집 ‘53’ 앨범 표지
안치환 12집 ‘53’ 앨범 표지ⓒ숨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장의 음반을 묶은 12집 [53]에서 안치환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거나 스타일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해왔던 록, 팝, 포크에 머물러 있다. 그는 늘 그래왔듯 세상과 세상을 보는 자신을 노래한다. 2장으로 나눠 담은 음반 중 한 장은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는 불화살이고, 다른 한 장은 자신의 근황을 담은 사진첩이다. 안치환은 그동안 서정적인 시노래나 비판적인 메시지를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007년에 내놓은 9집에서부터는 힘을 빼고,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예전 같으면 보여주지 않았을, 흔들리는 안치환을 담은 노래들은 밀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산만했지만, 자신을 가감 없이 기록한 노래라는 점에서 솔직했다. 안치환은 가장 잘 만든 노래나 가장 유명해진 노래와 비교해 노래를 발표하지 않고, 지금 자신에게 온 노래를 계속 낚아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현재를 계속 기록하고 드러냈다. 덕분에 명곡을 만든 안치환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안치환, 꾸준히 음악을 만드는 안치환, 시간 속에서 달라지는 안치환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장르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포크 싱어송라이터답게 안치환은 자신의 노래로 자신을 말하고, 세대를 말하고, 시대를 말하고, 인간을 말하는 중이다. 멋지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사라지고, 당위를 위해 노래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지는 나이가 된 안치환은 지금 자신에게 가장 간절하고 뜨거운 말들을 노래로 옮긴다. 음반의 타이틀은 당연히 자신의 나이인 [53]이다.

‘Intro 2’를 지나 흘러나오는 [53] 음반의 노래들에는 쉰 셋의 무게감이 숨겨지지 않는다. 노랫말 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봄이 다시 피어나고 다시 날아오기를 바라는 ‘봄보로봄봄봄’이나 “이러다가 언젠간/점점 느려지겠지/단단하던 다리도/몸도 힘이 빠질거야//더 이상 걷지 못하면/등짝에 짐도 내리고/홀가분하게 큰 숨 한 번/그리고 안식의 나라로”라고 노래하는 ‘길(On The Road’은 부정하지 않는 중년의 노래이다. “도대체 난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흥, 사랑을 위해/겨우겨우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지만/이젠 정말 빨리 해가 졌으면 좋겠네요”라고 노래하는 ‘오, 마이 갓!’도 마찬가지이다. 팽팽하고 뜨거웠던 정오 같은 청년의 시간을 지나 맞이하는 중년의 시간은 오후 5시쯤. 이제 곧 해가 지고 어둠이 온다. 노래에는 피로와 쓸쓸함이 배어나고, 스타일 역시 익숙해 편안하지만 상투적이다. 노랫말의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을 더 묵직하고 각별하게 만들지 못하는 음악은 맥이 빠져 고백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가수 안치환
가수 안치환ⓒ안웅철

그러나 안치환은 ‘난 여름이 좋아’나, ‘막걸리 1/막걸리 2’, ‘빨간 스카프를 맨 여자’ 같은 곡에서 자신의 솔직한 욕망과 예스러운 정서를 숨기지 않는다. 느슨한 노래와 구수한 노래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로 노래와 함께 노는 안치환을 보여준다. 덕분에 안치환의 노래 가운데 가장 거리낌 없이 불러 제끼는 안치환을 만나게 된다. 낯설지만 이 또한 안치환이다.

그리고 안치환은 자신의 다른 노래들처럼 호소력 있는 멜로디를 놓치지 않는다. ‘나를 잊지 말아요!’, ‘가을의 소원’, ‘지나가네’로 이어지는 포크 곡들은 안치환의 강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53]의 타이틀 곡 중 하나인 ‘지나가네’ 뿐만 아니라, ‘불현듯 지는 꽃잎을 보며 떠오른 얼굴들’, ‘권력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등에서 노래의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안치환의 저력은 여전하다. ‘4월 동백’에 실린 목소리도 안치환답게 치열하다. 다만 새롭지 않고, 때로 관습적이다. 그렇지만 이 음반이 안치환의 내리막길이라고 저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이 또한 안치환이며, 안치환의 일부이다. 한 명의 예술가는 명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작과 범작, 졸작 모두 그 자신이며 그의 자산이다. 여전히 살아있고 변화하는 뮤지션 안치환이기에 12집은 그의 또 다른 노래들과 함께 새로운 좌표를 만들게 되리라. 한 때 청년이었던 중년의 노래. 꾸준히 진실하고 날마다 깊어지는 노래. 바로 안치환다운 노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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