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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y Elich 칼럼] ‘비핵화’에 대한 다른 해석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협한다

북한이 남한과의 고위급회담을 연기함에 따라 최근의 남북정상회담으로 고조됐던 사람들의 희망이 불확실성에게 자리를 내줬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이후 북한은 수 주간 자국의 선의와 각종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공식 명칭)은 지하 핵시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를 위해 단계적으로 핵시험장의 갱도를 폭파하고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한 후 모든 지상 구조물을 철거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24일 실행했다/편집자주)

실제로 핵실험장 폐기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 물론 북한은 이를 북미정상회담의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뢰 구축 조치로 이를 미국에게 바로 양보했다. 북한은 이미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게다가 북한은 또 다른 선의 차원의 조치로 억류하던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도 꽤 고무적이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미 행정부가 상당히 유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은 이 만남이 트럼프가 “새로운 대안”과 “적극적 태도”를 지녔음을 보여줬고 김정은과 폼페이오가 “쟁점에 대해 만족할 정도의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폼페이오와 김정은이 이렇게 진전을 이루는 동안 다른 쪽에서 상황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조선중앙통신

상호주의 반대하는 트럼프 정권 인사들

트럼프 정권 내부에 “상호주의”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많았다. 다수의 의견은 (트럼프가 보인 태도와 미국이 북한과 대화한다는 사실 자체를 포함해) 북한에게 주는 보상을 비핵화가 이뤄진 이후에만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몇 차례의 인터뷰에 동원됐다. “혜택을 받기 시작하려면”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게 미래의 보상에 대한 약속만을 믿고 억제용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미국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볼턴은 비핵화로도 부족하다고 했다.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과 인권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존재 자체도 확실치 않은 생화학무기도 논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핵화 문제를 협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찬 일이다. 여기다가 다른 의제까지 덧붙인다면 협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의 제재나 위협이 줄 것이라는 것조차 기대하지 못한다. 볼턴은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을 미국이 확인 해야 하고 그것이 이뤄질 때까지 최대한의 압력을 가한다는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과연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볼턴은 잘라 말했다. 북한이 트럼프 정권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경우 북한에 대한 제재가 줄어들거나 해제될 수 있다는 수준의 이야기다. 당연히 이것은 혜택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벌을 주다가 벌의 수위를 낮추겠다고 약속할 때, 피해자가 이를 혜택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도 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의견이 같다. 미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이 북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돈을 벌 기회를 찾는 기업 투자자들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직접 이런 말을 했다.
“비핵화가 완료되고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가장 훌륭한 인재들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사업가들과 리스크 감내자들, 그리고 자본 투자자들... 북한은 민간 자본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이 말하는 이들이 실은 미국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 중 일부이며 어떤 나라에도 그들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북한에게 에너지와 농기구,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말이 맞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됐는가? 미국은 수십 년간 제재를 통해 북한에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줬다. 북한 국민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을 방해 없이, 처벌 없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필요로 하고 일관되게 요구해 온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다. 경제제재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면, 북한이 국영기업을 사유화하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미국 기업에게 넘기고 싶겠는가?

결국 미국은 북한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게는 경제제재를 푸는 데에도, 미국 투자자들에게 북한에서 돈 벌 기회가 꽃 필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데에도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아가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도 미국에겐 아무런 부담이 아니다. 트럼프 정권도, 그리고 이후의 어떤 미국 정권도 그 보장을 무시하고 원할 때면 크루즈 미사일을 쏠 수 있으니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핵협정 파기 문서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핵협정 파기 문서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신화/뉴시스

미국은 신뢰할 만한 협상 파트너인가

트럼프 정권은 이란과의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는데, 그러니 미국이 신뢰할 만한 협상 파트너인지도 의문이다.

배후에서 벌어진 일들이 한 몫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때문에 폼페이오 국무장관마저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많은 진전과 합의가 이뤄졌다는 발언에서 뒷걸음질쳤다. 최근에는 폼페이오마저 많은 일이 아직 남아 있으며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볼턴은 최근 폭스뉴스에 출연해 “2003년, 2004년의 리비아 모델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 테네시주의 보관시설에 자신의 핵무기를 모두 보내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무장해제를 해야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리비아에서는 이 모델이 성공했을까? 리비아는 2004년 초부터 비핵화를 추진하기 시작해 모든 과정에서 ‘일방적인 비핵화’라는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의 보상은 빨리 오지 않았고 리비아 외교관들은 미국 외교관들에게 미국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불평하고는 했다. 미국이 리비아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테러지원국가 목록에서 리비아를 뺀 것은 2006년이 되어서였다.

미국은 리비아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 느렸지만 더 많은 요구를 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었다. 조지 부시 정권의 국무부 차관이었던 볼턴은 리비아가 비핵화 협정을 완전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란과의 군사적 협력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관리들은 리비아에게 북한과 이란, 시리아와의 군사 무역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은 리비아에게 기존의 일관된 입장을 뒤집고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리비아에 외교 서신을 보내 국제사법재판소에게 코소보 독립의 합법성을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세르비아의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감안해 리비아는 미국을 비롯해 다른 3개국과 함께 반대표를 던지기보다는 기권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리비아가 이란에 대한 제재에 찬성하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고, 리비아에게 압력을 가해 미국 기업들에게 여러 기회를 열어주는 사유화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다.

북한이 이 모델을 따른다면 리비아와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속국으로 취급하기 시작할 것이다. 비핵화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각종 이슈에 대해 미국의 명령을 따르는 국가로 말이다.

우리는 이 모델이 어떤 종말을 맞이했는지 안다.

미국과 미국의 나토 동맹국들이 리비아를 폭격했고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무참히 살해했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다.

영국과 리비아는 2006년에 “평화와 안보에 관한 상호 각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두 국가는 국제관계에서 서로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성을 위협하거나 무력으로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또 양측이 서로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금지했다. 하지만 불과 5년 후, 영국은 리비아 정부를 전복하려는 무장 지하디스트를 지원하고 있었고 다른 나토 가입국과 함께 리비아를 폭격했다.

이것 또한 리비아 모델로 서방의 안보 ‘보장’이 얼마나 쓸모없는 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협상에 있어 더 믿을만한 ‘행동 대 행동’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단계적 접근법으로 비핵화와 국교 정상화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단계적으로 양측이 뭔가를 조금씩 주고 받는 방식이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상호 존중이라는 틀을 계속 구축해 나가고 있는 북한은 이번 달에 진행된 연례 장갑차량 훈련의 폭을 대폭 줄였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신호를 보냈다. 지난 5월 11일, 최강 스텔스 전투기로 꼽히는 F-22 랩터를 포함한 100여 대의 전투기가 참여하는 ‘맥스 선더’ 한미 공군 연합 비행훈련이 시작됐다. 올해의 훈련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북한에 압력을 더 가하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북한은 5월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훈련이 남북한이 모든 적대적 행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라 비판하고 판문점 선언이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시행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고 리비아 모델을 고수하려는 고위 관리들 때문에 개선된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또 북한이 이미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종식과 비핵화를 맞바꿀 용의를 수차례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의 담대한 아량을 북한이 약하다는 징후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데에 북한이 반발하자 트럼프는 일관되지 못한 태도로 대응했다.

트럼프는 한편으로 미국이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핵협상이 성공하지 않으면 리비아와 같은 운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것이다. (트럼프가 언급한 리비아 모델은 비핵화 합의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2011년의 나토 전쟁에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 신문이 인용한 “요직에 있는 정보원들”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을 폐기하고 이를 6개월 이내에 외국으로 반출하려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여전히 ‘선요구-후보상’의 접근 방식을 고수하는 듯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자료 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자료 사진)ⓒ자료 사진

상호 동등성·존중 기반한 북미 협상돼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게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북한은 5월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는 대신 연기했다. 북한은 또한 미국과 한국 관리들을 유심히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남북 고위급회담의 연기가 이해할 수 없는 심술로 묘사됐지만, 그것은 미국과 한국에게 정신 차리라는 신호탄이다.

항복 모델은 현실적인 접근법이 아니다. 상호주의가 필수불가결하다.

북한은 체제안보에 대한 공허한 약속과 여러 추가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도 있다는 말만으로는 핵 억지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권 때에는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대화 선결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고 판단할 정도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초기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빠른 속도로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이 협상에서 내놓을 중요한 카드가 있다.

북한은 미국이 외교 협상의 정상적인 주고받기(give and take)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조셉 윤은 “(북한의) 몸 값이 많이 올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만 고려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주 아주 잘못된 생각 같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미친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비핵화를 원한다면 상호 동등성과 존중에 기반해 북한과 협상해야만 한다. 트럼프 정권이 이런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이 칼럼은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되기 전에 작성되었습니다./편집자주

그레고리 일리치 Gregory Elich / 번역 :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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