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국경선과 민족주의, 그리고 ‘단일한 유럽’이라는 꿈
헝가리-세르비아 국경을 순찰하는 군인. 헝가리는 난민의 유입을 막기위해 남쪽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2017.4.28
헝가리-세르비아 국경을 순찰하는 군인. 헝가리는 난민의 유입을 막기위해 남쪽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2017.4.28ⓒAP/뉴시스

편집자주/우리 사회에서 난민의 문제는 이제 막 떠오른 의제다. 유럽은 2000년대 후반부터 불거진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만약 난민이 문제의 전부라면 그 해법도 그리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민 문제가 정치화되는 배경에는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문제가 뚜렷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초점이 바로 국경선(Borders)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맥스 피셔의 칼럼을 소개한다. 원문은 Why Europe Could Melt Down Over a Simple Question of Border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제시된 유럽연합의 정당성의 근거는 언제나 실용적인 이유, 즉 유럽연합은 더 싼 상품, 더 편리한 여행, 번영과 안전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을 설립한 지도자들은 마음속에 더 커다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연합을 국민국가를 뛰어넘으려는 근본적인 시도로 생각했는데, 그들이 그런 시도를 하게 된 것은 바로,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국민국가의 핵심이념과 제로섬 방식의 경쟁이 한 세대의 차를 두고 두 번에 걸쳐 대재앙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외무장관은 1949년에 유럽연합의 선구가 될 조직(유럽석탄철강공동체)을 선포하면서, 그것을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인 평화”를 보증할 “위대한 실험”이라고 불렀다.

노르웨이의 외무장관 할바드 랑에는 그 당시의 유럽을 개별적인 블록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율성과 정체성을 버리고 통합된 국가를 형성하게 되는, 초기 아메리카 식민지에 비유했다. 설득될 수만 있다면, 버지니아인들과 펜실바니아인들이 미국인이 되었듯이,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은 유럽인이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랑에는 유럽연합 설립의 이론적 토대가 된 에세이에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유럽의 통합에 대한 진정한 장애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 장애물을 극복하는 대신에, 유럽의 지도자들은 그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척 가장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은 유럽인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즉 유럽인들이 깊이 간직하고 있는 민족적 정체성과 힘겹게 얻어낸 주권을 일정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유럽연합 바깥의 가난하고 전쟁으로 찢겨진 나라들로부터의 이주민에 의한 사회정치적 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 무엇인가를 지켜야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 따르면 자신들은 이 문제, 즉 민족적 정체성과 주권문제에 대해 양보하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싸움은 무엇보다도, 유럽연합이라는 꿈과 유럽 국가들의 현실, 즉 국경선, 이 둘 사이의 모순을 둘러싸고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경선:유럽연합이라는 꿈과 ‘유럽의 국가’라는 현실이 만나는 곳

기존의 유럽 지도자들은 유럽연합 내에서 국경선이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이동은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고, 경제를 통합하며, 단일시장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유럽의 유권자들은 자기 나라에로의 난민의 유입을 크게 제한하고 싶어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국경이 폐쇄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난민들이 이미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에서, 난민문제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문제에 대한 대중의 요구와 국가내부의 법률을 조화시키면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난민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메르켈 독일총리와 유럽 정상들. 2018.6.28
난민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메르켈 독일총리와 유럽 정상들. 2018.6.28ⓒAP/뉴시스

그러나 (작아 보이는) 그 문제가 유럽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은 유럽연합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앙을 경고하고, 권력을 잃을 위기를 맞은 데에서 잘 드러난다. 국경선 문제는 사실상 유럽이 국민국가라는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는 50년 이상 동안 유럽인들이 대답은 물론이고 마주치기조차 회피해왔던 문제다.

2015년 난민위기의 정점에서 메르켈은, 만약 유럽 국가들이 “공정하게” 부담을 나누지 않는다면, 기회주의적인 지도자들이 그 문제를 이용하여 유럽내부에서의 이동의 자유를 없애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유럽이 아니”라고 말했다.

삼년 후, 메르켈은 자기가 경고했던 바의, 바로 그런 지도자가 됐다. 독일에서의 연합정권을 유지하고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그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선을 통제하여 난민을 막을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난민은 이탈리아, 그리스, 혹은 스페인에 도착한 후, 보호시설에 입소하기를 기다리며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북쪽을 향해 떠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수십 개의 개방된 도로와 철로에서에서 난민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한 가지 선택은 난민처럼 보이는 사람을 선별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인종프로파일링(경찰이 특정 인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임의로 심문, 검사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행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국경의 감시탑에 쌍안경을 든 감시자를 세워야 하나? 무작위로 차를 길 옆에 대게 해야 하나? 어떤 계획도 대부분의 난민들은 걸러내지 못하는 한편, 검은 피부를 가진, 하지만 난민이 아닌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두 번째 선택지는 검문소를 설치하여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는 것인데, 이것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이동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고 두 나라 모두의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메르켈의 계획은 국경을 건너려는 난민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보호소의 설치를 전제하고 있다.

메르켈이 3년 전에 경고했듯이, 이러한 조치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럽연합의 모습을 파괴할 수 있다. 그 조치는 다른 나라들도 자기의 국경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암암리에 장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조치로 인해 난민들이 독일 같은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나라로 갈 길이 막히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그 난민들을 유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기가 아주 힘들어지면, 난민들은 결국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들은 메르켈이 경고한 대로 유럽연합을 떠나게 될 것이며, 유럽연합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내부의 이동을 막으면 유럽연합이 가져다주는 모두가 알고 있는 특권, 즉, 일자리, 휴가, 혹은 가족을 위한 이동의 용이함 등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교역과 노동의 이동이 감소하고, 결국 단일시장을 약화시킬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런 정책이 대중의 요구에 맞는 정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기이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난민문제해결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파장을 미칠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의 요구가 단지 난민을 반대하는 감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유럽의 국경선을 복원하려는 동기는 아마도 어느 정도는, (난민 때문이 아니라) 국경 그 자체와 관련된 문제인지도 모른다. 포퓰리스트들이 주권과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난민을 반대하는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런 감정은 실제로 넘쳐난다). 아마 그것이 그들의 진심일 것이다.

난민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이주민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진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스트의 물결을 취재하기 위해 동료와 독일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똑같은 우려의 목소리들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사라지는 국경. 실종된 정체성.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유럽연합에 헌납된 주권. 너무 많은 이주자들.

포퓰리스트의 지지자들은 난민문제를 더 커다랗고 보다 추상적인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핵심 소재이자 실재하는 증거로 종종 끌어들이곤 했다. 지지세를 얻어가고 있는 포퓰리스트 정당인 “독일대안당(AfD)” 지지 집회에서 만난 한 여성이 말했듯이, 그들은 종종 그들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고 말하곤 했다.

독일대안당의 유력 극우인사인 비욘 회케는 “독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독일의 통합에서 그 토대는 정체성이다”라고 나의 동료에게 말했다.

비록 규모가 큰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독일이 독일이 아니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문화적 변화는, 완벽한 주권을 가진 국민국가라는 핵심이념을 점진적으로 포기하게 함으로써, 더 큰 유럽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대규모 노동조합의 거부와 힘은 때로 어떤 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바꾸기도 한다. 이 문제들 중에는 국경에 대한 통제문제도 포함돼 있는데, 국경은 유럽인들에게는 완전히 개방돼 있지만, 난민에게는 부분적으로만 개방돼 있다.

노동조합의 반발은 명백히 낯선 사람으로 보이는 난민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연구에 따르면 그 반발은 유럽에서 넓게 퍼져있는 이주민에 대한 적대감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북부 잉글랜드의 요크셔를 최근 여행하면서, 나는 난민으로부터 시작된 불만의 목소리가 곧바로 대규모로 이주한 폴란드의 노동자에게 향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이는 영어보다 폴란드어가 더 많이 들리는 마을도 있다고 불길한 어조로 말했다.

유럽인들이 인종과 언어에 토대하고 있으며, 많은 문제를 일으킨 바 있는 예전의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요구, 그리고 그 집단 내의 모두가 공통으로 인지하고 있는 동질성에 대한 요구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독일은 독일인에게, 카탈로니아는 카탈로니아인에게. 나처럼 생기고 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나의 전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나라. 이러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위험한 것이기는 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것을 잃으면 우리는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대중문화에 의해 강화되고 나라간의 관계 속에 녹아들어 있다.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유럽 정상들에게 최근 수많은 실종자와 익사자가 발생한 지중해상 난민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유럽 정상들에게 최근 수많은 실종자와 익사자가 발생한 지중해상 난민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뉴시스/AP

민족주의적 본능이 새로운 질서를 위협하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민족주의 감정을 억제시키고, 탑-다운의 방식으로 유럽을 변화시키기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겨우 절반쯤 완성된 2008년에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유로화의 위기를 초래했는데, 이 위기는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부인하거나 소멸되기를 바랐던 유럽의 정치적 분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위기와 그에 수반된 이슬람 테러리즘의 분출은, 한편 위협이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면 강력한 정체성을 추구하여, 자신을 힘 있는 집단의 일부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유럽인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이라는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자기의 민족적 정체성을 더 많이 수용하면 할수록, 그들은 그만큼 더 유럽연합을 반대하게 되며, 자기의 국경 안에 있는 외부인은 그 누구든 더 불신하게 된다.

민족주의를 뛰어넘겠다는 자신의 야망과 증가하는 민족주의의 현실을 조화시킬 수 없었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두 가지를 다 성취하려고 애써 왔다. 메르켈은 한 개의 강력한 국경선을 만들어 냄으로써 유럽의 국경 없는 영역을 지키려고 해왔다.

오스트리아의 총리 세바스찬 쿠르즈는 훨씬 더 강력한 “외부와의” 경계선을 주장해왔는데, 그것은 내부의 국경선을 개방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을 외부세계와 분리하는 경계선을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난민의 유입이 근본문제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으로서의 유럽연합과, 대중들이 더욱 더 민족주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현실정치로서의 유럽연합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족주의의 부활은 국경선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헝가리의 사례는 그것이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헝가리의 민족주의적인 정부가 장벽을 세우고 난민촌을 설립한 후, 헝가리에서는 외국인 혐오가 강화되고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로화 위기가 보여주었듯이, 친 유럽연합 성향의 지도자들조차도 예전의 민족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들은 결국 자기의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므로 당연히 그들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충성을 바칠 첫째 대상은 그들의 나라인 것이다. 난민문제가 그러하였듯이, 그들의 그런 입장 때문에 유럽연합의 나머지 국가와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자기 국가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하다.

Voice of the World / 편집 : 이정무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