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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좌파 대통령 - ‘암로’의 멕시코는 어디로 향할까
당선 연설을 하는 오브라도르(일명 암로) 멕시코 신임 대통령. 2018.7.1
당선 연설을 하는 오브라도르(일명 암로) 멕시코 신임 대통령. 2018.7.1ⓒAP/뉴시스

지난 1일 멕시코 대선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암로(AMLO)”가 얼마나 큰 승리를 거뒀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암로는 53%를 득표해 우파 리카르도 아나야를 무려 30%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압승을 거뒀다. 그는 멕시코 대선 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2000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전국의 32개 주 중 12개는 암로에게 60% 이상의 표를 몰아줬고, 단 한 개 주를 제외한 31개 주와 전국 도시의 80%가 그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진 멕시코의 정치적 지형

이날 대통령 외에 상원 의원 128명, 하원 의원 500명, 멕시코시티 시장과 9개 주의 주지사, 1600명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다.

암로의 모레나(MORENA, 국가재건운동)는 2014년에 설립돼 이번에 처음으로 전국 선거에 참여했지만, 역시 압승을 거뒀다.

모레나는 하원과 상원에서 탄탄한 과반을 확보했고 5개의 주를 사상 최대의 차이로 장악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에 암로가 역임했던 멕시코시티 시장 자리 또한 16% 포인트 차이로 모레나의 클로디아 샤인바움이 차지했다. 또, 암로의 고향인 타바스코가 있는 로페즈 주에서는 모레나 소속의 후보가 무려 40% 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모레나의 승승장구는 암로의 전통적인 텃밭을 뛰어넘어 북부 지역도 강타했다. 멕시코의 3대 정당인 우파의 제도혁명당(PRI)과 국민행동당(PAN), 그리고 중도좌파의 민주혁명당(PRD)은 월요일에 일어나 보니 소수 정당이 돼 있었다. 멕시코의 정치적 지형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암로는 수개월 간 여론조사에서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다수는 부정부패를 걱정하며 투표장을 향했다.

선거 당일 간간이 들려오는 수상한 일들에 대한 소식은 이런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 중에는 극적인 소식도 있었다. 일례로 푸에블라 주에서는 승합차 한 대가 투표함을 훔쳐 달아나다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주민들은 쫓아가서 범인들을 잡았고, 승합차를 에워싸고 당국자들이 도착할 때까지 투표함을 지켰다.

이번 선거 자체가 폭력으로 얼룩졌었다. 100여 명에 이르는 여러 당의 후보들이 선거운동기간 도중 (아마도 마약 카르텔의 손에) 암살됐다.

하지만 선거 당일 밤, 암로와 그의 지지자들은 순조롭게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경쟁 후보들이 일치감치 패배를 인정해 긴장이 완화됐고, 중앙선관위는 암로가 승리할 것이라 예고했다. 또, 물러나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선거 결과를 인정하고 권력 이양을 평화롭게 할 것이라 약속했다.

수십만 명이 멕시코시티의 중앙 광장에 쏟아져 나와 암로와 모레나의 승리를 자축했다. 감정에 북받친 암로는 오늘을 있게 한 농민과 노동자, 학생들의 좌파 운동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군중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를 외칠 때 암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막중한 역사적 임무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6년전 대선에서 패배할 때 내걸었던 주된 슬로건, “모두의 안녕을 위해, 빈곤층이 먼저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에 모인 환영인파. 2018.7.2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에 모인 환영인파. 2018.7.2ⓒ신화/뉴시스

암로의 상충하는 두 가지 비전

그런데 이런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몇 가지 의문은 남는다. “이 역사적 순간”의 실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국민이 암로에게 압도적으로 맡긴 ‘임무’의 본질은 무엇인가?

멕시코시티 중앙 광장으로 향하기 직전, 암로는 호텔에서 연설을 하며 자신의 “재정적, 금융적 원칙”에 대한 의지를 밝혀 시장을 안심시키려 했다.

암로의 비서실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알폰소 로모는 암로와 재계를 잇는 훌륭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증권회사 중 하나를 이끌고 있으며, 80년대에 멕시코를 신자유주의의 길로 몰고 간 우파 제도혁명당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물론 암로가 중앙광장에서 당선 수락 연설을 하던 도중 인수위 참여자로 로모를 거명하자 군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현재로서 모레나는 각기 다른 성격의 반제도권(anti-establishment) 세력의 광범위한 연합체이다. 암로는 반정부 좌파 인사들의 후예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암로의 가장 큰 매력은 그가 국가기구를 노동계급을 위한 재분배의 도구로 삼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로모를 비롯한 중산층, 중상류층 지지자들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 틀을 갖추는 것이 모레나의 역사적 임무라 생각하고 있다. 놀랍지만 이런 임무 역시 현재로서는 반제도적이다(!). 족벌주의를 타파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며 탈세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암로는 선거운동을 하며 이 두 비젼을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부정부패로 인해 국가의 재분배 능력이 제한되어 왔으며, 조직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가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모레나는 주류 정당들의 정치적 정통성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던 시점에서 많은 계층에게 탈출구를 제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모레나는 심각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임시적인 정치적 연합체인 것이다.

암로에 대한 지지가 당분간 갈등을 봉합하겠지만...

물론 암로로서는 로모의 비전과 그가 칭송했던 좌파 지도자들의 비전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밖에서 멕시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암로가 좌우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걸어온 길이 일반적인 멕시코 정치인의 길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식의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좌파 출신도 아니고, 남미의 룰라나 에보 모랄레스처럼 전투적인 노조활동가 출신도 아니다.

공무원 생활 초기에 암로는 제도혁명당의 당원이었다. 그 때는 제도혁명당이 20세기 초반의 급진적 농민혁명을 이어받아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고 공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을 시기이긴 하다.

1970년대, 암로의 첫 임무는 그의 고향인 로페즈 주에서 지역 공동체 개발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그는 제도혁명당을 민주화하려던 과정에서 제도혁명당 로페즈 지부 위원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1980년대에 제도혁명당이 급격히 신자유주의적 색채를 띠게 되자, 결국 민족주의 분파가 떨어져 나갔고 암로는 이들을 따라 탈당했다. 암로의 기나긴 야권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암로는 계급 갈등의 중재자이자 규제자로 작동할 수 있는 중립적인 국가를 꿈꾼다. 그에게 제도혁명당은 이 비전을 배신하고 국가의 경제통제권을 민간영역에 넘김으로써 국가의 정치적 정통성을 추락하게 만든 큰 죄인이다.

그러므로 현재 암로가 원하는 것은 국가의 권위를 재확립하고 계급 갈등을 줄이기 위해 재분배에 방점을 둔 자본주의적 개발 국가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두의 안녕을 위해, 빈곤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for the good of everyone, the poor will be first!) 앞으로 수립될 암로 정부의 커다란 가능성과 그리고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모레나 내의 세력 균형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암로의 경력에서 탄생한 그의 비전과 암로에 대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는 이런 세력의 연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되건 이들 세력 간의 갈등은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기사출처:AMLO’s Mexico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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