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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재학당의 골칫거리 이승만
배재대에 위치한 이승만 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대전시민단체의 모습
배재대에 위치한 이승만 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대전시민단체의 모습ⓒ이승만 동상 철거 공동행동 제공

1875년 황해도에서 출생한 이승만은 과거시험에 수차례 떨어진다. 그는 생계수단의 일환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배재학당에 1895년에 입학해 1898년에 졸업한다. 이로써 배재학당 동문 자격으로 배재대학교에 이승만 동상을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친일파 중용하고 백만 민중 학살한 이승만

이승만은 박영효 쿠데타 음모 사건에 연관되어 1899년부터 5년 넘게 수감된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보낸 감옥이다. 즉, 이승만은 다른 독립군처럼 일본에 저항한 일로 고문당하기는커녕 형무소에 수감된 적도 없다. 수감생활 중 그는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일본 공사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이승만은 목회자가 될 것을 서약하여 한국에 파송될 선교사를 위한 목회장학금을 받고 1904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10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승만의 대 일본관은 현실주의적이고 대세 추종적이며 개인적 이해와 결부되어 당시 독립군처럼 일관된 반일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1915년부터 하와이 국민회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수단과 폭력을 사용하여 반대파의 극렬한 저항을 초래하는 등 한인사회에 분쟁을 초래하였고,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는 등 진정한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먼 골칫거리였다.

해방 직전 한국 내에서 거의 잊혀진 이승만은 해방 후 미군의 적극적인 후원과 신뢰로 급격하게 민족지도자로 추대되었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대중적 명망을 얻게 된다. 1948년 대통령이 되자 반민족주의자들인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헌법기관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해산시켜 일제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반민족세력들을 단 한 명도 처단 못하게 만들어 민족기강을 뒤흔들었다. 그 결과 친일파 경찰, 관료 그리고 군이 역대 독재정권의 기반이 되어 남북의 긴장을 초래하고 평화통일을 방해하였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를 일삼아 오늘까지 국론을 분열시켜 나라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운동의 실현성이 전혀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해 평화운동을 금지하고 항상 남북 간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켜 자신의 권력 안정을 꾀하는 등 억압 통치에 이용하였다. 그 과정으로 그는 집권하는 동안 제주4·3항쟁, 여순민간인학살, 국민보도연맹원학살,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주민학살 등 온갖 사건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백만 명이 넘는 우리 민족을 학살하여 히틀러에 버금가는 세기적인 도살자로 알려졌다. 아울러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국회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부산정치파동, 뉴델리 밀회 사건, 사사오입개헌, 조봉암 진보당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헌법을 유린하다 마침내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다시 말하면 이승만은 민족을 위한다거나 나라의 발전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친일파를 중용하고 광복군을 탄압하며 남북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 결과 이승만을 추종한 친일파들은 처단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었고, 그의 후손들과 관제 역사교육만 받아 세뇌당한 자들은 아직도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뉴시스

이승만 동상 철거, 역사 바로잡기

1987년 2월 제3회 배재대학교 졸업생 명의로 지금의 동상이 세워졌고, 같은 해 6월에 재학생들의 요구로 동상이 철거되었다. 1990년 초에 대학은 보관 중이던 동상을 다시 세웠으나 1997년 학생들의 철거시위로 다시 철거하였다. 그러나 2008년 6월 건국 60주년을 기념한다며 교수와 학생 등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동상제막식을 또다시 가져 오늘에 이르렀다.

배재대학교에 이승만 동상이 들어서서는 안 되는 지역적인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대전 동구에 있는 산내의 골령골에서 한국전쟁 당시 군대와 경찰이 대전형무소에 수감중이던 민간인인 국민보도연맹원 7천여 명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더기로 학살하여 매장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이야기'로 알려진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년 위령제를 열고 있다. 이러한 지역 상황에서 이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의 동상을 보란 듯이 세워놓은 것은 망자뿐 아니라 유족 그리고 모든 배재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에 대한 조롱이 아닐 수 없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배재대학교에 이승만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은 재단의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재단이사들은 독재정권 시절 관제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보니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한 맹목적인 이승만 숭배사상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승만을 배재학당이 낳은 최고의 인물로 생각하기에 동상 건립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승만의 영구집권욕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배재고 동문의 배재학당 독점과도 연결되기에 이승만이란 존재는 그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본다. 필자가 배재대학교에 부임한 1995년 이후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24년간 배재고 출신만이 재단이사장과 대학총장을 독식하고 있다.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대승적으로 ‘역사 바로잡기’에 속하며, 지엽적으로는 배재학당에 뿌리 깊게 놓여있는 배재고 출신의 독점으로부터 배재학당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개신교 신자에 배재고 출신만이 독점적으로 재단이사장과 대학총장을 맡아온 관행을 이승만 동상 철거와 맞물려 함께 철폐해야 한다. 대학은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여 배재학당이 진정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음을 다시 알려야 한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남북화해의 시대에서 배재학당을 창설자인 아펜젤러 목사의 초심으로 환원하여 새롭게 탄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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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이나 다시 세운 배재대 ‘이승만 동상’ 논란

이규봉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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