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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여우락 페스티벌, 한국 전통음악의 최전선
여우락 페스티벌 장단DNA의 '홀림'
여우락 페스티벌 장단DNA의 '홀림'ⓒ국립극장

음악팬들은 페스티벌로 계절을 기억한다. 미식가들이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로 계절을 기억하듯 봄에는 서울재즈페스티벌, 여름에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가을에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과 그랜드민트페스티벌로 계절을 기억한다. 물론 다른 음악 페스티벌도 많다.

음악 페스티벌은 갈수록 앞뒤가 바뀌는 한 해의 기억에 리듬과 멜로디를 불어넣는다. 올해로 9회째인 여우락 페스티벌도 그렇다. 여름, 서울 장충동, 더위, 국립극장 같은 태그를 붙일 수 있을 여우락 페스티벌은 한국 전통음악 애호가들과 품 넓은 음악애호가들에게 매년 남다른 여름기억을 만들어준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말하는 여우락 페스티벌은 한국 전통음악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보여주는 페스티벌로 우뚝하다. 여우락 페스티벌 같은 한국 전통음악 기반의 페스티벌이 오직 하나만은 아니다. 그러나 여우락 페스티벌은 그 중 가장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어 넓혔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는 탈 경계의 성과를 이으며 늘 한 뼘 더 뛰어올랐다.

여우락 페스티벌 'After 산조'
여우락 페스티벌 'After 산조'ⓒ국립극장

음악의 경계 없이 넘나들며 섞이는 여우락 페스티벌

음악은 본디 그러했으나 오래 잊고 있었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음악이 원래 경계 없이 넘나들며 섞이는 것임을, 충돌과 생성이 음악의 본성임을 확인하는 특별한 장이 되었다. 한국의 대중음악인과 전통음악인이 만났고, 나라밖 음악인들이 합세했다. 음악이 충돌하고 넘나들어 섞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한국 전통음악을 몰랐을 뿐 아니라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한국 전통음악이 고루하지 않고, 은은하고 파격적이며 감동적일 수 있음을. 그럴 수 있도록 갈고 닦으며 다른 음악을 호흡하는 음악인들이 적지 않음을 깨달았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늘 새로운 도전의 정점으로 남달랐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전통을 지키거나 넘나드는 이들을 엮고 그들이 다른 이들과 부딪쳐 더 빛나게 만들었다. 이전에 보지 못한 협연과 도전은 신선한 충격과 재현 불가능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여우락페스티벌의 이름이 알려지고, 팬이 생기고 매년 이어지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2018년의 여우락 페스티벌이 다를 리 없었다. 7월 6일 금요일부터 7월 22일까지 보름간 이어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총 11개의 공연이 15번 열렸다. 마스터 클래스와 토크, 대학생 워크숍도 함께 펼쳐졌다. 올해 여우락의 예술감독은 원일. 음악감독은 이아람이 맡았다. 올해에는 고영렬, 김무길, 김보라, 김성아, 김용성, 김일구, 김청만, 김택수, 김창훈, 두번째달, 바람곶, 박승원, 박혜리, 방지원, 사이먼 바커, 솔리스트 앙상블 상상(강은일, 유경화, 허윤정), 송소희, 안숙선, 안옥선, 연희컴퍼니 유희, 유수정, 원장현, 이나래, 이소월, 이아람, 이원술, 이태백, 임경애, 잠비나이, 장단DNA(김복만, 김정희, 박은하, 손영만, 원일), 적극, 정미정, 젠슈, 조성재, 차승민, 최수열, 킹스턴 루디스카, 하림과 블루카멜 앙상블, 한재연, 황민왕을 비롯한 뮤지션들과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한국 전통음악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연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연, 현재의 성취를 보여주는 공연들이 이어졌다.

올해 여우락의 개막공연처럼 열린 장단 DNA와 안상수의 ‘홀림’ 공연은 한국 전통음악의 최정점에 선 연주자들이 디자이너 안상수와 함께 세종대왕의 한글을 연주했다. 사물놀이 형식을 빌어 연주한 홀림 공연은 특히 입소리로 연주를 재현하면서 소리로 한글의 철학과 가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했다. 연주가 멈추고 구음이 가득 찬 순간, 한글과 음악은 둘이 아니었다. 음악 언어와 문자언어도 둘이 아니었다. 모든 소리를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한글의 가치가 온전히 살아나 감돌았다.

이아람과 여우락 솔리스트들이 함께 연주한 ‘After 산조’ 공연은 한국 전통음악의 고갱이 중 하나인 산조를 구음, 더블 베이스, 아쟁, 아코디언, 일렉트로닉 사운드, 타악 등으로 변주했다. 대개 한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가 국악기 밖의 악기로 이어지고 섞일 때,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은 다른 빛깔의 소리울림과 파장을 낳았다. 산조가 품고 있는 고요와 여유와 흥이 국경을 넘고 장르를 넘으며 다시 태어났다. 여우락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었으나 더 이상 여우락에서만 볼 수 있는 감동은 아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여우락 페스티벌 잠비나이의 '정형과 비정형'
여우락 페스티벌 잠비나이의 '정형과 비정형'ⓒ국립극장

여우락에서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연주자들의 대체불가능한 공연

사실 여우락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대부분 수준 높은 연주자들이 만드는 대체불가능한 공연인 경우가 많다. 이미 팀으로 오래 활동하는 경우도 많지만 여우락을 위해 열리는 일회적인 공연들은 연주자들의 실력과 명성만큼 좋은 공연으로 끝나더라도 일회적이라는 한계로 인해 더 깊어지지 못하곤 한다. 좀 더 호흡을 맞추고 조율해야 더 깊어질 수 있는데 가능성을 보여주고 끝나버리는 것이다. 여우락을 통해 만나게 되고 시도하게 된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여우락이 끝나고 남는 성과가 쌓여야 하지 않을까. 공연으로 만들어낸 시도와 감동이 음반 등으로 이어지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즐기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대부분의 공연을 공연 후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지 않음으로 인해 극소수 관객들만 향유하고 끝나버린다는 점은 아쉽다. 여우락이라는 장, 국립극장이라는 공간의 뒷받침이 없다면 열리지 못했을 시도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소멸해버리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형과 비정형’을 타이틀로 한 잠비나이의 공연은 국악기를 사용한 연주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팀답게 여전한 열기로 팽팽했다. 록과 한국 전통음악을 혼용해 창출한 사이키델릭은 강력했다. 한편 ‘아홉개의 문’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진 젠슈, 사이먼 바커, 차승민의 공연은 슬픔을 치유하는 씻김굿처럼 열렸다. 바리데기 이야기에 티모르 여전사의 이야기가 겹쳐진 공연은 젠슈의 재기발랄한 재능과 사이먼 바커, 차승민의 호연이 이어졌다. 다만 젠슈가 풀어놓는 이야기만큼 사이먼 바커와 차승민의 연주에 더 무게가 실렸다면 어땠을까 싶은 공연이었다. 그리고 바람곶의 ‘바리시나위’ 공연은 바리데기 설화를 모티브로 한국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을 농염하게 혼합했다. 빼어난 연주자들의 정교한 합주와 즉흥연주를 교차시킨 바람곶의 공연은 한국 전통음악과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이 녹아들어 경계를 나눌 수 없었다. 한국 전통음악과 악기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바람곶이 창작력과 연주력, 상상력을 함께 가진 팀으로 개성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독보적임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올 여름에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만나 함께 노닐었고, 그 향기가 여름 남산에 가득 찼다. 이제 남산 아래에서도 그 향기를 만끽할 수 있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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