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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사각지대서 자행된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의 ‘살인 갑질’
28일 ㈜가진테크 대표 남창식씨가 앉았던 사무실엔 영정사진과 생전에 피웠던 담배가 놓여 있었다.
28일 ㈜가진테크 대표 남창식씨가 앉았던 사무실엔 영정사진과 생전에 피웠던 담배가 놓여 있었다.ⓒ민중의소리

올해 5월27일 현대기아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2차 하청업체 ㈜가진테크 대표 남모(59)씨가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유족에 따르면, 남씨의 회사는 현대기아차 1차 하청업체와의 불공정한 거래로 지속적으로 적자를 쌓아왔다. 그러던 중 1차 하청업체의 금형 이원화와 일방적인 계약해지로 재개의 희망을 잃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유족의 설명이다. (■관련기사:[인터뷰] ‘원청 갑질 15년’... 하청업체 사장 아빠는 해골이 됐다)

2·3차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1차 하청업체의 갑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6~2017년 사이에도 수많은 1차 하청업체들이 비슷한 갑질을 벌이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법 위반으로 행정조치 받거나 검찰에 수사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화신, 금문산업㈜, 한온시스템, 다스 등이다. 이들 1차 하청업체들은 현대기아차에 독점적 공급자 지위를 갖고 있으며, 연매출이 조 단위를 상회하는 업체다.

그나마 이들 업체들은 나은 편이다. 잘 알려진 업체들의 경우 공정위의 감독이 무서워 조심하는 편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업체들의 갑질은 수면 밑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각지대에 놓인 업체들은 철저한 갑을 관계 계약으로 개별신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가진테크 대표 남씨 또한 1차 하청업체를 상대로 감히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액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가 끊기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금속노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지난 3월27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그룹 1차 하청업체의 불공정행위 근절과 상생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금속노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지난 3월27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그룹 1차 하청업체의 불공정행위 근절과 상생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참여연대

각종 부당거래·갑질로 공정위 행정조치 받은 1차 하청들
㈜화신, 금문산업㈜, 한온시스템㈜, 다스 등등

대표적인 현대기아차 1차 하청업체인 ㈜화신과 금문산업㈜, 한온시스템㈜ 등은 수년 동안 2차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각종 부당거래행위를 저질러 온 것이 드러나 공정위의 행정조치를 받았다.

보통 비합리적인 최저가 경쟁 낙찰과 낙찰된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또다시 입찰가격을 깎는 갑질로 산업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일은 건설업계에서나 발생하는 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제조업계에서도 공공연히 발생되는 일이다. 섀시(chassis), 차체(body) 등의 부품을 제조해 현대기아차 등에 납품하는 중견기업인 ㈜화신이 그렇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차 하청인 ㈜화신은 2014년 3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제안가가 기재된 제안서를 받는 방식으로 최저가 경쟁 입찰을 실시했다. 그 중 40건의 입찰에서 이미 낙찰된 최저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 안 그래도 최저가 낙찰로 힘든 2차 하청에 부담이 추가로 더해진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 제2항 제7호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화신에 향후 재발방지를 포함한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3억92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엠블럼 등 자동차 의장 부품을 생산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등에 납품하는 1차 하청업체인 금문산업㈜ 또한 하도급 대금을 일방적으로 감액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2011년 9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후드 가니쉬(Hood Garnish) 제조를 위탁하고 불량이 발생했다며 손실비용 명목으로 하도급 대금 7944만원을 감액했다. 하지만 불량의 원인을 수급 사업자의 책임을 돌릴만한 사유는 없었다. 오히려 원청이 무상으로 제공한 사급 자재의 규격 변경으로 인해 발생한 불량이었다.

금문산업㈜의 갑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을 정상적으로 수령하고도 하도급 대금 수백만원을 지급하지 않거나, 서면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고, 4억원이 넘는 하도급 대금을 어음으로 교부하면서 어음 만기일까지 어음 할인료 수백만원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수많은 갑질을 자행했다. 공정위는 금문산업㈜에 과징금 9900만원을 부과하고, 지급하지 않은 대금과 일방적 감액으로 손실을 본 9144만원을 지급하라 명령을 내렸다.

이 외에도 잘 알려진 현대차 1차 하청업체인 다스, 한온시스템㈜ 등도 각종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논란이 됐다. 다스의 경우 각종 불공정거래뿐만 아니라, 알짜 하청업체들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논란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강제조사권을 갖고 있지 못한 공정위 차원의 조사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검찰과 국세청 차원의 조사만 진행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도 기준 주요국의 자동차산업분야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다음과 같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도 기준 주요국의 자동차산업분야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다음과 같다.ⓒ산업연구원

악순환을 낳은 자동차 제조업계 갑질과 전속거래

어쩌다가 국내 자동차 제조업계에 불공정거래와 갑질이 만연해진 걸까? 그 원인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고착화된 전속거래가 지목된다.

전속거래란,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에 독점으로 부품을 공급하도록 하는 계약으로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전속거래는 중소 협력 업체에 안정적인 거래처를 제공해 초기 시장 안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특정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는 문제점도 공존한다.

전속거래를 통한 의존도가 커지면 갑을관계가 분명해 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낮추도록 강요하거나, 전속거래를 강요하는 등의 갑질을 자행해 왔다. 전속거래로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는 원청의 갑질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대·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를 낳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완성차업체의 영업이익률은 9.6%로 미국(8.2%)·유럽(7.1%)·일본(6.2%)보다 높은 반면, 중소 부품업체의 이익률은 4.4%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 다른 나라 중소 부품업체의 이익률은 미국·일본이 각각 8.2·6.3%로 완성차업체와 엇비슷하고, 유럽은 8.0%로 완성차업체보다 높다.

문제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산업 전반의 침체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양극화는 임금시장에서의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이로 인해 유능한 인재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게 되고, 인재가 몰리지 않는 중소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소 하청업체의 뒷받침 속에서 완성품을 생산하는 대기업도 성장을 멈춘 협력업체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김상조 공정위원장ⓒ뉴시스

종합대책 내놓은 공정위…사각지대서 지속되는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산업 전반의 양극화와 악순환을 바로잡기 위해 공정위 차원에서도 종합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전속거래 강요금지, 하도급대금 조정요건 확대, 경영정보 요구 금지 등의 과제에 대해선 입법조치를 마치고, 시행령까지 개정해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와 함께 불공정행위 감시를 강화하고 과징금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등 법위반행위에 대한 억지력을 제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진테크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공정거래 사건을 다뤄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협력사는 2·3차 하청업체까지 합하면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모든 업체에 대한 모니터링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차 등의 자동차완성업체가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2·3차 협력사 경영여건·노동조건이 개선되도록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공정위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업체들을 모두 감독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보단 전체 생산과정을 사실상 통솔하고 있는 완성차업체가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산업전반에 걸쳐져 있는 갑질문화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현대차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차 협력사와 2·3차 협력사들 간 합리적이고 공정한 거래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1·2차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해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인하고 다양하고 실질적인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협력사간 불공정거래가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적발되어 온 것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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