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그때는 선수였지만 이제는 감독이 됐다.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허재(53) 감독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서울공항에서부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 감독의 아버지는 신의주가 고향인 실향민이다. 아버지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품은 채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허 감독은 이번 방북에 앞서 "저보단 아버지가 한번 가셨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한을 간직한 허 감독. 그래도 이번엔 두 아들과 함께 평양 땅을 밟았다. 그의 아들 허웅, 허훈은 모두 농구 국가대표이다.
허 감독은 3일 평양에 도착한 뒤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한국 남자대표팀은 이번 통일농구경기에 앞서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중국-홍콩전을 치른 뒤 2일 밤 귀국했다. 여독을 풀 새도 없이 곧바로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허 감독과 선수들은 3일 오후 7시부터 옥류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가했다. 허 감독은 만찬 도중 테라스로 나가 대동강 야경을 바라보며 두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허 감독은 "언제 기회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념이 될 것 같아서 웅이, 훈이랑 사진을 한 장 찍었다"고 말했다.
1999년 남북을 오가며 두 차례 진행된 통일농구는 4년 뒤인 2003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15년 전 통일농구가 열렸던 그곳, 허 감독은 4일 류경정주영체육관 코트에 다시 섰다. 허 감독은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하게 기분 새롭고, 긴장된다고 할까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3년 당시 남북을 대표하는 허 감독과 리명훈(49)의 끈끈한 우정이 주목을 받았다. 리명훈은 2m35cm 장신 센터로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노리기도 했다. 둘은 국제대회를 통해 자주 얼굴을 맞대면서 서로를 "명훈아", "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해졌다. 허 감독은 "2003년에 리명훈 선수와 소주 한 잔 먹는 장면이라든지 대화를 나눈 것이 화제가 됐다"고 소회했다.
허 감독이 리명훈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2003년이다. 북측 농구 관계자에 따르면 리명훈은 425 체육단 감독을 맡는 등 최근까지 농구 지도자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후반인 리명훈의 아들도 북한에서 농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허 감독은 리명훈과의 재회를 고대했다. 하지만 3일 저녁 옥류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리명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허 감독은 환영만찬에서 15년 만에 평양냉면을 다시 맛봤다. 허 감독은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옥류관 냉면 맛이 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며 웃었다. 허 감독은 4일 점심에도 냉면을 먹었다.


평양공동취재단 최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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