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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반발에 ‘CVID’ 슬쩍 바꾸고도 궁색한 변명만 내놓는 美 국무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 시간)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 시간)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시스/AP

미국 정부가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 대북 정책에 관해 이른바 ‘CVID’라는 용어를 ‘FFVD’로 슬쩍 바꾸고서도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엄연히 정책을 표현하는 관련 용어를 변경했지만, 대북 정책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는 말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그동안 대북 정책에 있어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and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그들 스스로 만든 일종의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겼다.

북한이 단 한 번이라도 전혀 동의한 적이 없는 이러한 ‘CVID’라는 용어가 마치 대북 정책의 목표인 양, 수도 없이 각종 성명이나 고위 관계자들의 언급에서 반복되었다. 또 스스로 체면에 걸린 앵무새처럼 되뇌어졌다.

하지만 지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서도 드러났지만, 북미가 합의한 내용은 ‘CVID“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이다. 이는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CVID’는 그동안 미국 정부의 ‘나홀로 구호’에 불과했고, 북한의 반대로 북미 정상의 공동선언문이나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문 등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북한은 ‘불가역적인’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으며, “우리가 무슨 패전국이냐?”고 반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북미 협상 과정에서 향후 북한의 반발이 더욱 강력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 ‘CVID’라는 용어를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로 슬쩍 바꿨다.

얼핏 보면 둘 다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한 같은 말로 보이지만, ‘FFVD’에는 그동안 북한이 가장 반발했던 ‘불가역적인(irreversible)’이라는 단어가 빠진 셈이다. 사실 ‘완전한 비핵화’ 다음에 또 무슨 수로 ‘불가역적인 조치’를 할 것이냐는 의미에서 이 단어 자체의 모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일본 아사히신문은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 7월 초에 미 행정부에 ‘CVID’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러한 조치는 ‘CVID’라는 문구가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며. 이를 싫어하는 북한에 대한 배려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31일, 아사히신문 보도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의 목표는 김정은 위원장도 동의한 북한(DPRK)의 ‘완전하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고 거듭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CVID와 FFVD의 차이점과 용어 교체 이유’에 관해서는 “우리의 대북정책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전후에 차이가 없다”면서 “유일한 차이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상호 간의 목표(goal)를 약속했다는 점”이라고 에둘러 답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충분하고 검증된 그리고 중요하게는 최종적인(fully verified and, importantly, final) 비핵화를 원한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한 번의(once and for all) 비핵화를 원하며, 핵(무기) 이슈가 다시는 부각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 ‘CVID’라는 용어를 슬쩍 ‘FFVD’로 바꿔놓고도 그 이유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기존 대북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만 강조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도 청문회에서 ‘용어 변경 이유’ 답변 못하고 진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도 지난 25일, 미 의회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FFVD라는 용어가 유엔 안보리가 요구하는 CVID와 같은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바로 같은 것”이라고 에둘러 답변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면 왜 다른 표현을 사용하느냐”는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 “아무튼 의미는 같은 것이다”라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 의원들의 추궁성 질문에 ‘CVID’라는 용어를 잠시 사용했지만, 미국 정부가 더 이상 ‘CVID’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에 관해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용어를 변경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기본적인 대북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용어를 변경한 것은 북한의 반발에 결국, 굴복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라는 지적에는 “여러 가지 관련 추측성 보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거기에 관해 일일이 입장을 밝히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의 한 외교전문가는 이에 관해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만든 ‘CVID’라는 용어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가역적인’까지 못 박는 미국의 태도에 불쾌감을 넘어 상당한 반발을 표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미국이 뒤늦게 이 점을 깨닫고 용어를 완화하고 있는 과정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장기간의 과정’으로 인식을 변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미국 정부는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협상과 진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더욱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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