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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삼성의 돈과 권력보다 우리들의 연대가 더 위대하다

장마가 시작됐다. 농성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천막을 닫아두니 바람이 통하지 않아 끈적이고 내내 땀이 흐른다. 조금만 있어도 지친다.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면 위태롭게 흔들리는 천막 때문에 좌불안석이 된다. 겨울과 여름 농성을 모두 겪어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겨울보다 여름 농성이 훨씬 더 힘들다고.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이 1000일을 맞았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이 1000일을 맞았다.ⓒ민중의소리

절박함으로 시작한 농성

반올림 농성이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이제 세 번째 여름을 지나고 있다. 날자로는 천 일이다. 삼성에 대한 분노와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농성이지만, 농성 천 일은 추억과 이야기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했던 낮은 천막은 이제 서 있어도 천장이 머리에 닿지 않게 높아졌고, 두껍게 깐 바닥 스티로폼이 세월을 보내며 많이 꺼져 등에 배기게 됐다. 삼성직업병문제를 취재했던 방송국 PD가 선물해 주신 발전기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고, 여러 사람 손을 탄 음향장비는 많이 상했다. 공연하러 왔다 낡은 스피커가 마음에 걸렸던 동지가 새 스피커를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배달되는 한약상자와 철마다 받아보는 과일박스. 한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침낭과 핫팩까지, 반올림 농성장 곳곳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물건들로 가득하다.

농성장은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다. 천 일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곳을 든든하게 지켜준 농성장 지킴이들 덕분이다. 오랜 시간인만큼 지킴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반올림의 상임활동가가 된 이가 있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었다. 외국에 나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이도 있고, 군대에 간 청년도 있고, 새로이 학교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 새 직장을 구한 이도, 하던 일을 그만 둔 이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농성에 계속할 수 없게 된 이들도 생기지만, 새롭게 함께 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그리고, 변함없이 매 주 1박 2일을 농성장에서 보내는 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님,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 비가 오는 일요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식에 다녀오신 황상기 아버님이 폭우가 쏟아진 어제 밤 농성장을 지키셨다.

농성장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이어말하기’였다. 처음에는 매일, 그 뒤에는 일 주일에 한 두 번씩 진행했던 이어말하기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삼성이 답하라’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솟대와 고무신에 담긴 꽃으로 꾸민 예쁘고 슬펐던 농성장,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청소를 하고 천막비닐을 함께 갈던 시간들, 100일 200일, 그리고 황유미님의 기일 때마다 행사를 준비하며 함께 힘을 모으던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천 일이 되었다.

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양지웅 기자

아직 직업병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천일 동안,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도 진전이 있었다. ‘직업병 인정 투쟁’이라고 불렸을 만큼 직업병 인정 자체가 힘들었던 조건이 변했다. 지금까지 29분 피해자의 10개 질병에 대해 직업병이 인정되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전향적인 보상체계를 갖추고 실행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거대한 촛불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직업병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삼성의 주장이 아니라, 여전히 ‘직업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진실이 우리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작년에는 대법원에서 반도체 직업병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까지 나와, 제도 개선에 대한 희망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이런 추세 전체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촛불, 많은 이들의 힘으로 이재용이 구속되어 실형까지 살았다. 국정농단 범죄 때문이었지만, 직업병 방치와 노조 파괴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그가 감옥에 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비록 항소심에서 풀려났지만, 오히려 삼성과 이재용의 범죄행위는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재용과 삼성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직업병으로 노조탄압으로 평범한 이들이 또다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반올림 농성 천 일이기도 하지만, 30년 전 소년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7월 4일에 있을 반올림 농성 천 일 문화제에는 문송면과 산재사망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추모식도 함께 진행된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 일터의 안전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북극항로의 방사선 노출로 백혈병에 걸린 대한항공 승무원,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일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쓰러지고 결국 목숨을 잃은 스물 셋 청년노동자, 삼성의 부품하청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청년노동자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19세 김군, 현장 실습중 설비에 끼여 사망한 이민호군, 매년 2500명 가까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이 나라의 현실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4일 오후 6시 강남역 8번출구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 포위의 날' 실천 행동이 진행된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소년노동자 문송면과 산재 노동자 추모식도 함께 열린다.
4일 오후 6시 강남역 8번출구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 포위의 날' 실천 행동이 진행된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소년노동자 문송면과 산재 노동자 추모식도 함께 열린다.ⓒ반올림 제공

그리고, 여전히 삼성직업병 문제가 있다. 지난 11년간 삼성에서만 320명의 피해제보가 있었고, 그 중 118분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을 꼭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 노동안전을 위해서도 삼성의 범죄를 단죄하고 바꾸기 위해서도 삼성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7월 4일 문화제 마지막에는 삼성본관을 포위하는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예년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야만 가능하다.

김시녀 어머님이 페북에 남기신 말씀처럼
‘삼성의 돈과 권력보다 가진 것 없는 우리들 연대의 힘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삼성 직업병 해결을 위한 삼성 포위 행동 참여 선언:goo.gl/Hnb2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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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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