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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보낸 4일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열린 공연장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열린 공연장ⓒ필자 제공

2018 프리마베라 사운드에 다녀왔다.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이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특히 유럽에서는 무수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그 중에서도 손꼽힌다. 페스티벌 공간과 라인업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의 Parc Del Forum 등지에서 일주일 동안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도심형 페스티벌이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안에 도착해 편리하다. 한국의 서울로 치면 올림픽 공원이나 잠실종합운동장쯤에서 하는 페스티벌인 셈이다. 그런데 빌딩 숲 사이에서 열리는 페스티벌과 달리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열리는 Parc Del Forum 주변에는 큰 건물이 없다. 하늘이 다 보인다. 무엇보다 바로 옆은 바다다. 페스티벌 공간에 입장하는 순간 마주하는 탁 트인 바다의 쾌감은 페스티벌의 행복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다른 해외 페스티벌에 가보지 못했지만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공간이다.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무대는 모두 15개인데, Parc Del Forum 안에서 가장 먼 무대를 오가는데 15분이면 충분하다. 오가면서 진을 뺄 필요가 없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편이지만 청소노동자들이 금세 치워서 쾌적하다. 곳곳에 화장실이 있고, 무대가 많아서 사람에 치인다는 느낌이 덜하다. 한여름도 아니어서 덜 지친다.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우는 이들만 빼면 완벽할 정도다. 휠체어를 탔거나 몸이 불편한 이들은 공연장 한쪽에 그들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어린이 관객을 위해서는 헤드폰을 준비해서 나눠준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성폭력을 반대하는 캠페인 부스가 들어와 있고, 단체 활동가들이 종종 돌아다닌다. 머천다이징 부스와 푸드코트, 화장실, 무대 등등 모든 공간을 세분화, 전문화 해 순조롭게 운영한다. 물건을 사기 위해 별도의 코인을 구입할 필요도 없다. 물론 바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고, 입장할 때 가방 검사를 하지만 워낙 관객이 많다보니 샅샅이 뒤지지는 못한다. 페스티벌이 끝난 새벽에는 나이트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다니고, 택시와 지하철도 다녀서 돌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프리마베라 사운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프리마베라 사운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필자 제공

공간만큼 인상적이었던 사실 중 하나는 관객층이 아주 다양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백인 민족들과 흑인들이 어울렸고, 드물게 중국/한국 관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에는 50대 이상 관객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데 반해, 프리마베라 사운드에는 50대 이상 관객들이 흔했다. 동성 친구들과 오는 이들도 있고, 부부/커플로 오는 이들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을 록스타의 티셔츠를 입고 오는 이들도 많았다. 프리마베라 사운드 라인업 중에 거장 뮤지션은 드물고, 대부분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임을 감안하면 무척 신기하고 부러운 현상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50~60대 관객들이 3호선 버터플라이, 가리온, 델리 스파이스, 새소년, 아이유,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즐기는 셈이었다. 유럽 대중음악 시장의 저변이 얼마나 넓은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라인업이 대부분 싱어송라이터나 밴드 음악이라 나이든 관객들에게 친숙했을 수 있지만, 10대부터 60대까지 어울리는 페스티벌의 모습은 한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러운 부분이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았다. 올해 프리마베라 사운드에는 한국 뮤지션들도 세 팀 참여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솔루션스는 나이트프로 무대 등에서 공연을 펼쳤다. 해외의 뮤지션들 중에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and the Bad Seeds) 같은 거장 뮤지션과 함께 더 워 온 드럭스(The War On Drugs), 비욕(Bjork), 피버 레이(Fever Ray), 처치스(Chvrches),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 닐스 프람(Nils Frahm),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더 내셔널(The National), 모과이(Mogwai), 썬더캣(Thundercat), 샤를롯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시거렛츠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 미고스(Migos), 테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카 시트 헤드레스트(Car Seat Headrest),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 비치 하우스(Beach House), 라이크 리(Lykke Li), 제인 버킨(Jane Birkin), 디어헌터(Deerhunter), 로드(Lorde), 에이셉 라키(Asap Rocky)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의 면면이 돋보였다. 록 밴드와 싱어송라이터들이 주축을 이룬 가운데, 팝 스타들과 힙합 뮤지션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형태였다. 특히 메인무대인 시트와 망고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격 공연은 힙합 뮤지션들이 도맡으면서 힙합의 세계적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무대가 15개나 되고, 공연 시간이 겹치다보니 보고 싶은 공연을 다 볼 수는 없었다.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특성 때문에 공연은 저녁 무렵인 6시에 시작해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는데, 날마다 밤을 새우기는 힘들었다. 꼭 보고 싶었던 뮤지션이나 한국에서 보기 어려울 뮤지션들의 공연을 골라가며 보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내한공연이 흔해졌지만 작은 시장 규모 때문에 보기 힘든 뮤지션들이 적지 않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본 공연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무대는 역시 닉 케이브 앤 배드 시즈의 공연이었다. 관록의 뮤지션이자 마성의 뮤지션답게 닉 케이브는 흑백의 수트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뮤지션 한 사람의 존재감이 이렇게 큰 공연은 드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포스가 넘치는 모습으로 자유롭게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그는 심지어 다정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필자 제공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필자 제공

그리고 더 워 온 드럭스, 더 내셔널, 디어헌터, 비치하우스의 공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디 록 경향의 밴드들로 활동 중인 이들의 공연은 완벽할 정도로 훌륭했다. 음악이 갖춰야 할 중요한 미덕은 보편성과 개성인데, 이들의 음악은 보편적이면서 탁월했다. 비치하우스를 제외하면 음악적으로 개성이 강한 스타일이 아닌데, 무대에서 이들은 보편적으로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멜로디와 밴드의 안정된 호흡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한마디로 곡이 좋았고, 연주는 훌륭했다. 최대 10만여명이 모이는 초대형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노련한 모습은 장인에 가까웠다. 특히 비치하우스는 3인조 편성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꿈결 같은 목소리와 몽환적인 사운드를 펼치며 새벽을 물들였다. 대부분의 무대 음향 엔지니어링도 훌륭해서 베이스 연주의 저음이 온전히 전달될 때는 황홀할 정도였다. 영미권의 큰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듣고, 수많은 무대 경험을 통해 단련된 결과였다.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
프리마베라 사운드에서 공연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필자 제공
프리마베라 사운드 공연을 홍보하는 한국 밴드 솔루션스
프리마베라 사운드 공연을 홍보하는 한국 밴드 솔루션스ⓒ필자 제공

3호선버터플라이가 평소의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모습과 대비되어 뮤지션의 경험치와 음악신의 토양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무대들이 숱하게 많았다. 음악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곡을 써낼 뿐 아니라 어떤 무대에서든 흔들림 없이 곡의 정서와 깊이를 충만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프리마베라 사운드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뮤지션들이 무수히 많았다. 음악의 바다는 넓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라이브 무대가 궁금했던 안나 폰 하우스울프(Anna Von Hausswolf)는 무대를 완전히 불살라버렸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던 페터 페렛(Peter Perrett)과 대만의 밴드 더 퍼(The Fur) 공연도 매혹적이었다.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공연이 기대 이하였고, 라이크 리의 공연이 밋밋했던 점을 빼면 보지 못한 무대들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무대의 크기만 다를 뿐 좋은 음악, 좋은 뮤지션은 넘치고 넘쳤다.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일주일간 음악의 화산이 폭발하는 활화산 지대였고, 그 안에서 음악 팬들은 온전히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페스티벌이 끝난 뒤에도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팔목 밴드를 풀지 않은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할 수만 있다면 매년 다시 오고 싶은 페스티벌.

*편집자 주 - 필자 사정으로 이번 주 칼럼이 하루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열린 바로셀로나의 해변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열린 바로셀로나의 해변ⓒ필자 제공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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