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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문정인·홍익표 대담집 출간
책 ‘평화의 규칙’
책 ‘평화의 규칙’ⓒ바틀비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규칙이지만 한반도를 비롯해 냉전의 세계에선 말도 안되는 소리 취급을 받는 주장이었다. 냉전 세계를 지배하던 규칙은 4세기 로마의 정치전략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가 남긴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금언이었다. 그리고 이 금언은 소련과 다수의 동구권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에도 유지됐고, 우리 사회에선 극우 보수세력들의 바뀌지 않는 슬로건이었다. 남북 화해의 국면에서도, 남북 스포츠 교류의 현장에서도 늘 보수세력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외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와 남북 관계 전문가 홍익표 의원의 대담을 담은 책 ‘평화의 규칙’은 21세기 최후의 냉전 대결 지역인 한반도에서 역설적으로 이 패러다임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베게티우스의 명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전쟁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평화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평화의 규칙이고 한반도가 세계에 입증하고 있는 역사의 새로운 교훈입니다.”

문정인 교수는 한반도와 전세계를 지배하게 될 새로운 패러다임은 ‘평화의 규칙’이라고 이 책에서 강조한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남북의 만남은 단절됐고, 북미간에는 날선 표현이 오갔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이며, 그렇게 달라진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선물하게 될 미래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이 책은 답을 들려준다. 이 책은 한반도의 봄에 대한 꼼꼼한 안내서이자 분단과 대결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의 미래로 나가기 위해 시민들이 알아야 할 새 시대의 남북관계 입문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청와대 제공

규칙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당혹해 하는 이들이 한미 모두에 있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의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나온 뒤, 미국 여론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일반 국민은 회담 결과에 대한 긍정 평가가 우세했으나 워싱턴 정가, 이른바 북한 전문가, 관료들 및 언론 분위기는 사뭇 냉랭했다. 우리 사회에선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새롭게 변화된 패러다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까지 일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저자들은 민심과 소위 주류 사회의 이러한 괴리가 국제 관계를 지배해 온 과거의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치며 나온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어떻습니까. 그 관점(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도처에 나타나고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과거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올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거치고 나자, ‘아 어쩌면 예전 생각이 틀렸을 수 있구나’ 이런 각성이 시작되었습니다.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겁니다. 변화를 보지 못하거나 이전 패러다임에 갇힌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합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한당의 몰락은 패러다임 변화를 거부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규칙’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각 변동이 단순히 한반도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 지역 나아가 미중 G2 시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사건이며 그 이면에 새롭게 부상하는 ‘평화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음을 논증하는 대담하고 거시적인 통찰을 담았다.

1부 ‘세기의 기적, 한반도의 봄’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화와 협상의 성격을 분석한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이 3인의 행위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서 각기 어떤 목표와 관점으로 임했는지 살펴보고 북미 협상 이후 남은 과제와 북한 핵 협상 과정을 조망한다.

2부 ‘우리는 지정학적 숙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는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시공간적 고찰이다. 현재의 변화가 오기까지 우리 주변의 4강은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들의 대한반도 전략이 무엇인지 역사적 과정과 국제 체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상세히 살펴본다.

3부 ‘북한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는 평화적 동반자로 함께 가야 할 북한 사회에 대한 다면적 토론이 이루어진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회의 질적인 변화, 김정은 위원장 체제의 안정성과 모순, 북한이 핵 개발에 그토록 매진했던 이유, 통일전선 전략의 포기와 탈북자 문제, 김정은 위원장이 제2의 등소평이 되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북한 체제가 내구성은 있는지 등 성역을 가리지 않고 토론한다.

4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은 한반도 운전자론이 현실 가능한 조건을 살피면서 현 정부 통일외교안보 라인의 역할과 외교 역량을 점검한다. 여전한 구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우리 외교가 성취한 업적에 대한 따뜻한 평가도 가감없이 이루어진다. 아울러 남북 평화 공존 시대에 기존의 통일론과 전망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사드 기지, 주한미군, 한미 동맹의 위상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의 대담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평화 공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상이다. 저자들은 한반도가 주도적 운전자가 되어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낙관을 펼치면서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함을 당부한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관문을 열어젖혔지만 앞길에는 아직도 산적한 과제와 도전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 민주화 과정에 시민 참여가 필수였듯이 이제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의 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 책을 평화의 시대를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바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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