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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노래와 함께 평화와 통일의 새 시대를 꿈꿀 때
그룹 우리나라
그룹 우리나라ⓒ양지웅 기자

한국과 조선의 정상이 만났다. 조선과 미국의 정상이 만났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합의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합의가 이루어지고, 앞으로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한다. 수구보수진영에서는 평화무드를 애써 폄하하지만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통일이 될 리 없고, 계속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평화와 화해, 통일로 이어지는 변화는 이제 시동을 걸었다.

지금 가장 주목하고 싶은 말은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고백이다. 그는 체제를 걸고 체제를 지켜냈으며 미국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두의 변화를 이끌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라는 고백은 북한의 변화와 결단만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과 조선, 미국 모두의 변화와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이다. 분단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 통일로 뒤바뀌는 역사의 대전환기.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면 좋을까.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민중가요

사실 그동안 분단과 대결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시간을 담대하게 예상한 음악은 드물다. 한국에서는 주로 민중가요 진영의 뮤지션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했다. 그들은 통일 열망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다수의 진보진영에서는 분단을 미국이 주도한 분단의 결과로 인식하고, 민족자주화운동과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결합해 펼쳐왔다. 그래서 통일 노래 중에는 미국에 대한 분노와 극복의지를 담은 노래들이 많다. 또한 외세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민족의 일체감과 동질성을 강조한 노래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노래들이 진보진영 밖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민중가요 뮤지션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뿐이었던 통일노래를 훨씬 풍성하게 채워왔다.

김원중의 ‘직녀에게’가 진중한 슬픔으로 분단을 넘어서려 했다면, 윤민석의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경쾌한 리듬과 생활 언어로 통일을 노래했다. 노래패 꽃다지가 부른 후 가수 신형원도 불렀던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2만원”이라는 택시기사 조재형의 노랫말로 평양을 친근하게 불러냈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택시요금 2만원은 어느새 5만원이 되었고, 이제는 20만원에 육박할만큼 시간이 흘렀다. 물가가 달라졌고, 평양도 달라졌으며, 서울도 달라졌다. 그래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이 노래를 불러본다면 어떨까. 1994년 트로트가수 김혜연이 부른 ‘서울 평양 반나절’도 비슷한 노랫말로 화제를 모았다. 꽃다지가 부른 ‘통일이 그리워’나 전대협노래단의 ‘통일은 됐어’ 같은 노래도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통일노래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압박과 조선의 핵개발 대응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대중적인 통일 노래는 좀처럼 이어지지 못했다. 대중음악계에서도 간간히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발표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보다 화제가 된 노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뮤지션들은 분단의 고통을 가장 아프게 감당했던 이산가족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산가족을 위로하는 곡 중에서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과 강산에의 ‘라구요’가 독보적이다. 설운도의 노래는 1980년대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과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했고, 강산에의 노래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는 강산에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강산에는 최근 평양 공연에서 눈물 흘리며 ‘라구요’를 부르면서 노래의 꿈이 노래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일본 교포사회에서는 북한가요 ‘임진강’이 특히 사랑받았다. 영화 ‘박치기’에 삽입되면서 한국에서도 알려진 ‘임진강’은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라는 노랫말과 애잔한 멜로디로 실향의 긴 아픔을 재현한다. 이제 ‘임진강’은 김용우, 양희은, 임형주 등의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다. 앞으로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분단으로 인한 고통은 이산가족만의 몫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분단은 반공독재사회로 이어졌고, 통일에 대한 상상과 시도는 늘 강제로 짓밟혔다. 김남주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그동안 반공과 분단을 빌미로 자유를 억압하고 폭력을 용인해온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고발한다. 이 노래는 분단 극복과 통일이 단지 두 나라의 재결합이 아니라 외세와 분단세력의 청산이자 분단의식의 소멸이어야 함을 호소한다. 여전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통일의 꿈을 이끄는 통일 노래들

2000년대 이후에는 노래패 우리나라와 윤민석 등이 꾸준히 통일노래를 만들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윤민석이 만든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가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는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한편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이 사유한 ‘리철진 동무에게’, ‘민통선의 흰 나비’는 그의 작가의식과 성찰이 돋보이는 곡이다. 김민기의 곡 ‘철망앞에서’ 역시 김민기의 깊은 시선과 음악적 완성도가 만난 곡으로 분단 극복의 의지를 감동적으로 담은 대표적인 통일노래이다. 통일을 염원하면서 고향에 돌아오고 싶어 했지만, 눈을 감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던 윤이상의 음악들은 오늘 더욱 애틋하고 각별해진다.

이제는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적잖은 교류의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고, 서로 확연하게 달라져버린 정체성의 차이를 어떻게 좁혀갈지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2000년대 이후를 대표할 수 있는 통일노래가 없다는 사실은 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줄어버린 한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조선을 여전히 가족 독재체제, 가난한 나라 이상으로 알지 못한다. 최근 평양 공연에 다녀온 한국 뮤지션들을 조선측에서 직접 선택했다는 말이 나올만큼 조선에서는 남한을 파악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알고 있는 북한 음악은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통일부에서 진행하는 유니뮤직레이스 경연대회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서 진행하는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더욱 의미 있다. 지난해 유니뮤직레이스에서 대상을 차지한 전범선과 양반들의 곡 ‘전선을 간다’의 “나는 자유롭고 싶어/그대 나와 같이 갑시다/혼자도 둘도 아니고/하나가 되어”라는 노랫말은 적과 동포와 전우와 동무를 함께 껴안는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가 간직해야 할 마음을 환기시킨다. 2016년 대상곡인 갈릭스의 ‘원 러브’도 흥겨운 레게 리듬에 달라진 현실과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을 담았다. 모든 생명과 한국 강정 등의 전쟁 현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2015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대상곡 솔가와 이란의 ‘같이 살자’ 역시 지금 함께 듣고 새길만한 곡이다.

한국과 조선, 미국의 화해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상상하지 못한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노래와 함께 지난 분단의 역사와 아픔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새로운 날들을 담대하게 상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존 레논이 ‘Imagine’에서 노래했듯 국가와 소유가 없는 세상까지는 상상하지 못하더라도, 한국과 조선이 기존의 체제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세상은 결국 많은 이들이 꿈꾸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제 노래가 그 꿈을 이끌기를. 뮤지션들이 먼저 꿈꾸고 노래해주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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