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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사람’ 임형진 연출 “한국인에게 ‘낯선’ 슈니츨러 선택한 이유는...”

‘Vissi d'arte, vissi d'amor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푸치니의 대표적인 오페라 ‘토스카’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아리아다.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비극이 담겨 있다. 공화국 집정관 안젤로티를 숨겨줬다가 경찰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고문을 당하게 된 카라바도시가 형장으로 향하게 될 때 연인 토스카가 부르는 절규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전제군주에 충성을 다하는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카라바도시에 대한 ‘가짜 사형’을 약속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카라바도시를 살려주겠다는 것은 스카르피아의 거짓말이었으며 카바라도시는 결국 총살당한다. 토스카는 또 다시 절망한다.

오페라 ‘토스카’의 명장면과 오스트리아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가의 미완성 소설 ‘의화단운동(Boxeraufstand)’이 만났다. 임형진 연출가의 연극 ‘낯선 사람’을 통해서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임형진 연출가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임형진 연출가ⓒ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최윤정

원작은 1900년 의화단운동을 배경으로 오스트리아 중위가 사형선고를 받은 중국 의화단 교도 한 명을 살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 중위는 총살 전 담담하게 소설책을 읽고 있는 중국인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결국 살려주기에 이르게 된다. 중국인을 바라보는 오스트리아 중위의 심리는 물론이고, 당대 서양인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하나는 오페라, 다른 하나는 소설이다. 장르도 전혀 다르고, 심지어 작품의 배경과 줄거리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관통하는 지점은 있다. 임 연출가는 작품에 대해 “슈니츨러의 원작에서 사형 장면과 토스카의 사형 장면이 관통이 됐다”며 “슈니츨러는 중위의 시선으로 풀어냈지만 저는 연극 ‘낯선 사람’을 중국인 천샤오보 관점에서 재해석 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소설가이자 희곡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한국인에게 매우 낯선 작가다. 한국에서 ‘라이겐(윤무)’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밖에 기타 정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양이 많지 않다. 하지만 임 연출가는 오스트리아 대문호인 그의 작품을 기꺼이 한국 무대로 데려와 동시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어보기 위해 지난 12일 드레스리허설이 한창인 대학로 무대를 찾아 임연출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품은 ‘의화단운동’을 모티브로 가져왔지만 대부분 공연 내용은 임 연출가의 관점과 시선으로 재창작됐다. 임 연출가는 “원작을 보면 오스트리아 중위가 주인공이지만 저는 중위의 관점에서 풀어내지 않았다. 저는 중국인 관점에서 작품을 보고 풀어냈다”고 말했다.

“원작에선 오스트리아 중위가 ‘내가 봤던 사람 중에 낯설고 낯선 사람’ 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저는 그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서양인이 본 동양인의 낯설음이 신비로움과 오리엔탈리즘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인도를 신비롭게 보고 성지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슈니츨러도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그 사람 관점에서 쓰일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한국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연출가 관점으로서 슈니츨러를 역전시켜서 봤다. 저는 울리히 관점에서 작품을 보지 않았다. 물론 저는 두 개 관점을 똑같이 나눠두긴 했지만, 저는 천샤오보 관점을 선택 했다.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게 철학이고 제 관점이다. 물론 결국엔 관객들도 작품을 보며 자신의 관점을 선택할 것 같다.”

임 연출가의 관점과 상상력이 덧붙여져, 극중 오스트리아 중위와 사형 직전의 중국인 캐릭터는 좀 더 명확한 색채를 입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태어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장교는 울리히, 사형 직전의 중국인은 천샤오보라는 인물로 재탄생 됐다.

연극 '낯선사람'
연극 '낯선사람'ⓒ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_최윤정

“원작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저는 오스트리아 장교를 울리히라 이름 붙였다. 제가 독일에서 만난 이름들은 대부분 나이가 든 사람이었고 성실하고 검소했다. 또 친한 친구 중에도 울리히가 있었다. 중국인으로 나오는 천샤오보는 실제 인물이다. 그는 실제 존재했던 사람이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와 그에 걸 맞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실 의화단운동만 봐서는 중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전의 아편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임 연출가는 원작처럼 연합군(의화단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의 시선이 아닌 천샤오보 관점으로 작품을 봤다고 했지만, 관객 입장에선 천샤오보의 관점만 보이지 않는다. 천샤오보와 울리히의 관점이 매우 ‘공평하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샤오보에게서 울리히가 보이고, 울리히에게서 천샤오보가 보이는 식이다. 서양인과 동양인, 오스트리아인과 중국인,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할 자, 침략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이렇게 서로에게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연신 얽히고설켜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안긴다. 그 낯선 경험은 기존의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엇이 진짜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관점을 재설정하게 만든다.

임 연출가는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운동의 역사적인 상징성을 오늘날 우리 이야기로 어떻게 전환 시킬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의 핵심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공연의 꽃인 마지막 5막을 통해서다. 1~4막이 서로에게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향연을 만나는 시간이라면 5막은 철저히 동시대를 만나는 시간이다. 임 연출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울리히는 돈도 없고 그곳을 떠나야 한다. 자본주의 속에서는 역사에서 치열했던, 안 치열했던 사람 모두가 의미가 없다. 허무하다고? 그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라고 말했다.

극중 대사처럼 세상은 바뀌는 게 아니라 누군가 바꾸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 안에 낯선 존재가 들이닥칠지라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울리히가 곧 천샤오보이기에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으나 자기 관점에서 행동한 것이다. 천샤오보도 자기 관점에서 행동한 것이다. 어떤 관점과 어떤 위치를 선택하느냐, 그 시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게 제 포인트다. 결국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물음이다. 당신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 ‘우리는 선택을 못한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은 7월 14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김정환, 안병찬, 오다애, 한진만 등이 출연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원작 ‘의화단운동(Boxeraufstand)’, 각색 연출 임형진.

임형진 연출과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이안 코이츤베악 교수의 모습
임형진 연출과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이안 코이츤베악 교수의 모습ⓒ티위스컴퍼니


임형진 연출과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이안 코이츤베악 교수의 대담인터뷰- 티위스컴퍼니 김효상 대표 진행&정리

Q. 슈니츨러의 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만든다고 들었을 때 어떻게 생각했는가?

이안: 연출가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된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임: '굳이 슈니츨러가 한국에서 필요한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안: 굳이 필요와 불필요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임: 독일에서 꼭 필요한 작가들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안: 독일 문학을 배울 때 꼭 들어가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 작가 자체가 중요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다 유명한 건 아니었고 꼭 지금 사회에 필요하다면 다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임: 독일에서 슈니츨러는 좋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안: 짧은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 60편정도. 언어도 그 시대의 말이지만 오늘날에도 편하게 읽히기 때문에 슈니츨러를 좋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수업에서 읽기 좋은 것 같다.

이안: 슈니츨러는 독일문학 전공한 사람 때문에 알게됐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 '아이즈 와이드샷' 때문에 알게된 것 같다. 그런데 왜 슈니츨러인가? 다른 말로 하면 '복서아우프슈탄트'라는 단어로 검색했는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검색되지 않았다. 번역되긴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을 어떻게 찾고 작품을 결심하게 됐는가?

임: 정보가 없었다. 사실 원작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독일어 원서로는 4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미완성 소설이다

Q: 미완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면서 연출가로서의 성취감이 있진 않았나?

임: 그런 건 없었다. 단지 그 내용을 가져옴으로써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과 나의 생각이 어떻게 연결되어 오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작품이 현재, 지금, 나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가 궁금했고 그 미완성 속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들이 보였다.

이안: 작품이 딱 그 시대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으로 끌어올 수 있었는가?

임: 슈니츨러는 빈학파의 멤버다. 그쪽의 특징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덜했다. 그래서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반면 예술성이 극대화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상업적이기에 그가 가진 환상, 에로틱함, 심리,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 등이 영화의 문법과 잘 맞지 않았나 생각된다. 유럽에선 특히 사회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예술로 치지 않는다. 그리고 슈니츨러는 굉장히 똑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정 부분에 대한 강한 집착도 보여서 오히려 이 사람이 정신 이상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글이 굉장히 빈틈이 없이 촘촘하다. 환상과 현실의 넘나듦이 아주 자연스럽다. 영화는 카메라로 가능하다지만 연극은 쉽지 않기에 올리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희곡도 그런 편이다. 대체로 그의 작품이 사회성이나 역사성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 이 작품은 역사성이 보였다. 중국의 의화단 운동이 배경인데 유럽의 시각에선 '북청사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중국인에게 단순한 사변은 아니다. 그리고 독일어로 번역하면 복서아우프슈탄트라고 하는데 이게 원래 제목이다. 복서는 말 그대로 권투선수를 애기하며 아우프슈탄트는 봉기라는 뜻이다. 왜 이렇게 불렀는가 찾아봤더니 중국인들의 당시 저항방법이 거의 맨손이었고 정신적인 무장이 강했다고 한다. 무술을 연마해서 서구의 당시첨단 무기에 대항한 것이다.

이안: 반대로 '낯선사람'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누구의 관점이 중심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이방인과 다른 단어지 않을까?

임: 난 어느 누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어느 한 쪽의 눈으로만 본다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 연극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제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것은 천샤오보지만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넘어보고 하나의 존재 안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싶었다. 한 인간에서 모두 다 나온 것이다. 인물 하나당 하나의 사회구조로 보면 된다. 돈 없으면 선인도 악인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천샤오보지만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 다 존재하는 것처럼 그 경계를 극복해 보고싶었다. 그래서 여기나오는 4명의 인물이 다 주인공일 수 있다. 선과 악조차도 돈으로 구분지을 수 있고 역사적으로 큰 일을 했던 사람들도 단지 거처가 없어서 어디로 떠나가게 되는 상황이 된다. 울리히와 천샤오보는 같은 동일인물이다.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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