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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수 텃밭’에서 ‘격전지’ 된 대구 “자유한국당, 수십 년 동안 뭐 했나”
9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에 6.13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후보들의 선거 별보가 붙어 있다.
9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에 6.13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후보들의 선거 별보가 붙어 있다.ⓒ정의철 기자

"이참에 대구도 바꿉시더"(더불어민주당)
"대구의 자존심 지켜주십시오!"(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9일 대구 번화가 곳곳에서는 선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파란 옷(더불어민주당)과 빨간 옷(자유한국당), 민트색(바른미래당) 옷을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고,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한 표'를 호소했다.

'이제는 바꾸자'는 목소리와 '그래도 자존심은 지키자'는 목소리가 충돌한 사이 대구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자유한국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1번을 찍었든, 2번을 찍었든 이번 선거에서도 '무조건'이 통할까 하는 데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유한국당에 '실망감' 쏟아낸 대구 시민들
"수십 년 동안 속고 살았다"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광역시장 후보가 9일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시민들과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대구광역시장 후보가 9일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시민들과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보수의 심장, 자유한국당의 최후의 보루…. 대구를 설명할 때에 빠지지 않는 수식어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도 대구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현 대표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줄 만큼 '보수의 철옹성'이었다.

그러나 6.13 지방선거가 바짝 다가온 지금 대구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자유한국당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변'이 나오기도 했다.

거리에서 만난 대구시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여권에 우호적인 2030 세대는 무서운 기세로 '변화'를 벼르고 있었고, 수십 년간 한 당만을 택해왔던 중·장년층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몰표는 없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유세차가 오갈 정도로 대구의 번화가 중 한 곳인 대구백화점 앞에는 대구시장 후보들의 유세가 줄을 이었다.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배모(21·여) 씨는 "60대 이상은 대부분 자유한국당이면 당연히 뽑아줘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제 세대들은 반대로 찍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배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제 친구들은 요즘에 모여서 '대구도 다른 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대구도 (정치인들이) 신경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이번에도 정말 자유한국당 후보가 시장이 된다면 대구는 정말 패싱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구시민들은 전반적으로 자유한국당을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 속에 대구는 점차 소외된 도시로 전락됐고, 지역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신경 써주는 정치 세력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대구는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성이 전국 꼴찌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시민(50대·남)은 사전투표에서 "싹 다 민주당 뽑아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는 전국에서 제일 못사는 도시가 됐는데 20년 동안 대구에서 집권하면서 뭐 했나"라며 "대통령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다 뽑아줬더니 아무것도 안 했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70 평생'을 대구에서 자란 김모(75·남)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박근혜를 뽑고, 자유한국당을 뽑은 사람"이라면서도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태까지 보수당 사람들 뽑아줬는데 그 사람들이 대구를 위해서 일한다고 느낀 적이 없다"며 "지금은 자유한국당이 회초리를 맞고 달려져야 할 때다. 오랜 시간 동안 지지했는데 아주 많이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제 대구나 나 같은 늙은 사람들도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며 "뭐에 휩쓸려서 보수당만 찍었지만 이제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야지. 30여 년 동안 속고 살았잖아"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평화 국면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남북정상회담 성과인 판문점선언에 대해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시대와 동떨어진 주장만 이어가고 있다는 쓴소리였다.

자신을 '보수'라고 밝힌 김모(57·남) 씨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위협할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평화 분위기로 가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고춧가루를 뿌려야 하나"라며 "시대가 바뀌면 그에 맞게 따라가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40대나 50대들은 다 나같이 마음을 바꾸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모(55·남) 씨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다른 나라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보편적인 정치 시각에서 조금 떨어진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40대까지 젊은 층들은 홍 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50대들도 홍 대표가 이상하다고 한다"며 "택시 타는 손님들도 라디오에서 홍 대표 이야기가 나오면 '왜 저러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대구는 보수 지켜야"한다는 일부 시민들도
그러나 "대구도 달라지긴 했다"는 데에는 공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뉴시스

물론 대구는 보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시민도 일부 있었다.

대구에서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젊은 사람들만 조사한 것'이라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할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를 두고 "보수가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 달서구 상인네거리에서 만난 김상발(58·남성) 씨는 "숨은 민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니까 오히려 부글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유한국당을 위해서라도 더 결집해서 새로운 보수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모(54·여) 씨는 '투표하실 거냐'는 질문에 "대구를 지켜야죠"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반복했다. '대구를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여당만 이렇게 지지도가 높을 수 있느냐.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무조건 2번"이라고 밝힌 장모(70대·남) 씨는 "여론조사 결과는 관심 없다. 나는 보수니까"라며 "여론조사 결과는 100% 안 믿는다. 젊은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 잘했다면서 민주당 지지하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상당수 나랑 같다"고 주변 반응을 전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대구에 변화가 느껴진 것 같다는 데에는 인정했다. '지난 선거랑은 달라졌냐'는 질문에는 "달라지긴 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에는 대구에도 민주당 깃발을?
대구서 사전투표한 추미애, '스타의원'들도 일제히 대구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열린 임대윤 대구광역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임 후보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열린 임대윤 대구광역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임 후보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정의철 기자

대구의 바닥 민심이 요동치는 가운데 민주당은 불모지 개척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 기세를 몰아 지방선거 전 마지막 주말인 9일 대구를 찾아 집중 유세를 벌이는 등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대구 달성군에서 사전투표를 한 뒤 집중유세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변화를 택해달라고 호소했다. 표창원·이재정·손혜원 의원 등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 국회의원'들도 대거 대구로 향해 힘을 보탰다.

그동안 민주당에 대구는 단연 '험지'었다. 민주당 출신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최초로 민주당 후보가 깃발을 꽂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냐는 기대감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물론 6월 13일 대구 시민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변화'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모두 엇갈렸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실시된 사전투표에서 대구의 사전투표율(16.43%)은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대구 시민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선거 결과보다는 대구 내에서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남소연 기자, 장재란·최재윤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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