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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사업가로 변신한 특수학교 교사...‘소리를 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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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학급 회장을 맡게 돼 회의를 진행했었죠. 전 칠판 앞에서 회의를 진행했고, 반 친구들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청각장애를 가졌던 저는 친구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죠. 결국 부회장이었던 친구가 회의를 진행해야 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당혹감과 허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친구들이 하는 말이 글씨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각장애를 가진 한 초등학생의 막연했던 생각이 현실로 이뤄졌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원진 이사장는 자신이 어린 시절 청각장애로 인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문자통역 지원 시스템인 ‘쉐어타이핑’을 만들었다. 소리를 눈으로 보게 하기 위한 이 서비스는 앱을 통해 문자통역사(속기사)의 타이핑을 청각장애인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한때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특수학교 교사를 시작했던 박 이사장는 이젠 사업가로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난 24일 오후 박 이사장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상상청을 찾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는 170cm 남짓한 키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구,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검은색 안경과 캐주얼 정장 차림까지 어엿한 사업가로서의 면모가 느껴졌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민중의소리

특수학교 교사가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

“학창 시절에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멀리 떨어져 앉아 수업을 듣는 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저 같은 아이에겐 어려운 일이었죠. 그래서인지 나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청각장애가 있었던 박 이사장는 학창 시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참고서를 통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지만, 보다 높은 이해를 요구하는 고등학교 때부턴 웬만한 노력으로는 수업을 따라가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특수 교사라는 목표가 생긴 그는 노력 끝에 대학에 입학해 특수교육을 전공할 수 있었다.

특수교육을 졸업하고, 몇 년간 특수교사로 근무하면서 마지막에 사립 특수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하지만 공립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서 시간을 두고, 공립 특수학교 취업을 준비했다.

“특수교사 임용을 준비할 때였는데 우연히 프린트 물 아래에 쓰인 ‘소셜벤처’라는 단어를 보게 됐어요. 너무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죠. 그랬더니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사회적기업을 검색했죠. 관련 내용들을 보다가 ‘빵을 팔기 위해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하기 위해 빵은 판다’는 글귀를 발견했어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사회적기업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너무 강렬하게 와 닿았기 때문일까. 그는 좀처럼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소셜벤처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검색은 계속됐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소셜벤처 아이디어 경연대회’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걸 보자마자 과거 내가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어요. 교사를 준비하는 지금도 교과목 공부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많이 보는데, 자막이 없어 너무 힘들었던 것까지.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지원 시스템을 구상하게 됐어요.”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2012년 봄 공립 특수학교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던 그는 지금의 ‘쉐어타이핑’의 모델이 된 아이디어를 대회에 제출했다.

“기존에 학교에선 정해진 내용들을 공부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면, 대회 준비는 전혀 달랐어요. 나의 생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너무 재밌었죠. ‘내가 꿈꾸는 걸 마음껏 펼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만족감도 높았어요.”

지역, 예선, 본선, 전국 4단계를 거쳐 우승자를 뽑는 대회에서 그는 당당하게 우수상을 차지했다. 너무 즐겁게 대회 준비를 했던 그는 상까지 받게 되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업을 꿈꾸게 됐다.

에이유디 박원진 이사장
에이유디 박원진 이사장ⓒ에이유디 페이스북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대회 준비를 했으니 당연(?)하게도 임용시험은 접게 됐죠. 대신 이 사업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업을 결심했어요. 교사로서 갖고 있던 목표를 사업가가 돼 이루겠다는 것이었죠.”

그가 대회 입상으로 받은 상금은 1,500만원 정도였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업을 시작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결심을 굳힌 그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여러 시도와 도전이 이어갔다. 운이 좋았을까. 2013년 진행된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으로 선정돼 추가로 3,000만원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앞서 열린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지원금을 받는데 크게 작용했다.

“특히 2014년도에 현대차정몽구재단에서 추진하는 H온드림 대회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죠. 당시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해 1억1,000만원 정도 투자금을 받았어요. 그 돈으로 쉐어타이핑을 업그레이드하고, 사람도 뽑았죠.”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디어와 자본으로 2014년 정식으로 ‘에이유디’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고충을 해결하고 싶었던 그는 쉐어타이핑으로 돈을 번다기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고민 끝에 그는 법인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중심이 돼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영리기업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데 반해, 사회적기업은 사회서비스의 제공 및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영리기업과 큰 차이가 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이유디 페이스북

'쉐어타이핑' 서비스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된지 벌써 5년차다. 조합원 6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후원자와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사, 수화통역사, 개발자, 자원봉사자 등 총 228명이 조합원으로 활동 중이다(조합원이 아닌 일반 후원회원도 포함하면 149명). 조합 운영은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와 쉐어타이핑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수익금으로 이뤄진다.

“에이유디가 운영되는 구조는 단순해요. 기관이나 단체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 조합에 소속된 문자통역사를 파견하는 거죠. 비용은 1 시간에 7만원으로 문자통역지원이 필요한 곳에 제공될 수 있도록 비용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노력했어요. ”

물론 쉐어타이핑이 기관이나 단체를 대상으로만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개인이 요청해 이용할 수도 있다. 게다가 청각장애인 개인이 요청할 경우 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간당 7만원이던 비용을 2만원으로 낮춰준다. 나머지 5만원은 에이유디와 후원자, 문자통역사의 후원으로 대신 부담한다.

“쉐어타이핑을 요청하는 곳은 보통 강연이나 세미나, 교육, 대학교, 학원, 교회, 문화행사 등이죠. 만약 강연에서 요청이 들어왔다면 파견된 문자통역사가 강연 내용을 빠른 속도로 타이핑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을 하는 거죠.”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에 ‘쉐어타이핑’을 검색해 무료로 설치한 뒤 파견된 문자통역사가 개설한 방에 접속하면 된다.

에이유디 사무실 모습
에이유디 사무실 모습ⓒ에이유디 페이스북

“청각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파”

에이유디는 청각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해 보이는 사회적협동조합이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나 청각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 생소함 등은 사회적으로도 꼭 해소해야 할 문제다.

“청각장애인들이 문자통역 서비스를 요청할 때 많은 분들이 보통 ‘수화로 하면 되잖아’라는 반응을 보여요. 게다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없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기관이나 단체들은 청각장애인들의 문자통역 서비스 요청에 ‘대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죠. 그때마다 설명을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래도 조금 나아졌어요."

청각장애인은 난청인과 농인으로 나뉜다. 이는 단순히 장애 증상의 차이로만 구분된다기보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1언어가 무엇이냐의 차이도 크다. 농인이 사용하는 제1언어는 ‘수어’다. 반면 난청인들은 제1언어로 음성언어를 사용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책 대부분이 ‘수화’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만 봐도 수화통역센터가 자치구마다 존재하는 것에 비해 음성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난청인들이 문자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는 음성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지원이 거의 없어요. 사회의 빈틈 같은 곳이죠. 에이유디가 만들어진 이유도 그런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예요.”

박 이사장는 에이유디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을 ‘공공서비스’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화센터가 공공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문자통역서비스도 공공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청각장애인들이 어려움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에이유디가 없어도 청각장애인들이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그 정도의 정책과 배려가 우리 사회에 생겨난다면 ‘사회적 장애’라는 말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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