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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그녀들의 힘겹지만 당당한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신작 ‘그녀 이름은’
조남주 신작 ‘그녀 이름은’
조남주 신작 ‘그녀 이름은’ⓒ다산책방

페미니즘을 표방하고 출마한 여성 후보의 선거 포스터가 찢어지고, 여성 아이돌 스타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관련한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여성들의 현실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키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김지영이라는 82년생 여성은 태어나서 사는 동안 여러 종류의 성차별을 겪어왔다. 이런 현실은 각종 통계자료와 당시의 언론기사등을 통해 제시됐고,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82년생 김지영’ 출간 이후 2년 만에 조남주 작가가 신작 소설집 ‘그녀의 이름은’을 발간했다. ‘그녀의 이름은’은 십대부터 칠십대까지, 지금 여기 대한민국을 살아내고 있는 ‘그녀’들의 땀과 눈물, 용기와 연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녀, 엄마의 간호를 도맡은 그녀,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비정규직 그녀, 손자손녀를 양육하는 그녀까지…… 작가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와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냈다. 아홉 살부터 일흔아홉 살까지 60여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는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경향신문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제목의 르포 기사로 연재됐다. 그녀들이 ‘별일도 아닌데’라며 운을 뗀, 그러기에 작가가 더 경청한 저마다의 인생은 소설로 다시 쓰이고 28편의 이야기로 묶여 『그녀 이름은』으로 선보이게 됐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뉴스에서, 겪거나 목격했지만 ‘별일 아니’라며 스스로 삼켜버린 이야기들이 비로소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그녀 이름은’ 속 28편의 이야기는 네 개의 장으로 묶였다. 부조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때로는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2030 여성들, 결혼이라는 제도 중심과 언저리에서 고민하는 여성들, 제 이름도 잊은 채 가사ㆍ양육 노동이나 직장 노동 때론 둘 다를 오랜 시간 떠맡은 중년 이상의 여성들, 앞 세대 여성들의 어려움을 목도하면서도 ‘다시 만날 우리의 세계’를 꿈꾸는 10대ㆍ2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각 장마다 눈물 또는 웃음 혹은 다짐이라는 서로 조금씩 다른 온기로 전달된다.

1장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에는 위계를 이용한 강압적인 신체 접촉, 불쾌한 농담, 외모와 옷차림 지적, 부적절한 연락, 갖은 추행과 희롱과 폭력. 가해자는 멀쩡히 생활하고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노출되는 아이러니 둥이 담겨 있다. ‘그녀 이름은’의 문을 여는 ‘두 번째 사람’은 상사의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다 미투라는 마지막 방법을 택한 공기업 직원 ‘소진’의 투쟁기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작가 그녀의 이야기 ‘나리와 나 한밤중의 침입 위협에 간담을 쓸어내린 그녀의 이야기 ’어린 여자 혼자서‘ 등 일상이라는 전투장을 이른바 ‘어린 여자 혼자서’ 버텨내는 일의 고단함이 1장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에서 펼쳐진다.

2장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1장에서 등장한 여성들의 근미래일 이야기이다. 결혼적령기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시기, ‘정상적인’ 결혼 제도에 편입되라는 압력과 ‘바람직한’ 출산ㆍ양육ㆍ가사 부담에 내몰리며 직장에서는 입지를 위협받는 여성들의 사연이다. ‘이혼일기’와 ‘결혼일기’는 두 자매가 각각 이혼과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림으로써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를 통해 성립되는 관계가 개인에게 지우는, 종종 이상하고 자주 부당한 부담을 서술한다. 올해로 12년째 해결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는 KTX 해고 승무원의 이야기인 ‘다시 빛날 우리’, 방송사 파업 당시의 기록인 ‘목소리를 찾아서’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편해지지도 않는 노동 현장의 문제 앞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견디고 온힘을 다해 버티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3장 ‘애하머니 겅강하새요’는 중년을 넘긴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장 제목 ‘애하머니 겅강하새요’는 노년이 되어 딸과 아들 자녀의 육아까지 도맡은 여성이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진명 아빠에게’에서 ‘나’가 손주에게 받은 카드, 비뚤비뚤한 글씨의 “외할머니 건강하세요”다. 남성들이 의무를 간과하는 사이 여성들에게만 전가되고 심지어 역으로 대물림되는 가사와 육아 노동의 고통, 한 번도 제대로 ‘나’의 이름을 찾지 못한 여성의 목소리가 덤덤히 들려온다. 취객의 위협과 남성 승객의 희롱 속에 버스를 몰며 생활을 이어가는 그녀의 이야기 ‘운전의 달인’, 직접고용을 쟁취해낸 국회 청소노동자 그녀의 이야기 ‘20년을 일했습니다’는 중년 여성이 놓인 열악한 노동 환경을 환기하면서 ‘아줌마’가 아닌 노동자로서 그녀들의 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 4장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는 아홉 살부터 20대 초반까지, ‘그녀 이름은’에서 가장 젊은 그녀들의 아픔과 성장과 지향을 조명한다. ‘재수의 변’은 2016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10대 그녀의 정의감과 신념을, ‘다시 만난 세계’는 그해 정권 퇴진 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품었던 희망과 열정을 기억해낸다. 특히 최고 기온을 경신한 무더위에, 무장한 채 학내에 투입된 경찰들에,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선 학생들의 막막함이 조남주 작가의 꼼꼼한 스케치로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포착된다.

에필로그 격인 ‘78년생’은 조남주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왜 그녀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드러내고 기록”하고 싶었던 건지, 그 마음이 짐작된다. ‘그녀 이름은’은 그녀 역시 불안과 혼란과 부조리 속에서 정신없이 청년기를 보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가슴 한구석에 죄책감을 지닌, 이제는 “자신의 얼굴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된 조남주 작가가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기록해낸 결과물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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