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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막내 보니 좋은교?” 박종철 열사 父 박정기 선생, 서울광장서 노제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임화영 기자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故) 박정기 선생의 노제(路祭)가 3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엄수됐다.

박정기 선생은 2017년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최근 몸 상태가 나빠지셨고, 지난 28일 오전 5시 48분께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노제에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를 비롯해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회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원혜영 의원, 임수경 전 의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38도가 넘는 폭염속에서도 시민 5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오후 3시께 유족 대표이자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59) 씨가 고 박정기 선생의 영정을 단상에 올리며 시민장이 시작됐다. 유족과 장례위원들은 고인의 영정을 들고 유가협 사랑방인 서울 동대문구 ‘한울삶’에 들렀다 노제장소에 도착했다. 큰 아들 종부(59) 씨와 딸 은숙(55) 씨, 아내 정차순(86)씨 등 유족들은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시민장을 지켜봤다.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임화영 기자

이날 사회를 맡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고인이 아들을 대신해 민주열사로 30여 년간 목청껏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현주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박정기 선생의 민주화 투쟁 약력을 공유했다. 박정기 선생은 공무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다, 막내 아들 박종철 열사가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고문에 목숨을 잃은 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남은 생을 바쳤다.

이 사무국장은 “항상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최선봉에 계셨던 아버님이 그립다”며 “마지막 염원이었던 ‘민주 유공자 예우법률’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막내아들 곁으로 떠나셨다”며 눈물 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노제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이다.ⓒ임화영 기자

장례위원장인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아들을 대신해서 함께 투쟁해 오신 우리의 큰 동지였다”라며 “먼저 간 박종철 열사와 살아생전 못한 이야기 나누시고,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우리 민중의 이야기를 박 열사에게 전해달라”는 조사를 남겼다.

시민들을 대표해 조사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종철 열사 죽음 이후 아픔을 딛고 30여 년 민주화에 헌신하신 아버님의 삶을 생각하면 맘이 아려온다”라며 “87년 6월 이후 민주화를 위해 피흘려온 모든 아들들은 바로 아버님의 자식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사에 나선 박종철 열사의 형 종부씨는 “아버님께서는 착한 종철이를 빼앗아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온몸을 던지셨다”라며, “아버님. 막내 보셨는교? 막내가 뭐라카는교? 고생하셨다고 고맙다고 이제 좀 쉬시라 말 하던기요. 막내 보니까 좋은교”라며 눈물을 지었다. 유족과 시민들은 종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6월 항쟁의 도화선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분향소가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박씨는 지난 28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6월 항쟁의 도화선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분향소가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박씨는 지난 28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임화영 기자

한편, 30일부터 서울시청 광장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31일까지 양일간 2,500명(장례위원회 추산)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뜻을 기렸다.

8살 손자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김수소(73, 서울 강서구)씨는 “서울시청 앞을 지나다 우연히 보고 분향했다”라며, “87년 이후 선생님의 같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손자가 커가는 과정에서 알아야 할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에 잘 설명해줄 것”이라고 덧붙었다.

김재우(34, 서울 동대문구) 씨는 “내가 민주화 세대는 아니지만 아버님 활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라 아버님의 노력의 결과”라며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사회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6월 항쟁의 도화선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분향소가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박씨는 지난 28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6월 항쟁의 도화선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민주시민장 분향소가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박씨는 지난 28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임화영 기자

오명윤(54, 서울 서대문구) 씨는 “박종철 열사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며 “87년 이후, 아버님의 민주화 운동의 처음과 끝을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오 씨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 안타깝다”며 눈물을 지었다. 이어 “어린 아들을 떠나보내고 한을 가슴에만 품지 않고, 민주화 투쟁에 평생을 바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장례위원들과 유족들은 서울광장 노제를 마친 뒤,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숨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러 고인의 한을 위로했다. 많은 시민들의 추모 속에 떠난 고인은 이날 오후 5시 경,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아들 박종철 열사 바로 옆에 묻히게 된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故 박정기 선생의 영정이  31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의 박 열사가 고문을 당했던 방을 둘러보고 있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故 박정기 선생의 영정이 31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의 박 열사가 고문을 당했던 방을 둘러보고 있다.ⓒ임화영 기자

최재윤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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