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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착취의 눈물이 아니라 위로의 씨앗이 될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타이틀 - 최영하
타이틀 - 최영하ⓒ기타

내 친구는 주말 아침에도 자신이 늘 마시던 커피를 맛보기 위해 차를 몰고 나선다. 아침에 눈 떠 커피숍에 도착할 때까지 몸은 무겁고 머릿속엔 ‘커피, 커피, 커피’ 하고 있단다. 친구는 아침의 그 커피 한 모금으로 자신은 매일 부활한다고 했다. “반드시 그 커피여야만 하냐”고 물으니, 다른 커피를 마시면 더 기분이 우울해지고 온종일 화가 난다고 했다. 이 정도면 카페인의 효능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특정 커피를 마셔야 하루가 풀린다는 이가 있다. 카페인 빼곤 설명하기 어렵지만 카페인에 대한 열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맛과 향, 쓴 맛과 고소함과 단맛을 배합시키는 기술이 로스팅과 핸드드립이다.
특정 커피를 마셔야 하루가 풀린다는 이가 있다. 카페인 빼곤 설명하기 어렵지만 카페인에 대한 열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맛과 향, 쓴 맛과 고소함과 단맛을 배합시키는 기술이 로스팅과 핸드드립이다.ⓒpixabay

아주 옛날 에티오피아 고원의 목장. 염소가 밤늦도록 울며 잠을 자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목동은 염소가 독초를 먹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수도승들이 직접 이 검은 원두를 먹어보았고 이들은 이후 커피(카와)를 기적의 물질로 칭송했다. 몽롱해진 새벽기도 시간의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은 맑아졌고 늘어졌던 근육은 활력을 찾았으며 두통도 씻은 듯 사라졌다. 커피 발견 설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가리키며 ‘이것은 나의 피’라고 하셨을 만큼 와인이 유대인과 로마제국의 핵심문화였다면 이슬람은 커피였다. 와인을 음탕한 사탄의 음료로 규정했고 커피야말로 인간을 늘 깨어있게 하는 명철의 음료라고 했다. 심지어 ‘체내에 커피를 담고 죽는 자는 지옥불의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슬람의 사제도 있었다. 튀르크족의 점령지에선 포도나무 밭이 불살라졌고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페르시아 황실을 정점으로 상류층과 수도승이 우선 만끽했기에 백성들이 동경했다. 때로 금지했기에 신비화되었고 일반 백성들은 더욱 ‘반항적으로’ 갈구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유럽인도 그 특유의 쓴맛에 고개를 저었다. 커피문화는 한 세기에 걸쳐 유럽에 전파되었다. 17세기에 유럽에선 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지식인들은 커피를 마시면 지성도 배가된다고 믿었다. 커피하우스에서 처음 신문이 보급되었고, 비엔나 시민들은 하루에 3번 커피하우스를 방문했다. 파리시민은 이곳에서 혁명을 쟁론했고 보스턴의 커피하우스 발코니에선 ‘미국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 문학과 정치, 고객 접대도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커피, 와인, 차에 대해 유럽인은 그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와인이 열정과 몽환의 음료였다면, 커피는 지식과 활력의 에너지, 중국에서 넘어온 차(茶)는 온화함과 치유의 음료로 인식했다. 단순히 카페인의 힘이라곤 보기 어렵다. 커피가 주는 ‘안식’의 효능 아닐까.

18세기 커피하우스에서 쟁론 중인 시민들 삽화
18세기 커피하우스에서 쟁론 중인 시민들 삽화ⓒ네이버

지금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그렇게 숨차게 뛰어서 행복해?

성장세로만 보자면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이미 유럽을 넘어선 듯하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인은 연간 265억 잔을 마셨는데 대충 1인당 512잔이다. 카페가 치킨집의 3배고 시장규모는 8조 8천억 규모. 많은 이들은 커피 브랜드산업을 문화산업으로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중 흥미로운 이야기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 MBC)’이 시발점이었다는 것으로, 이 드라마로 인해 기성품으로서의 커피믹스를 넘어 로스팅을 거친 본연의 향과 맛의 가진 스페셜티 커피시장으로 확장되었고 커피브랜드가 여의도, 홍대의 직장인 문화와 만나며 확고한 문화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최영하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최영하ⓒ민중의소리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최영하(48. CoffeeMBA 대표)를 만났다.

우리나라 바리스타 1호 이동진 원장의 눈에 들어 바리스타를 양성해왔다. 지금은 창업지원과 원두산업, 토종 체인점, 커피산지에 대한 교육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다.
공대 출신으로 IT업계에서 꽤 잘나가던 그는 처음엔 해마다 올라가는 연봉과 고급승용차에 만족했다. 그러나 높은 연봉이 요구하는 건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업무 스트레스다. 큰 프로젝트 한 건을 완수하기 위해 잠을 줄였고 매번 핏발 선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직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사무실은 그야말로 살벌한 전쟁터로 변했다. 잠을 자도 제 심장 소리에 잠이 깨는 각성상태가 이어졌고 몸은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망가진 몸으로 병원을 나서던 어느 날 자신에게 묻어두었던 질문을 했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최영하, 정말 지금 삶이 행복한 거야?’

가족과 단 한 번도 좋은 교감으로 안식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50대 중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니 이 업계에서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나이 들어 삶을 후회한다면 바로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생각했단다. 회사에 다니며 6개월간 주말에 창업을 준비했다. 당시 외국에서 맛보았던 잊지 못할 맛과 예쁜 모양의 ‘디저트 샵’이 목표였다. 창업은 원래 초짜가 용감한 법이다. 원래 초콜릿과 케이크 만드는 법은 대충 알고 있었기에 학원에서 준비하면 그럴듯하게 오픈할 수 있을 줄 알았단다. 그리고 커피는 그냥 가루에 물만 타는 건 줄 알았다.

“초짜가 범하는 전형적인 실수 두 가지 모두 했죠. 디저트를 만들 줄 아는 것과 가게를 오픈해서 경영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우선 임대료 문제에 제품 경쟁력, 그리고 직원들 인건비에 인테리어 비용, 홍보하고 버틸 수 있는 체력 등 이런 건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준비 없이 회사를 나온 것도요. 적어도 1년 이상 회사생활을 하면서 준비했어야 했죠. 다시 다른 IT 관련 외국계기업에 취직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업준비 했어요.”

커피믹스가 준 근자감 “가루에 물 부으면 커피라고 생각 했어요”

커피 볶는 일에 뛰어든 이들의 동기는 비슷할 때가 있다. 우연한 계기에 ‘인생커피’를 맛보게 해준 이를 사부님으로 섬기며 커피인생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니까 직접 원두를 선별해 들여와 볶아 숙성시켜 그 특유의 핸드드립으로 내려 준 에스프레소 한 잔은 지금까지 맛본 프렌차이즈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미를 지녔다는 이야기 말이다. 기자가 ‘왜 커피였는지’를 묻자 그는 ‘커피믹스’ 이야기를 했다. 커피믹스라... 우선 신비감이나 허세와는 거리가 먼 시작이다.

“교회에서 청년부 청년들에게 티타임 시간을 만들어 커피믹스를 돌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맛이 기가 막힌다는 거죠. 커피가 돌면 청년들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나와요. 사실 커피믹스에 들어가는 게 뜨거운 물밖엔 없잖아요? 그때 작은 깨달음이 하나 있었어요. 커피 한 잔이 뭐라고. 그런데 이 작은 커피 한 잔이 사람에겐 행복과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믹스커피의 저력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명(!)된 이 커피믹스는 1980년대 맥스웰 하우스(Maxwell House)와 네슬레(Nestle)의 초기 한국진출 실패를 맛보게 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만의 커피로 인정받고 있다고.

“창업을 준비할 때 처음에는 커피는 안중에도 없었죠.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 부으면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아주 쉽게 생각했던 거죠. 초콜릿과 케이크는 일정 수준에 오르면 재료만 좋으면 충분히 맛을 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커피를 배우다 보니 그게 아니에요. 커피는 정말 자신만의 안목과 스타일, 기술이 필요해요. 또 당시엔 국내에 소개된 커피 전문서적의 편차가 너무 심했어요. 어떤 이는 핸드드립에 걸맞은 물의 온도를 96도~88도까지 말하지만 또 어떤 이는 70도라고 합니다. 책마다 내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이 이치를 난 이후에 깨달았어요.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 그 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로스터 허형만, 커피 박사 1호 문중웅 교수, 전 커피협회장 이정기 선생께 커피를 배우면서 교회 카페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가장 좋은 수련장이었어요. 마음껏 커피를 만들고 반응을 바로 체크할 수 있었어요. 이후엔 봉사자들 커피교육을 시켰어요. 그때 사람들이 저에게 차라리 바리스타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고 권했어요. 저도 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어요. 더 깊은 배움을 위해 국내 바리스타 1호 이동진 원장님을 찾아뵈었는데, 이분이 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 그 정도면 그냥 여기서(CoffeeMBA) 강사들을 가르치라고 하시더군요.”

스승에게도 울림을 주었던 제자, 윤혜령 바리스타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윤혜령 바리스타.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뛰어난 바리스타로 성장했다. 장애우 대회가 아닌 일반인 바리스타 대회에서 2등을 했고, 이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CBS)’에 출연해 큰 울림을 주었다. TV광고에 이어 웹툰에도 사연이 소개된 바 있다. 그녀가 밝혔듯 사람과의 조우가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웹 디자인만 하다 느낀 절박한 외로움에서 시작한 일이 바리스타였다. 바리스타는 끝없이 사람과 만나야 하는 일이다. 커피 볶는 소리, 크림이 휘파람 부는 소리를 변별해야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고행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결국 그간의 노하우를 모아 청각장애인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을 시작했다. 제자와 함께 도전해 성취하는 건 스승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바리스타 대회 수상은 물론, 바리스타 국제 심판으로 진출한 제자가 있는가 하면 꽤 유명한 토종브랜드로 성장한 경영인도 있다.

대인관계에서 비껴있던 그녀는 사람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대인관계에서 비껴있던 그녀는 사람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다고 회고한다.ⓒcbs 유투브 캡처

우리나라 커피 1세대를 굳이 따지자면 광복 후 서울의 음악살롱, 다방 등에서 커피를 볶던 무명의 주방장들이다. 명품의 등급을 뜻하는 ‘스페셜티 커피’의 개념이 한국에 상륙한 이후의 커피명장 1세대를 ‘1서 3박’이라 칭하는데 서정달, 박이추, 박상홍, 박원준 선생이다. 박이추 선생을 제외하곤 모두 고인이다. 경제성장과 발맞춰 커피산업도 전문화되었는데, 바리스타, 로스터 뿐 아니라 생두를 감별하는 큐 그레이더(Q-Grader), 알그레이더 (R-grader)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로스팅 카페라 하면 생두를 선별해 직접 볶아서 자신만의 로스팅 파일로 특유의 맛을 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최근 바리스타 세계대회의 우승자는 생두를 직접 재배해서 가공해 로스팅 할 정도다.

기자는 1세대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몇 곳의 로스팅 카페를 들렀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들이 인생커피를 만났다며 극찬하는 그 커피의 진경을 느낄 수 없으니 그저 싼 입맛을 원망할 수밖에. 짓궂게 물어보았다. 그 스페셜티 커피라는 것이 정말 그리 다른 것이냐고.

“일정한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했을 때였어요. 카페에 오신 손님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셨지요.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저에게 오더니 ‘자기가 태어나 마셔본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를 오늘 먹었다’고 하시더군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손님이 같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어요.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 맛을 보더니 커피잔을 ‘쾅’ 하고 내려놓더군요. 그리곤 나를 째려보더니 일어서서 나갔습니다. 나에게 보낸 그 표정은 ‘이것도 커피야? 이걸 돈 받고 팔아?’ 하는 경멸이 담겨있었죠. 같은 재료로 같은 로스터로 드린 거였는데도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최영하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최영하ⓒ민중의소리

자신의 입맛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만난 커피가 ‘인생커피’

일정한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단다. 그럼에도 한 가지 뚜렷한 교훈을 얻었는데, 가장 맛있는 커피는 본인 입맛에 맞는 커피라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저도 그랬어요. 명품 커피점이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더군요. ‘왜 그럴까’ 생각했죠. 결혼식장에서 고급요리를 먹고 돌아와 집에서 된장찌개나 라면 끓여 먹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은 그렇지 않잖아요? 소울 푸드라는 건 사실 정성과 오랜 세월 길들여온 서로의 관계성이 녹아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입맛에 걸맞게 먹는 게 가장 좋은 커피입니다. 자신이 직접 내려 먹으면 더 좋죠. 이게 묘한 쾌감을 줍니다. 그날 핸드드립 방식에 따라 매일의 커피 맛이 전혀 달라지거든요.”

그렇게 커피에 정진했고 좋은 제자도 꽤 배출되었다. 바리스타 교육사업은 국내외에 30개의 커피 학교를 개설하는 것으로 확장했고, 원두를 가공해 카페에 공급하니 반향도 꽤 좋았다. 지금은 글로벌 프랜차이점의 미국 오픈을 준비 중이다. 인상적인 건 커피산지에 대한 교육사업이다. 커피, 은, 다이아몬드와 같이 땅에서 귀한 것이 나는 나라는 대부분 식민지 노예노동의 고통을 겪었고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다.

커피가 원주민에게도 행복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커피벨트라고 하지요? 적도를 중심으로 한 커피산지들이요. 아프리카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가 2차 대전 이후 정치적으론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론 여전히 200년 전의 상황과 같습니다. 뛰어난 생두 산지임에도 현지 주민들의 커피 지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에요. 생두의 경우 흠 있는 걸 모두 골라내서 담아야 좋은 값을 받는데, 이분들은 아직 한 포대의 킬로그램 수로 값을 받는다는 생각만 있는 거죠. 인터넷은 물론이고 종이 자체가 턱없이 비싸서 대부분 교육은 엄두를 못 내요. 생두 따는 노동자 부모를 둔 아이가 결국 생두 따는 노동자가 됩니다. 하루 일당은 5천 원도 되지 않습니다. 생두감별 기술과 재배, 가공 기술을 배우면 이들은 훨씬 좋은 품질로 자체의 브랜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루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Yirgacheffe)에서 농장을 하는 분이 저에게 학교를 지어주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더군요.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제가 무슨 엄청나게 성공한 자산가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데 학교 건립이라니요. 그런데 그곳에선 수백만 원가량이면 학교를 낼 수 있습니다. 건물 제대로 올리고 기숙사 짓고 뭐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이 더위와 비를 피해 모일 수 있는 곳을 짓고 칠판과 책걸상, 책을 제공할 수 있으면 됩니다.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운지 작은 학교가 개설되면 7~80명의 아이가 모여들어요. 짐마 대학교 학생들이 자원 봉사를 합니다. 그렇게 일반학교를 짓고, 이후엔 커피기술 교육학교를 세우고 있어요.“

전국에 대략 9만 개 정도의 커피숍이 있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지 조그만 동네에서도 창업과 폐업이 일상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건 자기 땅에 제 자금으로 커피숍 차려 임대료나 대출이자 신경 쓰지 않고 커피 볶고 맛난 음식도 내는 것이다. 우선 자격증에 대해 물어봤다. 바리스타 자격증만 해도 1급에서 3급까지 있는데, 이런 자격증이 실제 사업장에서 효용성이 있을까?

“최소치의 수준이라고 할까요? 운전면허 있다고 운전 잘하는 거 아닌 것처럼 바리스타 자격증도 마찬가지죠. 커피의 감별과 로스팅, 핸드드립과 같은 최소한의 경험을 가졌다는 건데 실제 창업이나 현장에선 훨씬 숙달된 자신만의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 더 큰 세계를 알게 되고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커피와 현장에 대한 철학도 숙성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초기엔 바리스타 기초교육을 받았는데, 이때 오신 분들이 모두 우리나라 커피산업 1세대 원로들이셨어요.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승님의 풍부한 현장경험과 노하우, 커피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을 더 귀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커피 볶아 밥벌이하겠다는 생각은 낭만일까?

“커피숍 창업 경험이 많은 이들은 주로 창업을 만류하거나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합니다.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창업을 알선해주는 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무하면서 낙관적 전망을 이야기합니다. 최근엔 바로 며칠 전 로스팅 한 원두를 공급하는 브랜드가 많아서 커피 맛은 일정 수준 이상이죠. 그런 점에서 일반 커피숍을 창업하는 것이 어렵진 않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죠. ‘커피’를 산업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1년 못 버티고 문 닫습니다. 커피 한 잔에 3천 원 남는다고 가정하고 월 임대료와 인건비, 초기 투자비용과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20% 정도의 성공확률이랄까요? 그 20%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앞에 대형 커피숍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죠. 커피숍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영업은 20% 내외의 생존율입니다.”

홍대 앞에서 잘 나가던 전설의 커피집도 문을 닫고, 대형 프렌차이즈점도 적자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임계점을 초과한 지 오래고, 임대료와 권리금도 정상적 노동을 통해 수익을 남길 수 없는 구조다. 커피 볶아 밥벌이하겠다는 발상은 그저 낭만일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글처럼 치열하지요. 직장인들은 한 번의 실수로 일어설 수 있지만,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에겐 패자부활전이 주어지지 않잖아요? 직장인 스타일이 막상 서비스업에선 장애로 작동할 때가 많습니다. 온종일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데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을 즐기지 못하면 커피 볶는 일은 무의미해집니다.”

“청년창업을 준비한다면 우선 자신의 실력을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는 노력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학원이 아닌 경우 일터에서 배울 땐 처음에는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허드렛일부터 하면서 독학하고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이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죠. 그리고 커피는 커피 자체로만 보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산업으로 이해하고, 커피산업 전체를 조망하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커피 볶는 것’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최소 1년 이상의 치열한 준비, 그리고 6개월 이상의 현장경험을 무조건 하라고 합니다. 시장조사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알바를 해서라도 준비해야 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당연히 임대료가 비싼데, 아무리 넓은 매장이라도 테이블 회전수는 제한이 있죠. 화장품이나 패션매장과는 원리가 달라요. 역발상으로 틈새시장을 뚫을 자기만의 노하우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또 주요 고객층에 따라 커피 맛도 달라져야 하거든요. 사장이 커피에 대해 정통하지 않으면 매니저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죠.”

숙련된 바리스타의 커피엔 마치 화가의 낙관처럼 일관된, 그 만의 풍미가 남아있다. 같은 재로 같은 로스터를 사용해도 맛은 다르다
숙련된 바리스타의 커피엔 마치 화가의 낙관처럼 일관된, 그 만의 풍미가 남아있다. 같은 재로 같은 로스터를 사용해도 맛은 다르다ⓒpixabay

연한 맛으로 시작해 원산지 특유의 향을 느끼는 것부터

기자가 특정 브랜드를 지칭하며 그건 마치 ‘보약’과 같다고 못마땅해하자 최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머리 많이 쓰는 기자’와 같은 직업군이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데 연한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확히 보았다. 좋은 커피란 물론 좋은 생두를 잘 구워 그 향을 온전히 피워낸 커피일 것이다. 그에게 ‘최영하의 커피’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커피를 배우러 오신 어르신이 계셨어요. 지병이 있어 늘 혀나 온몸이 바늘에 찔린 듯 아프다는 분이셨어요. 실습시간에 이 분이 자기가 내린 커피 맛을 봐달라고 했는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너무 놀랐어요. 커피가 정말 혀와 입천장을 찌르더군요. 미스터리한 일인데... 그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커피에 아픔이 밸 수 있을까?’ 비과학적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대접하는 커피에 정성과 좋은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모친께서 저혈압으로 무척 힘들어하셨어요. 제가 커피 내리는 법을 알려드렸고 이제 상당한 수준에 오르셨어요. 몸이 가벼워지셨고 매일 아침이 즐겁다고 하세요. 부부가 서로 커피를 타주며 대화하고 집안 곳곳에 커피향기가 배어나며 변화를 겪은 분들도 많아요. 커피가 진정 공감과 위로의 음식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제 커피를 평가하기는 좀 그런데요. (웃음) 제 커피를 맛본 이들은 카페인은 가볍고, 향을 중심으로 해서 뒷맛이 고소하다고 하세요.”

아직 커피의 진경을 모르는 독자들, 자신만의 인생커피를 원하는 이들에게 팁을 전해달라고 했다.

“초심자라면 우선 자기 스타일을 파악해야 합니다. 쓴맛이 강하면 커피 맛을 온전히 변별하기 어려워요. 처음에는 연한 맛으로 시작하되 이것저것 섞지 말고 원산지 마다 특유의 향미가 있거든요. 그렇게 원산지를 바꿔가며 먹다 보면 정말 나에게 걸맞은 커피가 나옵니다. 물론 자신만의 핸드드립도 중요하죠. 커피는 ‘향’입니다. 원두를 구매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건 ‘볶은 날짜’입니다. 커피는 볶자마자 향이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하거든요. 원두의 경우 한 달 지나면 50%의 향은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요즘은 브랜딩 커피도 볶은 지 2~3일 후면 받을 수 있습니다.”

최영하 어드바이저는 두 개의 꿈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커피로 얻은 이익을 커피 산지로 돌려 현지 원주민 커피 전문가를 양성하며 산지의 농장을 직영해 공정무역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커피 전문가 양성교육부문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고 한다. 커피를 마실 때 우리가 착취의 눈물이 아닌 현지의 소망과 꿈이 담겨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한다는 이야기.

또 하나의 꿈은 거창하다. ‘스타벅스’를 넘어설 수 있는 세계적 커피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는 것. 미국에서부터 진검승부를 준비 중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전화기는 계속 울렸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렸던 일상이 싫어 커피를 시작했는데 여전히 분주한 지금의 삶이 행복한지 물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바쁘지만 직장에서 요구하는 압박감과는 차이가 있어요. 우선 제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고, 사업의 성취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빠도 행복합니다. 이건 온전히 제 의지와 결심으로 달리는 겁니다.”

최영하 바리스타 어드바이저

저서:『홈 메이드 커피』(2014. 알에치코리아)
관동대 평생교육원 교수, 드림커피 대표
커피MBA 아카데미 원장, 드림커피학교 교장
티협회 이사, 전) 전 조리사관학교 외래교수
에티오피아 일반학교 설립. 네팔 원두 농장 직영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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