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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의 플레이리스트] ‘사랑을 했다’는 왜 ‘초딩’들의 ‘국민가요’가 됐을까
‘슈가맨’에 출연한 아이콘
‘슈가맨’에 출연한 아이콘ⓒ사진제공 = JTBC

‘L2의 플레이리스트’는 놓치면 아쉬울 대중가요와 아티스트를 소개하기 위해 쓰여집니다. 연예부 대중가요 기자의 ‘기자수첩’으로, 매주 연재될 예정입니다.

7인조 보이그룹 아이콘(IKON)이 1월에 발표한 노래 ‘사랑을 했다(Love Scenario)’가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에게 큰 인기다. 일부 학교에서는 한 명이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 따라 불러 수업이 중단된다며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최근에는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설수대’가 ‘사랑을 했다’를 함께 부르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에 작곡자인 아이콘 비아이(B.I)는 소셜미디어에 ‘유치원 투어 가자’고,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이게 무슨 일이야?’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에서 ‘리코더’를 검색하면 맨 위에 ‘사랑을 했다 리코더 악보’가 자동완성된다. 그 밑으로 ‘운지법’, ‘악보’ 등 리코더와 연관된 기본 검색어들이 자동완성으로 뜬다. 이쯤 되면 신드롬이다.

보이그룹 '아이콘'(iKON) 멤버 'B.I'(비아이) 인스타그램
보이그룹 '아이콘'(iKON) 멤버 'B.I'(비아이) 인스타그램ⓒ비아이 인스타그램

‘사랑을 했다’ 공식 M/V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차트(멜론차트 기준)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단 5일(1월 25일 발표)의 성적만 가지고 1월 차트 46위에 올랐으며 2월과 3월에는 월간 1위를 기록했다. 2017년 가장 많이 소비된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나 윤종신의 ‘좋니’가 두 달간 월간차트 1위를 기록한 것에 비춰 본다면 이 곡은 그야말로 빅히트다.

쉬운 멜로디의 쉬운 가사가 맨 앞에 배치된 게 ‘사랑을 했다’의 최고 강점이다. 전주 없이 ‘사랑을 했다’로 시작되는 가사는 쉽게 인지될 뿐만 아니라 다음 전개를 궁금하게 한다. 대부분의 음악 소비자들이 전주 10초 내에 더 들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추세에서 ‘사랑을 했다~’라고 머릿속에 박히는 이 가사는 노래를 끝까지 듣게 하는 힘이다.

멜로디에 고음도, 어려운 테크닉을 사용한 랩도 없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영어는 ‘시나리오’ 말곤 없다. 그래서 쉽게 떼창이 가능하다. 수많은 히트곡들 중 어린이들도 좋아하는 곡이 된 건 쉽기 때문이다.

‘사랑을 했다’ 부르는 어린이들 모음 영상/출처 = 유튜브 채널 KONY KONIC


‘사랑을 했다’는 순 한글로 만들어져서인지 쉽게 개사가 가능해 바꿔 부르는 재미가 있다. 교실에서 서로 재밌으려고 지어내고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입에 배게 된다. 시험 점수가 낮으면 ‘시험을 봤다~ XX점 됐다~’, 학교에 늦으면 ‘늦잠을 잤다~ XX보다가~’, 치킨 시켜놓고 ‘배달이 왔다~ 너무나 맛나~’ 등등. 개사 버전도 한두 개가 아니다. 무한히 새로운 버전의 ‘사랑을 했다’가 탄생하며 시간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진다. 해외의 케이팝 열풍 뒤에 댄스 커버 영상이 존재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일부에서는 원곡 가사에 어린이가 부르기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동요도 과격한 개사의 대상이었다. 화투 버전의 ‘아기염소’, 교도소 버전의 ‘고향의 봄’, 슈퍼맨 속옷 버전의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지. 상기한 예를 돌아보면 ‘사랑을 했다’가 널리 불려지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거라는 우려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02년엔 ‘Fucking U.S.A’를 흥얼거리던 어린이들도 많았지만 그때 아이들이 큰 사고를 쳤다는 통계 같은 건 없지 않나. 그리고 우려랍시고 예를 드는 ‘갈비뼈 사이가 찌릿찌릿한 느낌’ 같은 부분은 작곡자 비아이가 어린 시절 만화영화 ‘코난’을 기다리며 느꼈던 마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걱정 마시라.

이미 많은 초등학생들이 이 노래를 ‘정치를 했다~ 순실이 만나~ 지우지 못할 역사를 썼다’라고 개사된 ‘박근혜 버전’을 부르고 다닌다. 저잣거리에서 민초들과 어린 아이들이 노래로 나랏님 놀리고 풍자하던 것처럼, 지금은 ‘사랑을 했다’로 늘 있어왔던 일을 또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하루종일 아이들 입에서 이 노랠 듣느라 고생하는 교사들과 학부모들껜 안타까움을 전한다.

박근혜 버전으로 개사된 ‘사랑을 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전종호

정치를 했다 순실이 만나 지우질 못할 역사를 썼다

볼만한 범죄 드라마 괜찮은 독방 그거면 난 사형이다

우리가 망친 정-치 시나리오 이젠 촛불이 번지고 판사님 망치질을 때리면 조용히 입을 닫지요

에이 태극기 흔들지 마라 잘못을 인정한다는건 보톡스 였던 우리의 얼굴에 더 이상 주사가 없다는 건

아프긴 해도 더 맞았음 주름이 펴지니깐 YE 넌 횡령했고 뇌물 먹었으니 넌 사형도 모잘라

나 구속되면서 가끔씩 명박이 생각 그 안에 순실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연설문 썼다 뇌물을 받아 지우지 못할 범죄자 됐다

볼만한 현빈 드라마 시크릿 가든 길라임 거품 난 라임이다

우리가 만든 세금 SCENARIO 판사님 망치를 꺼내고 마지막 판결문을 읽으면 조용히 눈을 감지요

갈비뼈 사이사이가 뻐근뻐근혠 느낌 나 무너지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눈빛

너에게 참 많이도 배웠다 양심을 잃었냐 과거로 두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나 살아가면서 가끔씩 떠오를 기억 그안에 순실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횡령을 했다 연설문 만나 인생이 그냥 폭삭 망했다

볼만한 인생드라마 길라임 거품 드라마 좋아 난 광팬이다

네가 벌써 괴롭다면 괴로워하지 않앗음 해 한 편의 영화 더러웠던 봄으로 너를 기억할게

우리가 망친 정치 시나리오 이젠 촛불이 번지고 판사님 망치질을 때리면 조용히 입을 닫지요

우린 횡령도 해봤고 우습게 구라도 쳤어 미친듯이 정치했고 우리 사형이면 됐어

횡령을 했다 삼성을 만나 인생 망했다 난 할머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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