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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상가임차법 때문에…” 건물주 살인미수로 치달은 궁중족발의 ‘비극’
지난 7일 한 임차상인이 건물주에게 둔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7일 한 임차상인이 건물주에게 둔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KBS 방송화면

7일 오전 8시20분경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서 심각한 임대차 갈등으로 임차상인 김모(54)씨가 건물주 이모(60)씨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3~4배가 넘는 폭력적인 월세·보증금 인상에 맞서 분쟁을 벌여온 임차인 김씨가 12차례의 강제집행과 폭언 등을 참지 못해 저지른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시민사회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가세입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1일 소상공인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이 사건의 이면에는 급작스런 임대료 폭등으로 한 가족을 절망에 빠뜨리는 폭압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제2의 궁중족발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도 성명을 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적폐가 빚어낸 비극이며, 충분히 상생의 노력을 통해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 빈곤사회연대는 8일 “이 비극적 사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의 결과”라며 “지금까지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아 온 입법기관과 집행기관 모두가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임대차사건의 전말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과정에서 궁중족발 사장 김씨는 손을 크게 다쳤다.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과정에서 궁중족발 사장 김씨는 손을 크게 다쳤다.ⓒ민중의소리

사건의 시작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김씨는 모든 사업을 정리해 마련한 7천여만원과 3천만원 가량의 대출금으로 서울 경복궁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끄트머리에 허름한 건물 1층을 빌려 족발집을 차렸다. 다행이 계약 당시 만난 건물주는 그에게 무리한 월세나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들도 대학에 보내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6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그와 가족의 생계는 무너졌다.

건물을 사들인 이씨는 김씨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월세와 보증금을 제시했다. 300만원을 내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인상하고, 3000만원이던 보증금 또한 1억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같은 건물주의 폭압에 김씨는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 5년간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 상가임대료 상한을 5%로 제한하고 있지만, 5년이 지나면 건물주는 이 제재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론 건물주가 어떤 황당한 금액을 제시하더라도 계속 장사를 하고 싶으면, 건물주의 요구를 받아들여야한다.

임차인 김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가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임대료를 돈을 빌려서라도 입금하려고 했으나, 건물주 이씨는 월세를 입금할 계좌조차 알려주지도 않았다. 전화나 문자도 묵묵부답이었다. 건물주가 세입자를 쫓아내기 위해 쓰는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상 임차상인이 3개월 동안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건물주는 기존의 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법 자체도 문제지만, 건물주 중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입금을 회피하고 임차상인을 쫓아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월세를 법원에 대신 납부하는 공탁제도가 있다. 김씨는 다행히 이 제도를 알고 월세를 납부했다. 그러자 건물주는 명도소송 취지를 변경했다. 계약기간으로부터 5년이 지나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 법조항을 근거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럴 경우 임차상인이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당연히 건물주의 승소였다.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과정에서 궁중족발 사장 김씨는 손을 크게 다쳤다.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과정에서 궁중족발 사장 김씨는 손을 크게 다쳤다.ⓒ민중의소리

이후 끊임없는 강제집행 시도가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때는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다 시피 크게 다쳤다.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끌려 나가지 않게 조리대 밑 부분을 잡고 버티다가 살이 모두 파인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강제집행은 총 12차례 계속됐다. 체감온도 영하 22도의 강추위에도 아랑곳 안하고 김씨 가족들을 끌어내려 했다. 결국 김씨와 이씨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건물주 이씨와의 통화가 불을 지폈다. 전화기 너머로 ‘구속시키겠다’는 말과 함께 욕설이 들려오자 김씨는 극도로 흥분해 건물주 이씨를 찾아간 것이다. 이 사고로 건물주 이씨는 어깨와 손등에 염좌를 입고 머리에 상처를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경찰서는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전날 김씨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됐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25일 오전에 궁중족발 강제집행 소식을 듣고 주변 상인들이 몰려 들었다.
25일 오전에 궁중족발 강제집행 소식을 듣고 주변 상인들이 몰려 들었다.ⓒ민중의소리

소상공인단체·시민사회 “국회는 신속히 법개정 추진하라”

소상공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제의 발단이 상가임대차보호법에 있다고 지적하며 법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폭의 임대료 인상은 영세 소상공인들에게는 생계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는 엄청난 폭력”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현재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기간은 5년만 보장되어, 궁중족발과 같이 5년이 넘은 가게들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처지”라며 “소상공인연합회는 상가임대차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할 것을 촉구해 왔으나, 아직도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소상공인들은 궁중족발에 벌어진 살인적인 임대료 인상이 남의일이 아니고, 자신들에게도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잠재적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며 “소상공인들의 삶이 가게 운영에서 비롯되는 만큼 계약갱신권 기간을 10년으로 확대, 살인적인 강제 퇴거 금지 등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소중히 일궈온 터전에서 땀의 보상을 받고, 장기적인 사업 설계에 나설 수 있도록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는 “600만 명의 자영업자가 있는 세상, 창업 후 2년 이내 망하는 비율이 36%에 달하고, 퇴출 자영업자의 60%가 일용직, 무직으로 내몰리는 세상에서 이는 더 이상 사적인 일이어서는 안 된다”며 임대료 상한제 도입, 강제퇴거에 대한 엄정한 금지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UN주거권특보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는 한국이 ‘개발 기반 퇴거 및 이주에 관한 기본원칙과 지침’, ‘UN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 일반논평 7호’를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임차인의 계약 갱신 청구권 보장과 임대료 상한제 도입을 권고했다”며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현재의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관련기사:최강 한파 속 ‘4차 강제집행’ 궁중족발 사장의 절규 “맘 편히 좀 장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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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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