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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회 사건 기획①] ‘꽃들에게 희망을’ 동화책이 증거? 코미디 조작 사건

편집자주

일명 ‘한울회 사건’은 인혁당 사건과 부림사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공안조작 사건이다. 아직까지 상당수 피해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 사법농단을 자행하던 때 이 사건은 재심에 회부됐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부 휘하의 재심 재판부는 군사독재 시절의 정권과 결탁했던 사법부의 판단을 되풀이했다.

독재정권이 한 번 죽인 피해자들을 양승태 사법부가 같은 논리로 한 번 더 죽인 셈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울회’는 왜 반국가단체가 되었나?

‘한울모임’(한울회는 검경이 부른 용어)은 평범한 기독교 신앙모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임 박재순 목사가 1980년 겨울 열린 신앙수련회에서 마가복음 5장 1절 이하의 본문에서 예수가 군대 귀신을 물리친 이야기를 가지고 해설한 대목이 문제를 일으켰다.

수련회에서 박 목사는 그해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어떻게 국민을 살육할 수 있는가? 이런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그대로 공소장에 적혀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변모했다. 관련자들은 고문과 허위조작 얼렁뚱땅 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다.

또한 이규호 목사가 1979년 겨울 <현대의 공동체론>이라는 제목의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공동체적 삶을 모색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일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이들이 말한 ‘공동체’는 기독교적 신앙에 비롯한 신도의 공동생활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모임 구성원들 상당수는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를 기독교 신앙에 의한 세계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사진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고문 또 고문. 무서울 만치 집요한 그들의 ‘배후’ 묻기

영문도 모른 채 반국가적 단체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덮어쓴 박 목사 등 관련자들은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진 채 승용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감금됐다.

그 곳은 여관방으로 추측됐다. 그들을 담당한 경찰관 2명은 ‘보안법을 위반한 사실을 자백하라’며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며칠간 무릎을 꿇리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다 털어놓고 불어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실과 배후를 대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지만 아무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8일, 다시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진 채 도경 대공분실의 지하실에서도 수사를 받았다. 이같은 불법 감금수사 및 고문은 1981년 3월 23일에서 4월 17일까지 무려 한달 여 기간동안 이뤄졌다.

이후 조작된 공소장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이들은 가난하거나 질병을 지닌 자들로서 평소에 사회에 불만을 품어 오다가 마르크스 공산사회를 세울 것을 결의했다. 핵심요원을 양성해서 각 지역에 침투시켜 공산주의 체제로 개혁하려 했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부정하고 국가를 변란하여 마르크스 공산사회를 세울 것을 결의했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향후 책에 실린 수기에서 “지극히 유치하고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한울모임의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이라고 적었다.

이후 이어진 재판 과정은 더욱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책 꽃들에게 희망을
책 꽃들에게 희망을ⓒ자료사진

‘코미디 재판’ 방청석엔 조롱과 야유의 웃음이…

한울회 사건의 재판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검사가 가져온 증거들은 하나같이 황당했다.

5공 반국가단체 조작사건 수기를 담은 책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중 실린 박 목사의 한울회 사건 수기에는 이 같은 재판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검사가 증거물로 제시한 책들 가운데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었다. 가톨릭 쪽에서 나온 책인데 애벌레가 자라서 나비가 되는 과정을 그린 동화책이었다. 검사는 한심하게도 이 책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에 빗대어 학생들을 의식화시켜 사회변혁을 고취시켰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방청객들은 까르르 웃고 야유했다.”

1970년대 미국 트리나 폴러스가 낸 동화책으로, 동화형식이긴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우화로도 많이 읽힌 책이다. 주인공인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경쟁’으로 비유되는 애벌레 기둥에 치열하게 오르는 이야기, 결국 자아정체성을 찾아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이야기 등이 주요 줄거리다.

이를 두고 반국가단체의 책이라니. 방청객들의 조롱과 야유가 섞인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검찰 측 증거에도 한울모임 사람들은 실형을 살아야했다.

공안 조작 사건은 대부분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서가 그대로 공소장이, 그 공소장은 그대로 판결문이 되곤 한다. 재판은 무의미했다.

한울회 사건 당시 신문보도
한울회 사건 당시 신문보도ⓒ자료사진

이후 재판 과정은 ‘핑퐁 재판’…결국 모두 유죄

이 사건 1심 재판을 맡은 대전지방법원은 1981년 10월 10일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이규호에 대해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박재순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 6월을 선고하는 등 6명 전원에 징역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은 1982년 2월 13일에 선고공판을 열고 “피고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공산주의 사상에 투철한 핵심요원을 양성하여 각 지역으로 분산침투시켜 공동노동,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는 지역공동체를 육성, 확산하여 사회공동체 인류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공산주의 체제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한울회라는 조직을 구성해 활동한 사실이 명백하다”며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또한 “한울회의 목적달성이 외부적 객관적 여건에 따라 불가능할지는 몰라도 전혀 허무맹랑한 비과학적 공상적 결사라고 볼 수 없다”며 한울회를 반국가단체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82년 6월 8일에 선고공판을 열고 “한울회는 폭력이나 무력에 의해 공산주의체제로 사회를 개혁하자는 목적으로 결사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울회를 반국가단체로 인정한 부분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사건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이규호의 논문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소개하지만 그 전체적인 내용은 현대공동체 사상의 하나로 마르크스 사상의 일부를 소개하는데 지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논문의 진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현대 자본주의 경제 하의 소외된 인간 상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론으로 공동체 문제를 연구해본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한울회에 대해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앙공동체라는 점 이외에는 피고인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점도 반국가단체로 인정하지 않은 근거로 제시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이규호에 대해 공소장 일부를 변경하고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으로 감경했다. 그러나 한울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체제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국가변란목적의 결사임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한 사실이 명백하다”며 기존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1983년 2월 11일 이규호에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 박재순에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 6월, 홍성환에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자격정지 2년 6월, 이충근에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1년 6월, 이건종에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한 파기환송심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주심 대법관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당시 이 재판 과정은 ‘핑퐁 재판’으로 일부 언론에 소개됐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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