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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 흘리기가 경제학적으로 빵점인 이유

살다보니 유시민 작가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모습을 다 본다. 도올 김용옥 선생, 개그맨 김제동 씨에 방송인 김용민 씨까지 거론이 되는 모양이다. 웃기려고 이랬던 거라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자유한국당은 모처럼 웃기는 데 성공했다!

한국당이 누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 말로는 뭔들 못할 것인가? 심지어 그 말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점수는 빵점이다.

경제학에는 시장신호이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뉴욕대 경제학과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교수가 개발한 이론이다. 스펜스 교수는 이 이론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장신호이론을 우리말로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짝짓기의 경제학’ 쯤 된다. 채용 시장에서 기업과 노동자들이 짝짓기를 시도하거나 이성끼리 연애를 할 때 시장신호이론은 매우 유용하다. 동물들의 짝짓기도 마찬가지고, 한국당이 새 비대위원장을 찾아 헤매는 모습도 이런 짝짓기 과정이다. 그런데 스펜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당의 비대위원장 명단 흘리기는 효과도 없고 소용도 없는 뻘짓에 속한다.

짝짓기는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

시장신호이론에 따르면 짝짓기를 위해서는 양쪽이 신호를 주고받아야 한다. 아프리카에 사는 가젤 무리 중에는 특히 튀는 가젤이 한 마리씩 있다. 사자가 사냥을 시작하면 이 튀는 가젤은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50cm 이상 껑충껑충 제자리 뛰기를 한다.

그렇게 높이 제자리 뛰기를 하면 사자 눈에 띄기도 쉽고, 체력도 고갈돼 도망에 방해가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자는 그런 가젤을 보면 그냥 지나치고 다른 가젤을 쫓는다. 이게 바로 양쪽이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제자리 뛰기를 하는 가젤은 무리 중에 가장 달리기에 능한 녀석이다. 이 가젤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가장 빠른 가젤이라는 사실을 사자가 모른다는 데 있다(이런 상황을 ‘정보 불균형 상태’라고 부른다). 자신이 제일 빠른 가젤이라는 사실을 사자에게 알려줄 수만 있다면 사자는 자신을 쫓지 않을 텐데, 가젤은 사자와 대화를 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가젤이 도망 대신 제자리 뛰기를 택한다. “나, 엄청 빠른 놈이다. 괜히 나 쫓지 말고 다른 놈 쫓아라”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사자는 이 신호를 알아채고 다른 가젤을 공략한다.

영화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 씨가 경찰서에서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관이 “뭘 잘했다고 떠들어!”라며 최민씩 씨에게 손찌검을 하자 격분한 최민식 씨는 경찰관 얼굴을 냅다 갈긴다.

시장신호이론에 따르면 이런 행동도 신호를 주는 것이다. 최민식 씨는 높은 사람과 연줄이 많다. 문제는 이 사실을 경찰관이 모른다는 데 있다. 그래서 최민식 씨는 경찰관을 폭행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얻어맞은 경찰관은 화를 내는 대신 ‘저 사람이 뭔가 있구나’를 알아채고 고분고분해진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장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를 마치고 선거 패배에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과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장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를 마치고 선거 패배에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과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값비싼 신호를 보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장신호이론에 따르면 신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값비싼 신호이고, 하나는 누구나 보낼 수 있는 값싼 신호다. 스펜스 교수는 값비싼 신호를 선택해야 상대가 그 신호를 믿는다고 말한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보낼 수 있는 값싼 신호는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연인이게 “나 당신을 정말 사랑해!”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값싼 신호다. 상대가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값비싼 신호를 보내야 한다. 예를 들면 63빌딩 옥상에 “〇〇아, 사랑해” 같은 플래카드를 붙이는 것 말이다.

가젤이 목숨을 걸고 제자리 뛰기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사자가 상대의 달리기 능력을 믿는다. 수컷 공작새가 거창한 꽁지깃을 달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꽁지깃은 매우 무겁고 불편하다. 그것을 펼치면 천적에게 발각될 위험도 높아진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해야 암컷이 감동한다.

최민식 씨가 말로만 “내가 임마, 느그 서장하고 임마, 사우나도 가고, 다 했어 임마!”라고 외쳤다면 경찰관은 “나는 임마, 트럼프하고 고스톱도 치고 다 했어 임마!”라며 무시했을 것이다. 경찰 폭행죄와 공무집행방해죄를 감수하면서까지 경찰관을 구타해야 값비싼 신호가 전달된다.

한국당이 보내는 값싼 신호

그래서 한국당의 비대위원장 명단 흘리기는 경제학적으로 빵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폭망했다. 뭔가 개선을 하지 않으면 지옥행이다. 그래서 냈다는 아이디어가 비대위원장 후보로 유시민, 최장집 등등의 명단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당사자 입장은 어떻겠나? 그게 값비싼 신호로 다가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저 자식들이 장난하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최장집 교수는 “농담이죠?”라는 반응으로 한국당의 신호를 무시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보내는 신호는 가치가 없다. 한국당은 진보적 명망가들을 비대위원장 명단으로 흘리며 변화의 의지가 있는 척 할 모양인데, 말로는 뭔들 못하겠나? 그건 아무도 안 믿는 값싼 신호일 뿐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앞에서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게 값비싼 신호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릎 몇 번 꿇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릎 안 꿇을 정치인이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당이 국민들 앞에 변화의 의지를 호소하고 싶다면, 애먼 진보 명망가들 명단 흘리기나 무릎 꿇기 같은 값싼 신호를 멈춰야 한다. 엄청난 희생을 각오한 값비싼 신호를 보내야 상대(국민)가 믿는다.

그 동안 해놓은 짓들이 있으니, 최소한 국회의원 전원 사퇴 정도는 해 줘야 값비싼 신호가 될 것이다. 그런데 금배지는 죽어도 놓기 싫고, 있지도 않은 개과천선의 의지는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겨우 선택한 게 값싼 무릎 꿇기 퍼포먼스나 진보 명망가 명단 흘리기다. 시장신호이론을 모르는 무식은 죄가 아닌데, 그 짓을 하고도 국민들이 속을 것이라고 믿는 무식은 명백한 범죄다.

가젤과 공작새도 신호를 보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연인들도 사랑을 얻기 위해 진심을 담은 수고를 감수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씩이나 돼서 고작 보내는 신호가 무릎 꿇기냐? 이런 한심한 작자들을 도대체 어디에 써먹어야 하는지 심히 걱정스러워서 하는 이야기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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