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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끈적이는 그루브로 자신과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노래
밴드 데카당
밴드 데카당ⓒ데카당

요즘에는 새로운 음악이 쉴 새 없이 나온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했을 뿐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이들도 많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음악을 발표하자마자 히트해야 한다. 즉시 히트하지 못한 곡들은 눈사태처럼 쏟아지는 새 음악에 묻혀 실종되어 버린다. 다행히 역주행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구조신호조차 보낼 수 없는 곡들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사람도 열매도 단숨에 익지 않듯, 음악 역시 천천히 자라고 느리게 익는다.

흔들리지 않는 가능성을 완성한 ‘데카당’

2017년 5월 EP ‘ㅔ’를 발표하면서 등장한 밴드 데카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울과 사이키델릭 록 등을 버무려 함께 담은 이 음반은 크지 않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장르를 아울렀고, 완성도가 꽤 탄탄했기 때문이다. 사운드만큼 진솔한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노력도 데카당의 음악에 귀 기울이게 했다. 하지만 데카당의 음악에 주목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록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다보니 밴드 포맷으로 활동하는 데카당에 관심이 쏠리지 않았고, 데카당의 음악이 일관되게 완성되었다기보다 장르를 오가면서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수 있다. 곡의 설득력도 다소 아쉬웠다. 이들의 라이브 역시 무난했지만 파격이나 파괴력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규음반을 발표하지 않은 신인밴드의 음악을 EP 한 장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데카당은 흔들리지 않는 가능성으로 존재했고, 1년 뒤인 2018년 첫 번째 정규음반으로 가능성을 키워 완성했다.

데카당은 2018년 5월 30일 셀프 타이틀의 정규 1집 ‘데카당’을 발표했다. 13곡의 노래를 담은 이 음반에서 데카당은 전작처럼 소울과 사이키델릭, 포스트펑크 등 여러 장르를 폭넓게 넘나든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한 음반에서 한 두 장르에 집중하는데 반해, 데카당은 계속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고 폭넓게 음악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을 드러낸다. 그런데 데카당은 장르의 문법을 정교하게 재현하고, 연주력을 강조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이들의 음악이 어설프다거나 연주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네오소울, 사이키델릭, 펑크, 포스트펑크 등으로 압축할 수 있는 이들의 음악은 곡마다 필요한 표현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다만 이들의 음악에서 연주력과 사운드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데카당의 음악에서 중요한 지점은 데카당이 노랫말로 표현하는 메시지와 리듬/멜로디/화음/사운드 등으로 표현하는 음악의 관계이자 조화이다.

밴드 데카당
밴드 데카당ⓒ데카당

이전의 음반보다 '데카당'의 창작력을 너끈히 보여주는 엘범

네오소울과 펑크, 포스트펑크의 비중이 높은 편인 데카당의 음악은 동일한 장르의 음악에 비해 노랫말의 무게가 묵직하고, 노랫말이 표현하는 메시지도 선명하다. 음반의 소개글에 의하면 ‘데카당’ 음반은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인 화자가 ‘병’(거짓말, 편견, 아집, 혐오, 차별 등)이 만연한 바깥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켜 은신한 채 바깥의 기억을 되새기는 ‘안’의 이야기가 1부,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관찰해오던 화자가 이윽고 외출을 감행하면서 겪고 느끼게 되는 ‘바깥’의 이야기가 2부”라고 한다. 이 같은 설정은 순수한 주체와 타락한 외부 세계를 대립시키며 개인의 무기력과 세계의 폭력성을 드러내려고 할 때 흔하게 사용하는 방식이다. 막강한 세계에 비해 주체는 무기력해 좌절하고 타락하기 마련이다. 이미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사용하는 설정임에도 같은 설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카당은 이 같은 상황과 태도를 첫 곡 ‘병’에서부터 “날씨는 여전히 맑지 않고/여전히 날 지나쳐가는/그 탓에 그 덕에/지독한 병에/걸렸더래요/살갗은 갈라져 피가 나고/똑같은 말들을 반복해요” 등의 가사로 표현한다. 가사를 바꾸면 더 농염하게 들릴 수 있을 곡은 곡의 데카당한 분위기를 현실을 직시한 고백으로 채우며 음반의 태도를 예고한다.

그리고 음반의 타이틀곡 ‘각주’는 상대에 대해 모를 뿐 아니라 “각주를 매번 달고 수정을 거쳐도/밤마다 보충의 보충을 거듭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다. 펑키한 리듬감에 라틴 기타의 화려한 연주를 가미한 곡은 노랫말 속 어지러운 상황마저 질펀하고 화려한 분위기로 녹여버린다. 노랫말로 제시하는 답답한 상황과 세계 인식을 반복하면서 몰아치는 멜로디와 리듬으로 표출하는 노래는 단순한 상황 제시에서 그치지 않고, 음악 자체를 즐기게 한다. “감정 불안정과 자기애의 과시” 등 불안한 상황을 낭독하고, 절규하듯 따라하는 ‘라 토마티나’는 음반의 정서를 이으며 ‘토마토 살인사건’으로 바통을 넘긴다. 토마토를 빌어 좌절과 분노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포스트펑크의 어법을 활용하는 곡은 토마토의 과즙처럼 붉고 끈끈하다. 곡의 사운드는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랫말만큼의 간절함을 리듬감 넘치게 표현한다. 이 리듬감과 끈끈한 질감을 록킹한 사운드와 결합시키면서 데카당의 음악은 가사의 문제의식만큼 깊이와 힘을 획득한다. 색에 대한 판단과 취향을 빌어 차이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곡 ‘색채감각’은 페미니즘과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오늘의 노래로 맞춤한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펑키한 곡이라 할 수 있을 ‘살로메’는 “볼 마음이 들을 생각이 원래 없던”사람들의 편견을 공박한다. 곡의 끝부분에 들려오는 독재정권의 전직 대통령 목소리는 이 음반의 문제 의식이 한 사람의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전한 리듬감과 끈적임에 바깥 세상과의 조우를 재촉하는 곡 ‘삭발’은 다소 사변적인 표현으로 더 강렬하게 젊음을 증거한다. 화려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데카당이 밴드이고, 이들이 밴드 사운드로 매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음반의 2부에 해당하는 곡들인 ‘창’, ‘외출’, ‘산책’, ‘피트파커’, ‘B’ 등의 노래는 노래 제목에서부터 달라진 시선과 태도를 드러낸다.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밖으로 나온 주체가 세계와 재회하는 순간의 감정을 노래하는 ‘외출’은 영롱한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산책’에서 같은 노랫말을 반복하는 방식과 일렉트로닉한 노이즈와 블루스의 질감은 의지로 낙관하려는 태도가 도드라진다. 하지만 사이키델릭하고 매끄러운 곡 ‘피터파커’가 보여주는 일상과 비일상의 충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냉정함과 동시에 데카당 미학의 고집을 곡의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집요하다. 음반의 또 다른 타이틀곡인 ‘B’는 여전한 소울 곡으로 매끈하고 격정적이다. 데카당의 절망이 사랑의 실패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수록곡들의 고른 완성도는 이전의 음반보다 더 힘이 붙은 데카당의 창작력을 너끈히 보여준다. 곡의 완성도가 고르게 높아졌다는 사실, 그리고 더 다양한 표현을 더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데카당의 진화를 인정하게 만든다. 노랫말에 담은 일관된 문제의식과 은유적인 표현은 음반이라는 양식이 지닌 가치를 명확하게 증명한다. 이 음반은 사운드와 노랫말로 쏘아올린 데카당의 고백이며 화살이다. 그 화살은 여러 과녁을 동시에 꿰뚫는다. 소리의 향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과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힘.

편집자주 - 필자 사정으로 게재가 늦었습니다. 독자들의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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