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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축물에 구현된 동양의 삼재사상三才思想

편집자 주 - 서경원 칼럼니스트는 20여 년간 건축과 관련한 글을 쓰고 책을 내온 한국건축 전문가입니다. 한국건축의 매력에 빠진 이후 전국 곳곳의 사찰과 서원, 마을 등을 일터 겸 놀이터로 삼아 연구해왔습니다. 한국건축을 이해하려면 건축설계의 근본이 된 철학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뛰어난 건축물의 설계자들 대부분이 동양철학의 대가였고, 한국적 사상철학의 바탕에서 구상하고 축조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획의 근원을 모르면 그저 우리 건축의 조형적 미감과 기능성만으로 우리 건축을 설명하려 드는데, 이런 식으론 전통 건축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우리 건축의 인문학’은 앞으로 3회 발행할 예정입니다. 독자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7월 21일(토)부터 3주간 독자 분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 강좌가 진행됩니다.

한국 전통건축물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는 부호, 현판

경복궁을 다녀온 지인이 내게 물었다. 전에는 연못과 썩 잘 어울리는 경회루의 육중한 자태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통로 문에는 현판이 달려있는지도 몰랐단다. 이번에 우연히 경회루로 통하는 세 개의 문 현판을 보았단다. 근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니 알면 좀 알려달라며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내밀었다. 문 현판들의 한자는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대체로 쉬운데,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으니 더 답답하다고. 이견문利見門, 함홍문含弘門, 자시문資始門에 관한 설명을 부탁해왔다.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의 현판에는 칠팔 할 정도 해당 건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데, 바로 읽어내기도 어렵고 해석하기는 더 어렵다. 특히 조선 시대 지어진 건물들은 주로 사서삼경 같은 고문에서 뜻을 취한 사례가 많아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일단 뜻을 알고 나면 건축물의 배치원리는 물론 건물주인의 의도나 가치관 등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흔히 건축은 우리네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건축은 당대 사회의 사상이나 생활상 등을 유추해서 해석해 볼 수 있는 아주 유효한 틀이 된다. 경복궁이란 이름만 해도 그렇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먼저 종묘를 짓고 이어 궁궐을 지었다. 어느 정도 궁궐공사가 마무리되자 종묘에서 조상들께 감사의 제를 올리고, 궁궐로 돌아와 그동안 수고한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태조는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전각들의 이름을 지으라’ 명했다.

삼봉 정도전이 지은'큰 복을 누리는 궁궐' 이란 뜻의 경복궁 전경
삼봉 정도전이 지은'큰 복을 누리는 궁궐' 이란 뜻의 경복궁 전경ⓒ서경원

이와 아주 유사한 상황을 서술한 내용이 이미 『시경』 <대아편大雅篇> 기취旣醉에 있다. 중국 주나라 때, 제례를 끝내고 천자가 베푸는 잔치에서 신하들이 왕의 은혜에 감사하고 복을 빌어주며 지어 받친 시다. 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은 훌륭한 세자를 얻어 자자손손 왕실의 번영을 누리시라는 축원으로 끝을 맺는다. 정도전은 이 시 첫머리에서 따 ‘큰 복을 누리는 궁궐’이란 뜻의 경복궁景福宮이란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미 술에 취하고 베풀어주신 덕에 배부르네. (旣醉以酒 旣飽以德)
왕께서는 천만 년 오래도록 크고도 큰 복을 누리소서. (君子萬年 介爾景福)

하륜이 지은 '경사스런 모임' 이란 뜻의 경회루 야경
하륜이 지은 '경사스런 모임' 이란 뜻의 경회루 야경ⓒ서경원

동양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바탕이다

일전에 어느 강연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삼재三才는 동양에서 근본 바탕이 되는 아주 중요한 사상이라고 하자, 한 여성분이 느닷없이 큰소리로 “그거 미신 아닌가요?”라며 강하게 항의 아닌 항의를 강연자인 내게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무척 당황했는데, 곧 그분이 세 가지 재앙을 의미하는 삼재三災를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았다.

우리가 흔히 정초에 ‘올해는 무슨 무슨 띠에 삼재三災가 들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둥 주고받는 경계사 말이다. 3년에 걸쳐 재앙이 들고 머물고 나가는 어려운 과정을 치러내는 시기라 말한다. 한 해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순환되듯이 인간사도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겪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때에 맞춰 사람도 바뀌어 대응하며 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사람은 누구나 흉한 것은 피하고 좋은 것만 취하며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단은 내 강연주제인 삼재三才 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것이 급해 보였다. '동양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이 셋이 근본 바탕이 된다고 여기는 사상'이라 설명했다. 얼른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실 테니 한번 꺼내보시라.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으실 줄 안다. 이때 우리가 흔히 쓰는 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서 글자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슨 원리인지 아느냐?” 대답이 없었다. 이에 바로 “천지인天地人 원리다. 자판 맨 위 가운뎃점 · 는 하늘, ㅡ는 땅, l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글의 창제원리에도 바로 하늘, 땅, 사람이 바탕이 되는 삼재사상이 들어있다”

여전히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이런 강연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느꼈던 경험이었다.

우리 민족은 인간을 하늘과 땅과 동일시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 단군 때부터 내려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처럼 인간을 최고로 우선시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강했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 박세무가 어린아이들의 학습을 위해 지었다는 그 유명한 『동몽선습』의 첫 문장을 보아도 짐작해볼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 만물 가운데 인간이 최고로 귀하다. 사람이 귀한 까닭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리인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

다음 호에는 경복궁 경회루의 세 문(門)을 놓고 삼재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서경원 칼럼니스트 이력

『한국건축 속의 인문학』(2016. 도서출판 담디)
도서출판 담디 발행인 겸 편집자
전> 월간 『건축세계』편집장
월간 『건축문화』 기자

서경원 건축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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