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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문닫았는데 손님들이 수소문해 찾는 신발가게 ‘코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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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내 발에 잘 맞고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발에 최적화 된 맞춤형 수제화를 만들어 신으면 좋겠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고 좋은 디자인을 보유한 장인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성품 중에서 고르고 골라 신발을 사 신는다. 쇼핑을 위해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할 때, ‘내 맘에 들 만한 신발을 모아놓고 파는 신발 가게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홍대, 서강대 인근에서 13년 째 이어져 온 신발가게 ‘còmodo(코모도)’가 그런 곳이다. 코모도는 스페인어로 ‘사용하기 편리한, 쾌적한, 딱 좋은, 적합한’이란 뜻의 형용사인데, 이 가게엔 이름에 걸맞은 신발들이 많아 오래된 단골들이 많았다. 기자가 가게 앞을 지나다보면 늘 누군가 구두를 고르고 있었다.

2017년 여름, 이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게가 있던 건물이 헐리고 빈터엔 높은 담장이 처져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수소문 끝에 사장 정춘자(57) 씨를 만났다. 가게가 없어진 정씨는 수개월을 쉬다, 6월 중순부터 동대문 인근 건물에서 남은 구두를 팔고 있었다.

과거 신발가게 '코모도'에 진열된 신발들
과거 신발가게 '코모도'에 진열된 신발들ⓒ사진 제공 = 코모도 정춘자 사장

“3개월 안에 망한다고 한 가게, 12년 지켰지만…”

정춘자씨는 2005년에 홍익대 앞 놀이터 인근에서 신발 가게를 처음 열었다. 개업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임대료, 권리금 부담이 너무 심해 가게를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서강대 인근 이었다. 2006년 신촌로타리에서 서강대 가는 큰길가에 처음 ‘코모도’를 열었다. 개업 당시를 정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는 서강대 인근에 신발가게가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처음 신발 가게를 차린 거였죠. 주변 상가에서 제가 개업하는 걸 보고 ‘3개월 안에 망하고 나간다’고 했어요. 이런 불모지서 신발 장사를 열었다고 한심해 했죠.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라인에서 제가 최고 매출을 기록했어요.”

잘 되던 가게는 왜 없어지게 됐을까. 가게 이야기를 묻자, 정씨는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예전 고객들이 가게 있던 곳에 찾아와 전화를 한다고 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 ‘장사 안 하냐’고

“서강대 앞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12년 장사 했어요. 처음 건물에서 8년간 장사를 했는데, 건물주가 월세를 너무 올렸어요. 2년 만에 재계약하는데 매번 올리더라고요. 다섯 번째 계약할 때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서 더 월세가 싼 장소로 옮겼죠. 가건물이었는데 그 곳에서 4년 동안 장사하다 급작스럽게 문을 닫게 됐죠.”

“두 번째 가게 땅 주인과 건물 주인이 달랐어요. 둘이 법적 분쟁을 했는데 세입자들은 몰랐죠. 결국 땅 주인이 소송을 해 이겨서, 법원에서 제 가게에 빨간 딱지(부동산 가압류)를 붙였어요. 한참 다른 세입자들이랑 함께 싸워보기도 했는데 안 됐어요. 법원 명령에 따라 건물이 철거됐죠.”

정 씨는 당시를 회상하니 가슴이 답답한 모양인지 한숨을 연이어 내 쉬었다. 그 자리에서 다시 가게를 열기 위해 땅 주인과 계약을 하려 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재고 처리도 거의 못하고 나왔어요. 법원에서 언제 헐릴 지 모른다고 하니 불안해서 장사를 할 수 없었죠. 땅주인이 재고 처리를 할 수 있게 가건물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분쟁이 이어지면서 1년 가까이 시간만 지나갔어요. 결국 기다리다 못해 가게를 얻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봤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고 장소도 마땅치 않아 재고 처리하려고 이 장소에 임시로 들어왔죠.”

2015년 7월의 코모드, 2017년 8월 철거 후의 모습
2015년 7월의 코모드, 2017년 8월 철거 후의 모습ⓒ사진 = 다음 로드뷰

고객들이 장사 계속해 달라고 부탁해

정씨가 임시로 문을 연 가게에도 손님들이 오갔다. 뜨내기 손님들이 들어오는 경우는 적었지만, 단골 손님이 방문하면 바로 구매로 이어졌다. 반갑게 안부를 묻고 신발 여러 켤레를 구입해 돌아갔다. 정 씨가 이렇게 신발을 잘 파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게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제 방식대로 운영했어요. 제 이익금을 줄이고 적정 가격에 팔려고 했어요. 공장에서 2만원에 들여온 구두에 5천원, 7천원 쯤 이익을 붙여서 팔았어요. 그 당시에 일부 가게들은 제 두 배 가격을 붙이고 흥정을 해 깎아줬거든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했죠. 물건 사러 갔을 때, 막 말 걸고 사라고 권유하면 부담스럽잖아요. 전 맘에 안 들면 사지 말고 다음번에 지나다가 다시 들러달라고 했고, 상품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달라고 했어요. 물어보면 신상품인지 재고인지, 발이 편할지, 원가 얼마인지까지 솔직하게 답했죠.”

정 씨는 물건 가격이나, 상품 응대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상품의 질이라고 강조했다. 낮은 품질의 신발은 팔지 않고, 한국산 상품과 장인들의 수제화 중에서 세심하게 골라 물건을 가져온다고 밝혔다. 신발의 마무리 상태와 A/S까지 고려한다고 한다.

“한국 공장들, 성수동 수제화 공방들을 돌며 물건을 골라와요. 저는 신발 밑창을 유심히 보는데, 꼭 고무여야 하죠. 휘었을 때 부드럽게 휘어져야 발이 편해요. 중국산 저가 신발들이 플라스틱 밑창인 경우가 많은데 물이 있으면 미끄러져서 위험해요. 바닥이 딱딱해서 발도 아프고, 비 맞으면 한꺼번에 밑창이 뚝 떨어지는 황당한 경우도 있죠.”

“고르러 가서 제가 다 신어본 후 판단해서 들여와요. 발이 편한지 안 편한지, 뒤꿈치가 벗겨질 것 같은지, 하이힐의 경우엔 뒷굽이 흔들리진 않는지, 바닥이 얇아서 발바닥이 아프진 않은지 다 따져 봐요.”

“가져온 신발들은 제가 모두 꺼내보고 마무리가 깔끔히 되었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손을 봐요. 구입한 손님이 신어보고 불편하다고 하면 크기를 약간 키우거나 줄이기도 해주고요. 한국 신발들은 A/S가 다 되요. 밑창이 벌어지거나 비 맞아서 끈이 빠지는 것 같은 건 공장에 다시 연락해서 다 수선해 다 드렸죠.”

이런 노력 때문인지 손님들과 정씨의 사이는 친밀해졌다. 신발을 산 손님들이 재구매를 했고 단골이 되었다. 그 이후엔 친구나 가족을 데려와 함께 신발을 샀다. 정씨의 성실함과 솔직함 때문인지 손님들이 정씨의 가게 운영을 걱정하기도 했다고.

“제가 물건을 너무 저렴하게 파니까 손님들이 가격을 좀 올리라고 권했어요. 그렇게 팔다가 장사 그만두면 안 된다고. 인간적으로 믿고 신발 살 곳이 없는데 코모도가 문 닫는 게 싫다고요. 다른 장사 하시는 손님들은 제가 너무 곧이곧대로 라며, 제가 차비라도 빼드리려 하면 마다했어요. 이 자리에서 장사를 계속해달라면서요.”

저가 중국산에 밀려 사라지는 한국 신발들

단골이 많고 매출도 좋았던 정씨지만 늘 좋은 손님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신발을 신다가 와서 안 신었다며 환불해 달라는 분들이 있어요. 황당하죠. 안 된다고 하면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한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잘못한 게 없으니 그러라고 했는데, 아직 고발당한 적은 없어요. 가끔 발 좌우 크기가 다른 분들이 오셔서 신발 사이즈가 짝짝이로 나왔다고 화내시는 경우도 있어요. 깔창을 깔아드리고 설명을 해드려도 불량이라고 하시면 난감하죠.”

최근 달라진 시장분위기를 체감하며 신발 장사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중국에도 좋은 수제화가 많이 있는데, 가격 때문인지 우리나라엔 싼 가격의 품질이 낮은 것들만 들어와요. 거기다가 저처럼 폐업한 가게의 재고를 받아다 섞어 아주 싸게 팔아요. 정상적인 상품을 건물 임대료 내며 팔수가 없어요. 제 인건비도 안 나오는 실정이에요. 신발 소매업은 사양길인 것 같아요.”

“중소규모 신발 공장 사장님들은 원단 값 내고 기술자 월급도 못 준다며 울상이에요. 잘 만들어도 제 가격에 팔 데가 없데요. 저가 중국산 때문에요. 그래서 한국 신발 장인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이제 다들 연세가 70~80대시거든요. 신발을 견고하게 잘 만드시는데 이분들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대기업 브랜드들은 원단과 디자인을 가지고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와요. 이랜드 같은 기업들은 중국에 직접 공장차려서 물건을 만들어오고요. 결국 한국의 작은 공장 상품들은 가격 경쟁력이나 디자인에서 자꾸 밀려요. 품질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데도요.”

'코모도' 정춘자 사장님이 딸을 위해 직접 코디한 웨딩슈즈
'코모도' 정춘자 사장님이 딸을 위해 직접 코디한 웨딩슈즈ⓒ사진 제공 = 코모도 정춘자 사장님

기다려주는 손님들 위해 ‘코모도’ 다시 열게요

이야기를 나누며 자꾸 시름이 깊어지는 것 같아 정씨에게 신발 가게를 운영하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물어봤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더니 얼굴에 웃음기가 돌아왔다.

“딸이 작년 10월에 결혼했어요. 제가 신발 판매한 노하우를 살려서 직접 웨딩 슈즈(결혼식과 웨딩 촬영 때 신는 구두)를 코디해줬어요. 처음엔 신발을 골라주러 웨딩 슈즈 전문점에 갔는데, 제가 파는 것과 같은 제품에 깔창만 그 브랜드 것으로 바꿔 깔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제가 직접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두 가지 디자인의 구두를 골라서, 진주, 리본, 보석 세 가지 장식을 바꿔달 수 있게 해줬어요. 딸이 매우 마음에 들어해서 엄마로서 흐뭇했고요. 웨딩플래너도 사진 촬영 때 보고 웨딩슈즈를 극찬했다고 하더라고요.”

정 씨의 얼굴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가게가 사라졌는데도 찾아와주는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향후의 계획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양심에 찔리는 바 없이 솔직하게 정직하게 장사했고요. 물건을 사고 파는 관계 이상으로 친해져서 경조사 때 연락도 주고 받을 수 있어 참 좋네요. 이곳까지 와서 물건 사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여름이 지나면 좋은 자리를 찾아서 다시 정식으로 가게를 열고 싶어요. 기다려주시는 손님들을 위해서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기자에게 정춘자 사장은 “신발은 꼭 신어보고 사야 해요”, “신발 뒤꿈치 안쪽이 천연가죽으로 되어있어야 뒤꿈치가 편안해요”라고 신발 고르는 노하우를 조언해줬다. 신발 한 켤레를 고르니 기자의 발볼이 넓어서 좀 불편할 수도 있다고 솔직히 설명해줬다. 사겠다고 했더니 신발을 손봐주고 원가까지 밝혀가며 적정 가격을 받았다. 단골들이 왜 문 닫은 가게의 행방을 찾아 사장의 안부를 묻는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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