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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세상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다 볼펜을 떨어뜨리면 두, 세 살 된 아이가 뒤뚱뒤뚱 걸어와 볼펜을 줍고 천진한 표정으로 볼펜을 아빠에게 전달한다. 장난삼아 손가락을 부여잡고 “아이 아파. 아빠 손가락 다쳤어!”라고 징징거리면, 아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빠의 손가락을 쥐고 호~ 하고 불어준다.

이런 아이의 행동을 약간 유식한 말로 표현하면 ‘공감 능력’이라고 부른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빠의 아픈 손가락에 호~를 하는 이유는 아빠의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공감은 인간의 선천적 본능이다. 말도 못 배운 아이가 공감 능력을 교육 받았을 리가 없다.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학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침팬지 실험을 통해 공감 능력이 타고난 것임을 입증한 바 있다.

드 발은 침팬지의 우리에 줄을 하나 설치했다. 침팬지가 줄을 당기면 먹이가 나온다. 침팬지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배고 고플 때마다 줄을 당긴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또 다른 장치가 있다. 침팬지가 줄을 당길 때마다 옆방의 침팬지 동료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침팬지는 곧 이 사실을 눈치 챈다. 줄을 당기면 나는 먹이를 얻지만, 옆방의 동료는 고통을 받는다. 그렇다면 침팬지는 동료의 고통을 모른 채 하고 계속 줄을 당겼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침팬지는 줄을 당기지 않았다. 심지어 매우 배가 고픈 상태가 돼도 그는 줄을 당기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배부름보다 동료의 고통을 더 공감했기 때문이다. 침팬지가 이럴진대 그들과 유전자가 90% 이상 일치하고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회를 건설한 인류에게 그런 선천적 공감 능력이 부족할 리가 없다.

지난달 27일 10년 동안 복직을 기다렸던 쌍용자동차의 한 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쌍용차 해고 사태 이후 벌써 30번 째 맞이하는 죽음이다.

우리 사회가 그의 죽음을 부디 오래 기억하기를 바란다. 해고 노동자로서 그가 10년 동안 느꼈을 고통을 함께 공감하기를 소망한다. 그의 죽음이 무덤덤하게 묻혀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원래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공감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쌍용자동차에는 아직도 복직하지 못한 120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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