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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문건 공개하겠다”는 사법부 방침은 왜 ‘꼼수’인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법원장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하던 현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법원장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하던 현장.ⓒ임화영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사실상 틀어막고 있는 사법부가 뒤늦게 자체조사단 조사 대상이었던 비공개 파일 전부를 공개하기로 했다.

법원행정처는 26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추출한 410개 문서 파일 중 사법부 전산망에 공개하지 않았던 나머지 문서 파일을 원칙적으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원 자체조사단이 지난 5월 25일 3차 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법원 안팎에서 문건을 모두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행정처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2달여가 지나서야 조사 대상이었던 문건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는 지난달 5일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410개 문건 중 98개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행정처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른 비실명화 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당 문서파일은 언론 보도를 위해 출입기자단에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과연 '통 큰' 결단인가?

마치 사법부가 통 큰 결단으로 스스로 허물을 드러내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이 방침은 일종의 ‘페이크’(속임수)에 가깝다.

현재 검찰 수사는 법원행정처의 허가를 거쳐 자료를 넘겨받는 형식의 임의제출 절차를 통한 자료 확보, 사건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이렇게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 착수했으나, 그로부터 한 달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금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에 이어 관련자 소환 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 흐름이지만, 이번 수사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는 법원 자체조사단이 조사 대상으로 삼았던 410개 문건과 지난 6일부터 법원행정처 관계자 입회하에 3주째 진행 중인 행정처 기획조정실 관계자 PC에서 추출한 파일 일부가 전부다. 또한 기존에 확인된 재판거래 의혹 문건과 관계된 일선 판사들과 관련한 자료는 물론 관련자들의 이메일, 메신저 등을 제출할 수 없다고 최종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인사총괄심의관실 등 행정처가 직접 관리하는 부서의 자료, 재판연구관과 서울중앙지법과 관련한 여타 자료에 대한 협조조차 안 하겠다는 것이 현재까지 사법부 입장이다.

강제수사도 병행하고 있는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민수 전 기획제1심의관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으나, 법원으로부터 모두 기각됐다.

사실상 모든 갈래의 검찰 수사가 사법부로부터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는 상황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는 사법부가 영장 발부 등 강제수사의 최종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사법부의 이러한 독자적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여론 관심과 수사 동력 동시에 억제하는 효과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여론의 관심은 물론 검찰의 수사 동력마저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검찰이 추가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원천 차단된 상황에서 수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날 수 있는 내용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데다 오히려 영장 갈등과 같은 법원과 검찰의 지루한 공방만 반복됨에 따라 지금은 사실상 여론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제반 상황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권한의 우위에 있는 법원의 효과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날 행정처가 밝힌 ‘비공개 문건 공개’ 방침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검찰이 법원의 비협조적 행태를 두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냄에 따라 법원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되는 듯하자, 행정처가 곧바로 비공개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행정처가 이번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나머지 비공개 문건들은 이미 수사 초반에 검찰에 넘겨진 것들이다. 정작 수사를 통해 사법농단 사건의 실체를 추가로 규명하는 데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문건들인 셈이다.

사법부 입장에선 이번 문건 공개로 잃을 게 전혀 없다. 이미 검찰로 넘어간 비공개 문건과 관련한 핵심 내용들이 ‘검찰발’로 보도된 만큼, 사법부로선 해당 문건에 국한해서 추가 보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여론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미미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전날 행정처가 내놓은 설명도 기만적이다.

특히 행정처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관련성이 없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겨있는 파일 등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 대목에선 마치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 같은 뉘앙스까지 풍겨진다.

그럼에도 법원과 전면전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손에 쥔 게 없으니 수세에 놓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도 마땅치 않다.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임의제출 형태로 자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협조’를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틀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수사팀 관계자의 말이 그 현실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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