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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평화와 공존을 위해” 감옥행을 선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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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민을 지키지 않는 나라의 군인이 될 자신이 없습니다. 폭력, 침묵, 복종을 강요하는 국방의 의무가 밀양의 주민들, 장애인,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의무가 될까 두렵습니다. 저는 오늘 평화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합니다."

2016년 4월 19일 부산대학교 앞 어느 카페에는 서른 살 청년의 목메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숙연한 실내 공기가 그렁그렁한 눈의 그를 감쌌다. 그날은 이 청년의 입영일이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훈련소가 있는 춘천행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의 결심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카페를 가득 메웠다.

병역거부 기자회견 당시를 떠올리던 김진만(32) 씨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고 읊조리듯 말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김 씨는 병역거부 선언 한 달 전 병무청으로부터 마지막 소집통보서를 받았다. 그리고 약 1년간 이어진 법정투쟁 끝에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2017년 4월 부산구치소에 수감됐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교도소 생활 초반에는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수감 동안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나아가 군대의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감옥행을 택했는데, 여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병역거부 선언문과 동지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죠. 양심에 따라 스스로 약속하고 다짐한 선택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책임감의 실현에 대한 뿌듯함이 더 큽니다."

그가 춘천행 버스를 타지 않은 이유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진만 씨가 지난 2016년 4월 19일 부산대 인근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진만 씨가 지난 2016년 4월 19일 부산대 인근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전쟁없는세상

올해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한국사회의 금기를 깬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대체복무'를 병역의 종류로 포함하지 않고 있는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했다. 물론 헌재가 정당한 사유 없는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담긴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평화적 신념이나 종교적 가르침의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행위를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실현으로 처음 인정한 것이다. 김 씨는 헌재 판결 다음 날인 6월 29일 가석방됐다.

"처음부터 병역거부의 뜻을 품은 것은 아니었어요. 부모님도 다 교직공무원이어서 체계적이고 짜여진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것에 익숙한 가정환경이었죠. 학창시절에도 저는 군인들의 절도있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소위 '밀리터리 매니아'였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기개와 용기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게 규율을 강제하는 군사문화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죠."

그러던 김 씨가 병역거부를 결심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였다. 대학 시절 그는 장애인 인권, 비정규직 생존권, 철거민 주거권 등을 위한 사회적 실천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정의감 넘치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연대해야 한다고 믿은 존재들은 언제나 공권력 앞에 힘 없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기본권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 앞에는 경찰의 거대한 방패가 항상 세워져있었다.

그중에서도 2014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그가 마주한 국가의 폭압적인 모습은 이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행정대집행 당일 밀양 할매들은 '온 사회가 보고 있는데 설마 우릴 다 끌어내겠냐'고 서로를 다독이며 농성 텐트를 지키고 있었어요. 고요한 긴장과 불안감만이 가득한 현장은 마치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날 밤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며 밤을 지새우던 새벽. 2천 명이 넘는 경찰과 공무원이 순식간에 들이닥쳤고, 힘 없는 할매들이 절규하며 들려나오는 걸 봤어요. 그 모습 앞에서 저는 한없는 초라함을 느꼈고, 잔인한 모습의 국가권력은 할 수만 있다면 온 몸으로 거부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국가폭력은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했습니다"

김진만 씨
김진만 씨ⓒ김진만 씨

김 씨가 목격한 국가권력은 폭력을 수호하는 질서였다. 그것은 국민을 지키는 힘이 아니었으며, 탄압이라는 말 외에는 형용할 수단이 없었다. 결국 김 씨는 '가담'을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국가폭력은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집총거부 포함)라는 개념은 많은 경우에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일부 교파의 유별난 종교적 신념 정도로 치부돼왔다. 대중적 영역에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가 강고해질수록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표현이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될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성역화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2001년 오태양 씨의 (비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다양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선언이 이어졌다. 반전평화주의는 물론 생태주의, 여성주의,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군대 대신 감옥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운동'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김 씨 역시 '평화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거부자다. 그는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그렇듯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도대체 왜 안 가는 거냐'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군대 간 사람은 양심이 없는 거냐'는 힐난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양심은 '선한 마음'이 아니라 '내면의 진지한 신념'이라는 것부터, 왜 자신이 '병역기피자'가 아니라 '병역거부자'인지까지.

"결국은 징병제가 폐지돼야죠. 의무적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명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군대에 가는 거잖아요. 그들도 국가동원체계의 희생자라는 생각입니다. 헌법적 가치인 '양심의 자유'에 따라 국가의 폭압적 동원을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신념에 대해 우리가 하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한반도 평화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냉전적 군사주의에 매몰돼있어야 안심이 되겠다는 것인지. 이건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대한 문제에요."

"평화와 공존을 위해 병역을 거부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진만 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6월 29일 진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진만 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6월 29일 진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김진만 씨

김 씨의 병역거부 소견서 글머리에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병역을 거부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총을 들고 각종 살인 훈련을 받고 온 남성만이 '평균적 국민'의 대접을 받는 사회에서 '평화'와 '공존'이라는 단어가 생명력을 갖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그동안 총을 손에 쥐는 대신 차라리 감옥에 가는 길을 택했다. 70년간 1만 9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그랬다.

해마다 수백 명의 청년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야 하는 시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우선 '범죄자'가 되지 않는 길을 열어야만 했다. 자신들의 선택이 사회적 의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평성에 맞는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의무를 다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단이 있어야 했다. 공동체의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면 그것이 무력의 수단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신념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도록 해달라는 것. 그것이 '대체복무제'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긴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 아니면 감옥'의 기로에서 괴로워했다. 물론 대체복무제가 이 땅의 '양심'을 모두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복무제라는 최소한의 장치를 위해, 이 세상을 향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김 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7월 17일 제 후배가 1심 선고를 받았어요. 비록 유죄 판결이지만, '양심을 증빙할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게 그 이유랍니다. 판사의 언어도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죠. 저를 유죄 선고한 판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데 네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양심의 증빙 가능 여부까지 한 발 나아간 거죠. 그 후배는 자신이 제1호 대체복무자가 되고 싶다고 해요. 대체복무가 일반화되는 세상을 향한 첫 단계가 시작되는 겁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을 환영하고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을 환영하고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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